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나서야 할 땐 반드시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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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병원 원장실 유리창을 깼다. 하굣길에 학교 앞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축구를 하다 벌어진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친구들 여럿이서 공 뺏기를 하다 찬 공이 하필이면 그쪽으로 날아갔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비명이 들리자 우리는 모두 놀라 학교로 되돌아 도망쳤다. 이튿날 담임 선생님이 수업 시작 전에 어제 병원 옆에서 공놀이한 학생들을 불러 세웠다. “누군지 다 알고 있다”라는 말에 모두 나왔다. 병원장이 학교에 항의하며 학생들이 찾아와 사과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며 선생님과 같이 갈 학생들은 따라나서라고 했다. 나는 같이 가지 않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을 때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를 만나고 가는 걸 봤다. 아버지는 그날 바로 부르지 않았다. 긴 하루가 더 지나고서야 아버지가 불렀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찾아와 한 얘기를 알려줬다. "도망가는 학생 중에 병원 옆집 사는 아이를 봤다. 그래서 그 학생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병원장이 '옆집 학생이 낀 거니 사과만 받으라'고 했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두 가지를 문제 삼았다. 사과하러 갈 때 같이 가지 않은 일과 어제 선생님이 다녀간 걸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었다. 변명해보라고 했다. 유리창을 깬 그 공은 내가 차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애를 잘못 키웠다"라고 자책하며 이전과 다르게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날 비장하게 하신 말씀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아버지는 "살아가며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지르거나 사고를 칠 수도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사과하거나 용서를 빌거나 사고를 수습해 같은 일이 더 벌어지지 않게 하는 지각이 있어서다"라며 "네가 한 일은 모두 교육받은 인간이 한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이제껏 네게 가르친 게 모두 허사다"라며 비통해했다. 한참 쉬었다가 "비겁한 놈"이라고 한 아버지는 "내 친구인 병원장이 너를 못 알아봤을 리 없다. 그럼 그 자리서 바로 사과하면 될 일이다. 선생님이 사과하러 간다고 할 때 네가 앞장서야 했다. 더욱이 선생님이 다녀간 걸 알면서도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라고 내 잘못을 일일이 지적했다. 그 후부터 옆집인 병원을 피해 돌아서 학교에 갔다. 불러 야단치면 끝날 일을 학교에 일러바쳐 일을 키운 병원장이 얄미웠다.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유리창은 어머니가 교체해줬다.
몇 년 지나 그날 일을 떠올리며 일깨워준 고사성어가 '모수자천(毛遂自薦)’이다. 자신을 스스로 추천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온다.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인 평원군 조승(趙勝) 집에 모여든 손님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진(秦)나라가 수도 한단까지 포위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연합하고자 했다. 평원군이 같이 갈 용기 있고 문무를 겸비한 인물 20명을 뽑을 때 한 사람이 모자랐다. 이때 모수(毛遂)가 나서면서 자신을 데려가라고 자천했다. 평원군이 "내 집에서 3년이나 기거했지만 아무도 선생을 칭찬하는 말을 듣지 못했소"라고 말하자 모수는 자신 있게 대답해 초나라에 같이 갔다. 초나라 왕 설득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모수가 칼자루를 잡고 초 왕을 협박하면서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에 성공했다. 평원군은 "내 다시는 선비의 관상을 보지 않겠다. 모 선생조차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모 선생의 무기는 단지 세 치의 혀였지만 그 힘은 정말 백 만의 군사보다도 더 강한 것이구나"라며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준비가 안 된 채 함부로 나서서도 안 되지만, 나서야 할 땐 모수처럼 반드시 나서야 한다. 너를 가장 잘 설명해줄 사람은 너 자신이다. 서슴거나 망설이면 후회만 남는다"라고 했다. 또 "그때 필요한 게 용기다. 용기는 두려움이나 위험을 극복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다. 용기는 타고난 기질도 있어야지만, 노력과 경험을 통해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용기를 키우는 가치관이나 신념, 자존감을 스스로 높이기를 당부했다.
