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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부터 입주까지 고작 4년8개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동부센트레빌이 '강남 재건축'의 신화로 불리는 이유다. 이 단지는 2000년 2월 안전진단을 신청해 2005년 1월 입주했다. 공사 기간 3년을 빼면 2년 사이에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계획인가 등 인허가를 모두 끝마쳤다. 전신인 대치주공고층 3단지와 비슷한 시기 지어진 은마아파트가 안전진단 신청부터 조합설립인가까지 20년이 걸렸다는 점을 보면 얼마나 '초고속'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임대주택 규제 피해 간 강남권 유일의 재건축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대치 동부센트레빌처럼 재건축을 초고속으로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일단 재건축 시기부터 특이하다. 대치주공고층3단지는 은마아파트보다도 1년 뒤인 1980년에 준공됐다. 재건축 안전진단을 받은 게 2000년으로 지어진 지 20년째 되던 해다. 현행 재건축 연한(30년)도 채우지 못한 채 재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이 단지는 재개발·재건축·도시환경정비사업을 규율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서 정한 규제를 모두 피해 갔다. 도정법이 2003년 제정됐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주택건설촉진법이 적용됐다. 그때만 해도 재건축 연한은 '20년'이었다. 당시 20년을 넘긴 은마아파트도 2002년 재건축 안전진단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2006년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도시정비조례를 제정하면서 1980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에 대해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대폭 강화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도정법 개정으로 재건축 연한이 30년으로 완화됐다.재건축을 가로막는 가장 높은 걸림돌이 '공공기여(기부채납)'다. 고소득 계층이 많은 강남권에서 유독 줄이고 싶은 공공기여 항목으로는 임대주택이 꼽힌다. 대치동부센트레빌에는 임대주택이 없고, 공공기여도 없었다. 도시정비법에서 임대주택 의무비율 규제(제정 당시에는 용적률 증가분의 25% 이상, 지금은 50% 이상)가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재건축에 대의원으로 참여한 한 주민은 "도정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미리 입수하고 그 전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2003년 도입된 소형평형 의무비율 규제도 절묘하게 피해 갔다. 2003년 정부는 그해 9월5일 이후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하는 300가구 이상 단지에 전용 59㎡ 이하로만 60%를 채우도록 했다. 이 단지는 2001년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공원 등 공공기여도 피해 갈 수 있었다. 공공기여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규정한 '지구단위계획' 제도가 2001년 국토계획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 도시계획조례도 개정되면서 300가구 이상 재건축은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대치동부센트레빌은 그해 3월 강남구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건축심의를 신청한 단지는 제외한다'는 예외 규정을 적용받았다. 공공기여 없이도 제3종일반주거지역의 법적 상한용적률인 300%나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요즘 '지분쪼개기'로 재건축 사업의 화두로 떠오른 상가 문제는 이 단지에도 있었다. 20여명의 상가 소유주가 재건축을 반대하고 나선 것. 다행히 '지분 쪼개기'는 없었다. 그런데도 아파트 조합원이 상가 소유주의 차를 막고 퇴근을 방해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었다. 하지만 합의는 3개월 만에 성사됐다. 조합 측은 상가 소유주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주진 않았다. 대신 상가의 대지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넓히고, 추가로 상가 뒤편 지상 주차장의 소유권도 나눠줬다. 재건축에 참여했던 주민은 "도곡역 사거리에 접해있어 외부인도 많이 찾는 곳"이라며 "단지 내부에 상가가 있는 경우보다 임대수익이 많고 대지지분의 가치도 높아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서 징구'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공동사업시행자인 동부건설이 조합을 도와 시공사 선정 2주 만에 법적 동의율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1년가량 걸리는 이주도 5개월 만에 끝냈다. 동부건설이 이주비의 10%를 선지급해 가면서 이주를 거들었다.
5년 만에 시세 4배 '대박'...비결은 확정지분제
대치동부센트레빌을 방문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 있다. 왜 동부건설이냐는 것. 주변 아파트가 다 '래미안'이기 때문이다. 도곡역 사거리에서 대각으로 마주 보는 게 한국 최초의 고층 주상복합인 타워팰리스다. 서쪽으론 도곡동 삼성래미안, 동쪽으로는 래미안대치팰리스가 보인다. 삼성물산이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지역으로 꼽힌다.2000년 시공사 선정 때 대치·도곡동은 삼성물산의 독주 무대였다. 은마아파트의 시공권도 2002년부터 삼성물산이 갖고 있을 정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삼성물산의 라이벌은 현대건설이었다. 그런데 현대건설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계기로 2000년 부도를 내면서 경쟁자가 사라졌다. 현대건설은 이듬해 8월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다. 대우건설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워크아웃에 돌입한 시기였다. 삼성물산은 낙관하면서 입찰에 참여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507명 참석에 269표를 얻어 동부건설이 시공권을 따낸 것. 31표 차에 불과했다. 동부건설이 제시한 '확정지분제'가 핵심이었다. 대부분의 재건축은 도급제로 이뤄진다. 도급제에서 시공사는 오로지 공사만 맡고 모든 책임은 건축주인 조합이 진다. 중간에 설계가 바뀌거나 공사비가 증가하면 조합원의 분담금도 늘어난다. 대신 사업으로 얻은 수익은 모두 조합이 얻게 된다. 삼성물산도 도급제로 시공권 입찰에 참여했다.
