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앞으로 다가온 美 대선, 음악계에서 불붙은 대리 선거전 [오현우의 듣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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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오현우의 듣는 사람
내년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두고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보수 지지자들의 역습이 펼쳐지고 있다. 컨트리송을 앞세워 지지세를 결집했다. 백인 노동자 계층이 대중문화계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컨트리송을 통해 분출된 것이다. 진보 진영에선 경각심을 드러내며 노동자 계급을 등한시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주(8~14일) 빌보드 앨범 차트에선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 미국의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의 신규 음반 '원 씽 엣 어 타임'이 1위에 등극했다. 지난 3월 발매된 뒤 16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음반 하나로 1위를 16번 등극한 것은 영국 팝스타 아델이 2011~2012년 세운 24회(앨범 21)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월렌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월렌은 지난해 3월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영상 때문에 홍역을 앓았다. 그가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니거(검둥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게 찍힌 영상이다. 영상이 퍼진 뒤 미국 방송사는 앞다퉈 월렌의 음악을 내보내는 걸 중단했다. 음원 플랫폼에서도 그를 퇴출했다. 일종의 '캔슬(취소)' 문화에 휘말렸다.
불미스러운 파문에도 월렌을 비롯한 컨트리 가수가 올해 약진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3위가 모두 컨트리 음악으로 채워진 적도 있다. 컨트리 음악이 1~3위를 휩쓴 것은 빌보드가 집계를 시작한 1958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컨트리의 부활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무명 가수인 올리버 앤서니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앤서니의 데뷔곡 '리치 맨 오브 리치먼드(리치먼드의 부자들)'는 발매된 지 2주 만인 지난달 지난 8월 21일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스위프트,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 팝스타를 제친 것. 노래는 단순하다. 통기나 반주와 앤서니의 노래가 전부다. 카우보이가 즐겨 부를 것처럼 멜로디는 간결하다.
뮤직비디오도 단출하다. 후줄근한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앤서니가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영상 공개 후 12일 만에 조회 수는 3000만건을 넘겼다. 앤서니의 노래가 미국을 뒤흔든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저학력 공장 노동자인 앤서니는 백인 노동자 계층을 대변했다. "오늘도 형편없는 월급을 받으며 초과근무를 했어요", "너의 달러는 끝없이 세금으로 흘러 들어가"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복지 정책과 정치권을 비판하는 가사가 미국 백인 보수층의 관심을 끌었다.
앤서니는 정치적 성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내 정치 성향은 중도다"라고 밝혔지만 이미 공화당에선 그의 노래를 활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앤서니의 노래는 진보 진영에서도 논란이 됐다. 진보주의자들이 노동자 계급에 대해 등한시했다는 지적이다. 수많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려 약물 중독에 빠지고 있지만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지 않았다. 되레 인종 차별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의제로 내세웠다.
때문에 진보 진영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8월 사설을 통해 "자유주의자(Liberal)들은 계급 문제를 등한시한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며 "이들은 백인 노동자 계급이 편협하고, 저학력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계급 격차에 대한 의제를 진보 진영에서 선점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앤서니처럼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소득 대비 세금 비율은 평균 24%에 달한다. 2018년 미국 내 소득 상위 400명의 소득 대비 세금 비율(23%)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상 과세로 인한 소득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상태다.
불평등이 심화하며 백인 노동자 계급의 불만이 계속 쌓여왔지만, 주류 매체에서 이를 고의로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문제, 낙태법 등 다른 문제로 계급 차별을 덮어버렸다는 주장이다. 실제 남가주대학 노먼리어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층은 주류 미디어를 불신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진보주의자보다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C) 주의'가 대두되자 반발심리가 커진 것이다.
미국 보수층이 컨트리 음악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역습에 나섰다는 평가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컨트리 음악을 '보수의 찬가'로 활용했다는 해석이다. 보수 성향 방송인 클레이 트래비스는 "'정치적 올바름(PC) 주의'가 (대중문화) 콘텐츠를 장악한 방식에 사람들은 분노했다"며 "여러분이 보는 것은 반발과 반란"이라고 평가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지난주(8~14일) 빌보드 앨범 차트에선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 미국의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의 신규 음반 '원 씽 엣 어 타임'이 1위에 등극했다. 지난 3월 발매된 뒤 16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음반 하나로 1위를 16번 등극한 것은 영국 팝스타 아델이 2011~2012년 세운 24회(앨범 21)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월렌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월렌은 지난해 3월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영상 때문에 홍역을 앓았다. 그가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니거(검둥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게 찍힌 영상이다. 영상이 퍼진 뒤 미국 방송사는 앞다퉈 월렌의 음악을 내보내는 걸 중단했다. 음원 플랫폼에서도 그를 퇴출했다. 일종의 '캔슬(취소)' 문화에 휘말렸다.
불미스러운 파문에도 월렌을 비롯한 컨트리 가수가 올해 약진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3위가 모두 컨트리 음악으로 채워진 적도 있다. 컨트리 음악이 1~3위를 휩쓴 것은 빌보드가 집계를 시작한 1958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컨트리의 부활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무명 가수인 올리버 앤서니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앤서니의 데뷔곡 '리치 맨 오브 리치먼드(리치먼드의 부자들)'는 발매된 지 2주 만인 지난달 지난 8월 21일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스위프트,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 팝스타를 제친 것. 노래는 단순하다. 통기나 반주와 앤서니의 노래가 전부다. 카우보이가 즐겨 부를 것처럼 멜로디는 간결하다.
뮤직비디오도 단출하다. 후줄근한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앤서니가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영상 공개 후 12일 만에 조회 수는 3000만건을 넘겼다. 앤서니의 노래가 미국을 뒤흔든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저학력 공장 노동자인 앤서니는 백인 노동자 계층을 대변했다. "오늘도 형편없는 월급을 받으며 초과근무를 했어요", "너의 달러는 끝없이 세금으로 흘러 들어가"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복지 정책과 정치권을 비판하는 가사가 미국 백인 보수층의 관심을 끌었다.
앤서니는 정치적 성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내 정치 성향은 중도다"라고 밝혔지만 이미 공화당에선 그의 노래를 활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앤서니의 노래는 진보 진영에서도 논란이 됐다. 진보주의자들이 노동자 계급에 대해 등한시했다는 지적이다. 수많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려 약물 중독에 빠지고 있지만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지 않았다. 되레 인종 차별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의제로 내세웠다.
때문에 진보 진영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8월 사설을 통해 "자유주의자(Liberal)들은 계급 문제를 등한시한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며 "이들은 백인 노동자 계급이 편협하고, 저학력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계급 격차에 대한 의제를 진보 진영에서 선점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앤서니처럼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소득 대비 세금 비율은 평균 24%에 달한다. 2018년 미국 내 소득 상위 400명의 소득 대비 세금 비율(23%)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상 과세로 인한 소득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상태다.
불평등이 심화하며 백인 노동자 계급의 불만이 계속 쌓여왔지만, 주류 매체에서 이를 고의로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문제, 낙태법 등 다른 문제로 계급 차별을 덮어버렸다는 주장이다. 실제 남가주대학 노먼리어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층은 주류 미디어를 불신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진보주의자보다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C) 주의'가 대두되자 반발심리가 커진 것이다.
미국 보수층이 컨트리 음악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역습에 나섰다는 평가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컨트리 음악을 '보수의 찬가'로 활용했다는 해석이다. 보수 성향 방송인 클레이 트래비스는 "'정치적 올바름(PC) 주의'가 (대중문화) 콘텐츠를 장악한 방식에 사람들은 분노했다"며 "여러분이 보는 것은 반발과 반란"이라고 평가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