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다녀왔습니다. 10대 때인 1920년대부터 작고하기 전인 1990년대까지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하고, 본인만의 예술세계를 넓혀간 장욱진 화백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 2, 3층 전관에 걸쳐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삽화, 도자기 그림 등 그의 방대한 작품 수만큼이나 폭넓은 화풍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 사이사이 혹은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구조물에는 화백의 어록들을 새겨놓았는데 그의 예술관, 성정을 엿볼 수 있었기에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습니다. 후에 조사해보니 장욱진 화백은 1975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강가의 아틀리에>라는 제목의 화문집을 출간하였고, 1986년에는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작품을 통해 창작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더욱 깊이 알고자 창작자와 관련된 것을 모조리 찾아보는 성격인지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바로 서점에 들러 장욱진 화백의 화문집 <강가의 아틀리에>을 구매했습니다.

책 서문에 ‘나의 글은 그림에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을 풀어쓴 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림도, 글도 장르만 다를 뿐 그에게는 예술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자 일상 속 사유와 경험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라는 것을 화문집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지 재질의 하드 커버로 만들어진 책의 묵직함을 즐기다가 책을 펼쳤습니다. 목차를 쭉 훑어보다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강가의 아틀리에에서> 챕터를 가장 먼저 읽어봤습니다. 자연 속에서 물아일체의 삶을 살다 간 화백답게 작업실 근처의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하고, 작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고독과 몰입을 담백한 문체로 써놓은 글이었습니다. 살짝 생기가 사그라든 오후의 햇빛이 강가의 잔잔한 수면에 반사되어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듯한 이미지가 글에서 자연스럽게 풍겨나기도 했고요.

특히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적막한 자연과 쓸쓸함을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 마지막 문단은 소박하지만 투명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강가의 아틀리에 / 열화당 제공
강가의 아틀리에 / 열화당 제공

장욱진의 자연을 닮은 음악

때 맞춰 피고, 맺고, 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작품 속 모티브로 등장시켰던 장욱진 화백. 그의 작품 속 자연과 닮은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13곡 <백조>
총 14곡으로 이루어진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가장 유명한 13곡 '백조'입니다. 생상스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피해 휴가차 들른 소도시에서 만난 친구들과 친목 삼아 연주하려고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는 현재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생상스는 이 장난스러운 곡으로 인해 자신이 진지한 예술가로 비추어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백조' 악장을 제외하고는 출판 및 공개연주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비치는 햇빛과 처음 비치는 달빛 사이,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를 묘사하는 듯한 서정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 이 곡에서 고요히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백조의 모습은 첼로 파트가, 투명한 호수 위의 윤슬은 피아노 파트가 맡았습니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프리마베라>
‘봄’이라는 단어는 한 글자만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 한 번 더 주어진 기회, 노란색과 닮은 희망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현대음악 작곡가 에이나우디가 2008년에 작곡한 '프리마베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작품은 대개 몽환적이면서도 격정적이고, 개성 강하면서도 대중을 매혹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녘, 길을 따라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을 비추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 곡의 도입부에서는 여리게 지속음을 연주하는 현악기 위로 주인공 역할의 피아노가 등장하여 담담하게 독백을 이어나갑니다. 몰아치는 비바람을 묘사하는 비발디의 하강 음계가 들리며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다시 한 번 도입부의 분위기를 재현하며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