확정지분제는 시공사 선정 때부터 조합원의 분담금과 환급금이 확정된다. 나중에 공사비 협상으로 분담금이 늘어나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대신 시공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재건축 사업에 관여한다. 조합과 함께 공동사업자로 참여해 동의서 징구부터 각종 심의에 드는 비용, 조합 운영비 등을 모두 분담한다. 나중에 분양으로 얻는 수익도 나눠 갖게 된다. 도급제에서 조합원 분담금은 당시에도 큰 이슈였다. 처음엔 낮은 공사비로 수주했다가 나중에 늘려서 청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동부건설이 제안한 확정지분제는 조합원에게 낮은 분담금, 심지어는 환급금까지 약속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었다. 공사비 협상으로 재건축이 길어지는 일도 없었다. 실제로 동부건설은 확정지분제 약속을 지켜 조합원은 정해진 분담금 외에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전용 74㎡ 거주자가 전용 121㎡으로 배정되면 5700만원의 환급금이 돌아왔다. 분담금을 낸 게 아니라 분양수익이 돌아온 것이다. 전용 84㎡ 거주자가 전용 121㎡로 배정받았을 땐 1억5000만원을 벌 수 있었다. 전용 74㎡를 전용 145㎡로 넓혔을 땐 분담금 5600만원, 전용 84㎡를 전용 145㎡로 배정받을 땐 200만원만 냈다. 가장 넓은 전용 161㎡로 받았을 때도 각각 1억3000만원, 8400만원 분담금이 고작이었다. 2001~2004년 당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5.86~6.31%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조합원은 '대박'을 쳤다. 2000년 전용 84㎡ 시세는 4억7000만원 선이었는데, 이 평형 조합원이 입주한 161㎡는 2005년 최고 21억원까지 올랐다. 추가분담금 8420만원을 빼도 4배 뛴 셈이다.
이처럼 분양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임대주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합원분 551가구를 뺀 254가구가 전부 일반분양으로 배정돼 고스란히 분양수익으로 조합원과 동부건설에 돌아갔다. 지금 제3종일반주거지역 허용용적률(230%)에서 법적상한용적률(300%)까지 채우려면 용적률 증가분의 절반인 35%포인트를 임대주택으로 배정해야 한다. 만약 지금 재건축했다면 대치주공고층3단지의 용적률은 200%였기 때문에 일반분양 가구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출혈경쟁'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동부건설도 상가 절반을 소유해 수익을 낼 수 있었다.
20년 지났지만, 신축에 손색없어
준공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대치 동부센트레빌은 지금도 새 아파트 단지에 비해 여러 면에서 손색이 없다. 일단 평형부터 임대주택도 없이 전용 121~161㎡ 대형 평수(805가구)만 있다. 동부건설이 심혈을 기울인 특화설계도 적용됐다.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주차장을 모두 지하로 넣어 지상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분수와 폭포, 인공연못 속 잉어 등 요즘 나오는 아파트 조경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드물게 아파트 전면부를 유리로 마감한 커튼 월 공법이 적용됐다. 도심부 오피스나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에 쓰이는 공법으로 강남권 아파트에서 적용된 사례는 유일하다.
7개 동 전부가 이어진 지하 2층짜리 주차장이 있어 주차대수가 가구당 2.26대에 달한다. 모든 집이 4베이(방 3칸과 거실 전면 향 배치)에 남향 배치. 차량 귀가 알림 시스템과 중앙 집진식 청소시스템, 전기·수도·가스 등을 중앙관리실에서 자동 검침하는 원격 검침 시스템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스마트홈 기술까지도 적용됐다. 지하철 3호선·수인분당선을 바로 앞에 둔 역세권 단지다. 대치동인 만큼 학군지로서는 최상의 입지다. 대도초와 중대부고, 단대부고, 숙명여중·고가 단지 바로 옆에 있다. 역삼중, 대치중, 대치초도 인근이다.
대형 평수만 있기 때문에 시세는 더 높아진다. 전용 121㎡는 지난 8월 42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달 145㎡는 48억원에 손바뀜하며 최고가를 기록했다. 161㎡도 같은 달 50억3000만원에 팔리면서 2022년 2월 최고가(50억5000만원)에 근접했다. 인근 한 공인중개 대표는 "재건축만 하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었던 때 지어진 아파트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여러 규제가 도입된 지금은 재현하기 어려워졌다"며 "남쪽의 우·선·미(개포우성·선경·한보미도)가 재건축 인허가를 할 때마다 이 일대 시세도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