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서 노숙하던 의사 지망생…"여행하며 月 수천만원 벌죠" [방준식의 N잡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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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몽에서 활동 중인 최재우 대표
미국 유학 떠났지만 취업길 막혀
한국으로 와 3주 만에 코딩 독학
"웹사이트 관리 맡아 검색 노출 높여
여행하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됐죠"
미국 유학 떠났지만 취업길 막혀
한국으로 와 3주 만에 코딩 독학
"웹사이트 관리 맡아 검색 노출 높여
여행하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됐죠"
중학생 때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갔어요. 의사가 되려고 대출을 받아 공부해 볼까 했지만, 학비가 감당이 안 되더군요. '일단 돈을 먼저 벌자'는 생각에 간호학과를 나왔지만,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취업을 못해 친구 집 소파를 120달러에 빌려 잠을 자고, 다리 밑에서 노숙도 했죠. 어렵게 들어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결국 가족이 전부구나! 깨달았습니다. 이후에는 한국에서 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해 포기했습니다. 대신에 코딩을 배우자 생각했어요. 밤낮으로 3주 만에 독학으로 코딩을 배웠죠. 이제는 웹사이트라는 '온라인 부동산'을 관리하는 '디지털 목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웃음)
21세기의 유목민이라 불리는 '디지털 노마드'.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 숫자는 2022년 3500만명에서 2035년 뒤면 10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재택·원격근무가 보편화된 결과다. 의사를 꿈꿨던 청년은 직업을 전전하다 코딩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기업이 만든 웹페이지를 부동산처럼 대행해 관리하면서 월세를 받는다. 사무실에 묶여 있지 않고 전 세계로 여행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삶을 살고 있다. 프리랜서 플랫폼 '크몽'에서 활동 중인 최재우(36) 씨의 이야기다.
Q.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웹사이트 최적화 전문기업 '마케스터즈' 대표 최재우(36) 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갔어요.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돈이 굉장히 많이 들더군요. 일단 영주권을 먼저 따서 학자금 대출을 받자는 생각에 간호학과로 옮겼죠. 그렇게 2009년 졸업했더니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취업 길이 막혔습니다. △수학 조교 △편의점 △식당 △치기공 세일즈맨 △골프웨어 세일즈맨 △막노동 △중국 식당 웨이터 △화상영어 사업 등을 하며 버텼죠. 친구 집에서 한 달에 120달러를 주고 소파에서 잠을 잤어요. 그런데 그럴 돈마저 없어지자 학교 근처 다리 밑에서 노숙을 시작했죠.(웃음)"
Q.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고요.
"친구를 통해서 호스피스 간호사 일자리를 어렵게 구했어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곳이에요. 숨도 못 쉬고 소화도 못한 채 기계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그들의 옆에는 건강했던 시절의 사진들이 놓여 있는데, 한때는 다들 잘나가던 이들이었던 거에요. 그 안에서도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꽃과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의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인생에 가족이 가장 중요하구나! 깨달았죠."
Q. 왜 한국에 다시 돌아왔나요.
"군 복무를 하려고 2012년 한국으로 왔어요. 10여년 만에 뵌 부모님이 낯설더군요. 이제는 한국에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막노동까지 전전하다 헬스장에서 아내를 만나 첫눈에 반했죠. 당시 전 재산이 10만원뿐이었어요. 그런 저라도 괜찮다고 말을 해줘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어깨가 무거워 지더군요. 아이를 키워야 하니 고정 수입이 필요했죠. 정말 막막했습니다."
Q. 그러다 코딩을 배우셨다고요.
"원래는 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줘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거든요. 목수를 하면 전국 어디든 여행하면서 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죠. 가족과 함께 움직이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찾자 코딩을 배웠습니다. 코딩 개발자야말로 '디지털 부동산'을 짓는 목수라고 생각했습니다." Q. 컴퓨터를 잘 다루셨었나요.
