어린이의 세계를 섬세한 시각으로 그려내는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2016)과 <우리집>(2019)을 다시 보며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나왔던 ‘어린이만의 세계’에는 어른들을 향해 차마 말 할 수 없는 걱정이 있기 마련인데, 저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많은 근심 가운데에서도 특히 ‘나는 무엇이든, 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어중간할까?’라는 생각이 성장기 내내 커져만 갔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의 종로YMCA를 다녔는데, 수 년 간 수영을 배웠기에 또래에 비해서는 헤엄을 잘 쳤지만 대회에 나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에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Le Quattro stagioni)>에 빠져 부모님을 조른 끝에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음악영재가 되기는커녕 악보 초견도 힘들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운동이나 학습에 있어서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 프로농구리그인 NBA의 영향으로 형과 함께 농구를 즐겼는데, 그럴싸하기는 해도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처럼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되거나 왼손은 거들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수학자들이 사랑한다는 정규분포 곡선(자연현상을 비롯한 세상의 많은 결과값이 평균에 집중되는 경향)의 봉우리 어디쯤을 차지하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영화나 문학의 초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빼어난 인물에 호감을 갖습니다만 실재의 삶에서는 봉우리 위의 삶도 그다지 비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떤 분야이든지 특별히 빼어나지 못했기에 오히려 결핍을 자각하며 주어진 자리에서는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난 스스로에게는 ‘중간이라서 다행이었어’ 라고 다독입니다.

그런데 예술의 세계에서는 바로 이 어중간(於中間)함이 남다른 위상을 갖게 되는 듯합니다. 이제부터 인터메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로 오페라 공연 중 간주곡이라는 의미로 연주되는 ‘인터메조(intermezzo)’는 오히려 작품의 본편에 해당되는 곡보다 더 오래도록 사랑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 오페라 중에서 비교적 대중적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가 딱 그렇습니다. ‘인터메조’는 고전음악의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들으면 압니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가 본편보다 인터메조에 훨씬 공을 들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요하네스 브람스(Johann Jakob Brahms)의 <인터메조(작품번호 118-2)>는 손에 꼽히게 아름다운 소품 연주곡입니다. 평생 동경했던 스승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위해 헌정했던 이 곡은 비장미마저 느껴집니다. 손열음 선우예권 조성진과 같은 한국의 명연주자들도 꼭 한번씩은 음반으로 발표하는 걸 보면, 저와 같은 어중간한 사람뿐만 아니라 음악의 천재들도 인터메조를 사랑하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의 모음곡 1번(suite No.1) 중에도 인터메조가 있습니다. ‘투우사의 노래(Les Toreadors)’등 카르멘 모음곡에는 훨씬 유명한 연주곡이 많지만, 간주곡인 인터메조가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 중에도 정확하게 ‘중간에 위치하는 곳’이 있습니다. 메자닌(mezzanine)이 그렇습니다. 1층과 2층 사이에 위치한 중간층을 의미하는 이 공간은 대극장 내에서 발코니처럼 불룩 튀어나온 관람석을 떠올리면 정확합니다.
의정부 미술도서관_조도연_메자닌
의정부 미술도서관_조도연_메자닌
인터메조와 메자닌 그리고 인생… 소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어중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서 주인공 라울 드 샤니(이하 라울)가 크리스틴 다에(이하 크리스틴)으로부터 첫 눈에 마음을 빼앗기는 장면에도 메자닌이 나옵니다.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이 공간적 배경인 까닭에 메자닌석에는 라울이 자리를 잡았고, 이제 막 프리마돈나로 발탁된 크리스틴이 그 유명한 『나를 생각해줘요(Think of me)』를 부릅니다. 만약 라울이 가르니에 극장의 기둥 옆 후미진 자리에 있었더라도 크리스틴을 향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겠지만, 1층도 2층도 아닌 메자닌은 장면에 특별함을 더했습니다.

기악곡의 세계에선 인터메조가, 공간의 세계에선 메자닌이 ‘가운데’에서 한껏 매력을 뽐내는 것처럼 정규분포곡선의 봉우리 어디쯤에서 살아내는 소박한 삶에도 분명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당연히 그런 줄로 알고 살아왔으면서도 늘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연필에 관한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오래된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공학자이자 작가인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가운데 한 문단을 통째로 인용합니다.

“연필의 존재 이유는 심 끝에 있다. 나머지 부분은 모두 이른 바 하부 구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하부 구조가 없다면 심이 연필에 제대로 붙어 있기는커녕 뾰족하게 깎이지도 않을 것이고, 자유자재로 편하게 쓸 수도 없을 것이다. 심은 연필을 쥔 손에서 빠져나가거나 책상 위로 떨어져 부러지고 말 것이다. 기술의 산물인 모든 인공물에는 반드시 하부 구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