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이 자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정보를 재무제표 수준으로 공개하는 ‘ESG 공시’ 의무화가 1년 이상 미뤄진다. 공시 기준과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바로 도입하기 어렵다는 경제계의 지적을 금융당국이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6일 서울 여의도동 금융투자협회에서 기업·학계·유관기관 모임인 ‘ESG 금융추진단’ 제3차 회의를 열고 “국내 ESG 공시 도입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등 주요국의 ESG 공시 의무화가 지연됐고, 주요 참고 기준인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이 지난 6월에야 확정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당초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할 방침이었다. 기존 일정대로라면 기업은 당장 내년도 ESG 정보를 대상으로 2025년 초부터 공시를 준비해야 했다.

금융위는 구체적인 공시 도입 시기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후 확정하기로 했다. 이르면 다음달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열리는 민관 합동 ESG 정책협의회에서 확정하는 ‘국내 ESG 공시제도 로드맵’에 구체적인 도입 시기가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ESG공시, 대기업부터 단계 도입…시행 초기엔 제재 수준도 최소화"

금융감독당국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한 것은 상장기업의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만큼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ESG 공시제도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월 발표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ESG 국제기준에 따르면 기업은 협력사까지 포함한 가치사슬 내(스코프3)의 온실가스 배출량, 온실가스 감축 계획, 기후 리스크 등 각종 비재무 정보까지 촘촘히 공시해야 한다. 허위로 공시하면 자본시장법 위반을 근거로 제재 조치가 부과될 수 있다.

이를 두고 그간 재계에선 2025년 공시 의무화는 무리라는 지적이 잇달았다. 2025년 공시를 위해선 내년부터 각종 데이터를 취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기준도, 인프라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세부 지침 또한 없다. 국가별 ESG 공시기준의 표준 격인 ISSB의 공시기준은 6월에야 나왔다. 이 기준에 대한 한글 최종번역본은 오는 12월 말에나 나올 전망이다.

데이터를 취합·검증할 실무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상장사가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수치를 따지려면 협력업체 데이터까지 측정해 검증해야 한다. 이 같은 체계를 구축하는 데만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중론이다.

금융위가 ESG 공시 도입 시기를 1년 이상 연기한 것은 이 같은 문제점을 고려한 조치다. 금융위는 ESG 공시를 의무화해도 기업 규모별로 대상을 차차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해외 규제와 글로벌 자본시장 등의 영향을 받는 대형 상장사부터 도입하고, 이후 국내 시장 여건 등을 감안해 대상 기업을 늘린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제도 도입 초기엔 ESG 공시에 따르는 제재 수준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김 부위원장은 “공시 가이드라인과 인센티브 등으로 기업의 ESG 공시를 지원할 것”이라며 “관계부처와 기업 컨설팅을 확대하고,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과 함께 정책금융 연계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은 일단은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기업 현실을 고려해 ESG 공시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폭넓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