"전혀요. 아내에게 딱 한 달만 코딩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 이후에는 막노동이라도 하겠다고 했죠. 학원 대신 모든 정보를 온라인으로 얻었어요. 유튜브랑 영문자료를 보고 하루에 18~20시간을 공부했죠. 그렇게 3주 만에 서비스를 내놓고 첫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
Q. 웹사이트 최적화는 어떤 일인가요.
"쉽게 말해 집처럼 홈페이지를 고치는 일입니다. 국내에 수많은 웹사이트가 있지만,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야 상위로 노출이 되는지는 몰라요. 기업에서는 비용을 들여 광고 마케팅을 하는 수밖에 없죠. 구글에서는 매달 분기마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요. 기준에 맞춰 사이트를 만들면 상위 노출이 가능하죠. 해외에서는 이 분야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었어요. '블루오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웃음)"
Q. 디지털 노마드로 어떻게 수익 활동을 해야 하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후기입니다. 사람들은 후기를 신뢰해요. 아무런 후기가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일을 맡기지 않아요. 처음에는 제가 가진 노하우의 가치가 10만원어치라면 5000원에 해드렸습니다. 10만원을 들여야 할 일을 5000원에 해준다니 입소문이 났죠. 어느 정도 후기가 쌓이고 신뢰가 생기면서 점점 규모를 키웠습니다. 크몽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전국 전 세계에서 고객을 매칭했습니다. 그 덕분에 △홍콩 △유럽 △동남아 등 가족과 여행하면서 일할 수 있었죠. 계약이나 정산 관리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일에만 전념 가능했습니다." Q. 디지털 노마드의 실제 삶은 어떤가요.
"사업이 커지면서 매달 수천만 원의 수익을 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해외 휴양지에서 회사원처럼 일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욕심을 버렸어요. 생활을 유지할 만큼만 돈을 벌자고 정했죠. 지금은 전략을 바꿔 금액을 높여 큰 프로젝트만 맡았죠. 프로젝트마다 아메바 조직처럼 크몽을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팀원을 뽑아 협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획과 총괄을 하죠."
Q. 자녀들에게 금융 교육을 하신다고요.
"돈은 물질적인 가치이자 상징적인 의미일 뿐입니다. 돈에 목을 매여서는 안 돼요. 돈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허공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받아 오는 것이죠. 그러면 먼저 사람을 배워야 합니다. 그다음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배워야 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Q. 유퀴즈 방송 출연을 고사하셨다고요.
"코로나시기에 제주도에 살았을때 연락을 받았어요. 당시 제가 TV를 안 봐서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몰랐었죠.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됩니다. (웃음) 사실 그 당시에는 저도 고민이 컸어요. 아이들 3명을 돌보면서 디지털 노마드로 계속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코로나가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착하는 삶을 놓고 갈림길에 서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방송에 나가면 프레임에 씌워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기로 했어요."
Q. 전환점에 있는 분들에게 어떤 점을 추천하시나요.
"저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주문을 외웁니다. '난 오늘 죽는 날이다'라고요.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화를 내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잖아요. 한순간도 허비하지 말자고 생각하죠. 사람은 이러나저러나 후회하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도전해 본 다음에 후회하는 것이 좋겠죠."
Q.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도전은 계획 없이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계획을 하면 할수록 걱정만 늘어요.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태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다음 스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곧바로 움직여요. 도전은 머릿속 생각안에 갇혀 있지 않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 올해 2월 독일로 떠납니다. 오프라인에서 펼치고 싶은 사업이 있거든요. 디지털 노마드를 생활하며 느낀 점은 다른 곳에서 살면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 다른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되죠. 저는 지금까지 직업이 24가지가 있었죠. 틀 안에 살지 않고 계속 움직일 겁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Q.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웹사이트 최적화 전문기업 '마케스터즈' 대표 최재우(36) 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갔어요.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돈이 굉장히 많이 들더군요. 일단 영주권을 먼저 따서 학자금 대출을 받자는 생각에 간호학과로 옮겼죠. 그렇게 2009년 졸업했더니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취업 길이 막혔습니다. △수학 조교 △편의점 △식당 △치기공 세일즈맨 △골프웨어 세일즈맨 △막노동 △중국 식당 웨이터 △화상영어 사업 등을 하며 버텼죠. 친구 집에서 한 달에 120달러를 주고 소파에서 잠을 잤어요. 그런데 그럴 돈마저 없어지자 학교 근처 다리 밑에서 노숙을 시작했죠.(웃음)"
Q.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고요.
"친구를 통해서 호스피스 간호사 일자리를 어렵게 구했어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곳이에요. 숨도 못 쉬고 소화도 못한 채 기계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그들의 옆에는 건강했던 시절의 사진들이 놓여 있는데, 한때는 다들 잘나가던 이들이었던 거에요. 그 안에서도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꽃과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의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인생에 가족이 가장 중요하구나! 깨달았죠."