특히 아버지는 "목표가 명확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는다. 너도 모르는 잠재력을 믿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용기를 내게 해준다"고 했다. 용기는 한 번에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과 경험을 통해 조금씩 키워지는 성품이다. 손주들에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꼭 물려줘야 할 참으로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학교 끝나고 집에 왔을 때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를 만나고 가는 걸 봤다. 아버지는 그날 바로 부르지 않았다. 긴 하루가 더 지나고서야 아버지가 불렀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찾아와 한 얘기를 알려줬다. "도망가는 학생 중에 병원 옆집 사는 아이를 봤다. 그래서 그 학생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병원장이 '옆집 학생이 낀 거니 사과만 받으라'고 했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두 가지를 문제 삼았다. 사과하러 갈 때 같이 가지 않은 일과 어제 선생님이 다녀간 걸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었다. 변명해보라고 했다. 유리창을 깬 그 공은 내가 차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애를 잘못 키웠다"라고 자책하며 이전과 다르게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날 비장하게 하신 말씀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아버지는 "살아가며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지르거나 사고를 칠 수도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사과하거나 용서를 빌거나 사고를 수습해 같은 일이 더 벌어지지 않게 하는 지각이 있어서다"라며 "네가 한 일은 모두 교육받은 인간이 한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이제껏 네게 가르친 게 모두 허사다"라며 비통해했다. 한참 쉬었다가 "비겁한 놈"이라고 한 아버지는 "내 친구인 병원장이 너를 못 알아봤을 리 없다. 그럼 그 자리서 바로 사과하면 될 일이다. 선생님이 사과하러 간다고 할 때 네가 앞장서야 했다. 더욱이 선생님이 다녀간 걸 알면서도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라고 내 잘못을 일일이 지적했다. 그 후부터 옆집인 병원을 피해 돌아서 학교에 갔다. 불러 야단치면 끝날 일을 학교에 일러바쳐 일을 키운 병원장이 얄미웠다.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유리창은 어머니가 교체해줬다.
몇 년 지나 그날 일을 떠올리며 일깨워준 고사성어가 '모수자천(毛遂自薦)’이다. 자신을 스스로 추천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온다.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인 평원군 조승(趙勝) 집에 모여든 손님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진(秦)나라가 수도 한단까지 포위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연합하고자 했다. 평원군이 같이 갈 용기 있고 문무를 겸비한 인물 20명을 뽑을 때 한 사람이 모자랐다. 이때 모수(毛遂)가 나서면서 자신을 데려가라고 자천했다. 평원군이 "내 집에서 3년이나 기거했지만 아무도 선생을 칭찬하는 말을 듣지 못했소"라고 말하자 모수는 자신 있게 대답해 초나라에 같이 갔다. 초나라 왕 설득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모수가 칼자루를 잡고 초 왕을 협박하면서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에 성공했다. 평원군은 "내 다시는 선비의 관상을 보지 않겠다. 모 선생조차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모 선생의 무기는 단지 세 치의 혀였지만 그 힘은 정말 백 만의 군사보다도 더 강한 것이구나"라며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준비가 안 된 채 함부로 나서서도 안 되지만, 나서야 할 땐 모수처럼 반드시 나서야 한다. 너를 가장 잘 설명해줄 사람은 너 자신이다. 서슴거나 망설이면 후회만 남는다"라고 했다. 또 "그때 필요한 게 용기다. 용기는 두려움이나 위험을 극복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다. 용기는 타고난 기질도 있어야지만, 노력과 경험을 통해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용기를 키우는 가치관이나 신념, 자존감을 스스로 높이기를 당부했다.
특히 아버지는 "목표가 명확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는다. 너도 모르는 잠재력을 믿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용기를 내게 해준다"고 했다. 용기는 한 번에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과 경험을 통해 조금씩 키워지는 성품이다. 손주들에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꼭 물려줘야 할 참으로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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