Q. 왜 한국에 다시 돌아왔나요.
"군 복무를 하려고 2012년 한국으로 왔어요. 10여년 만에 뵌 부모님이 낯설더군요. 이제는 한국에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막노동까지 전전하다 헬스장에서 아내를 만나 첫눈에 반했죠. 당시 전 재산이 10만원뿐이었어요. 그런 저라도 괜찮다고 말을 해줘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어깨가 무거워 지더군요. 아이를 키워야 하니 고정 수입이 필요했죠. 정말 막막했습니다."
Q. 그러다 코딩을 배우셨다고요.
"원래는 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줘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거든요. 목수를 하면 전국 어디든 여행하면서 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죠. 가족과 함께 움직이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찾자 코딩을 배웠습니다. 코딩 개발자야말로 '디지털 부동산'을 짓는 목수라고 생각했습니다." Q. 컴퓨터를 잘 다루셨었나요.
"전혀요. 아내에게 딱 한 달만 코딩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 이후에는 막노동이라도 하겠다고 했죠. 학원 대신 모든 정보를 온라인으로 얻었어요. 유튜브랑 영문자료를 보고 하루에 18~20시간을 공부했죠. 그렇게 3주 만에 서비스를 내놓고 첫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
Q. 웹사이트 최적화는 어떤 일인가요.
"쉽게 말해 집처럼 홈페이지를 고치는 일입니다. 국내에 수많은 웹사이트가 있지만,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야 상위로 노출이 되는지는 몰라요. 기업에서는 비용을 들여 광고 마케팅을 하는 수밖에 없죠. 구글에서는 매달 분기마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요. 기준에 맞춰 사이트를 만들면 상위 노출이 가능하죠. 해외에서는 이 분야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었어요. '블루오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웃음)"
Q. 디지털 노마드로 어떻게 수익 활동을 해야 하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후기입니다. 사람들은 후기를 신뢰해요. 아무런 후기가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일을 맡기지 않아요. 처음에는 제가 가진 노하우의 가치가 10만원어치라면 5000원에 해드렸습니다. 10만원을 들여야 할 일을 5000원에 해준다니 입소문이 났죠. 어느 정도 후기가 쌓이고 신뢰가 생기면서 점점 규모를 키웠습니다. 크몽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전국 전 세계에서 고객을 매칭했습니다. 그 덕분에 △홍콩 △유럽 △동남아 등 가족과 여행하면서 일할 수 있었죠. 계약이나 정산 관리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일에만 전념 가능했습니다." Q. 디지털 노마드의 실제 삶은 어떤가요.
"사업이 커지면서 매달 수천만 원의 수익을 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해외 휴양지에서 회사원처럼 일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욕심을 버렸어요. 생활을 유지할 만큼만 돈을 벌자고 정했죠. 지금은 전략을 바꿔 금액을 높여 큰 프로젝트만 맡았죠. 프로젝트마다 아메바 조직처럼 크몽을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팀원을 뽑아 협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획과 총괄을 하죠."
Q. 자녀들에게 금융 교육을 하신다고요.
"돈은 물질적인 가치이자 상징적인 의미일 뿐입니다. 돈에 목을 매여서는 안 돼요. 돈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허공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받아 오는 것이죠. 그러면 먼저 사람을 배워야 합니다. 그다음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배워야 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Q. 유퀴즈 방송 출연을 고사하셨다고요.
"코로나시기에 제주도에 살았을때 연락을 받았어요. 당시 제가 TV를 안 봐서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몰랐었죠.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됩니다. (웃음) 사실 그 당시에는 저도 고민이 컸어요. 아이들 3명을 돌보면서 디지털 노마드로 계속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코로나가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착하는 삶을 놓고 갈림길에 서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방송에 나가면 프레임에 씌워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기로 했어요."
Q. 전환점에 있는 분들에게 어떤 점을 추천하시나요.
"저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주문을 외웁니다. '난 오늘 죽는 날이다'라고요.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화를 내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잖아요. 한순간도 허비하지 말자고 생각하죠. 사람은 이러나저러나 후회하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도전해 본 다음에 후회하는 것이 좋겠죠."
Q.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도전은 계획 없이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계획을 하면 할수록 걱정만 늘어요.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태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다음 스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곧바로 움직여요. 도전은 머릿속 생각안에 갇혀 있지 않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 올해 2월 독일로 떠납니다. 오프라인에서 펼치고 싶은 사업이 있거든요. 디지털 노마드를 생활하며 느낀 점은 다른 곳에서 살면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 다른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되죠. 저는 지금까지 직업이 24가지가 있었죠. 틀 안에 살지 않고 계속 움직일 겁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여러 직업을 가지는 'N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N잡 뿐만 아니라 NEW잡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방준식의 N잡 시대>는 매주 일요일 연재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