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소주의 세계화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을 만나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K영화, K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녹색 병’의 정체가 뭐냐고. 녹색 병 앞에만 앉으면 주인공들이 사랑을 고백하고, 속마음을 술술 얘기하고, 울고 웃는다는 것이다. 녹색 병은 한국인의 국민주, K소주다. 소주는 그렇게 한류 콘텐츠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각인됐다.

그 소주가 이제 국민주를 넘어 세계인의 술이 될 조짐이다. 연간 수출량이 1억 상자(한 상자 30병)를 훌쩍 넘는다. 최근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자몽에이슬’ ‘청포도에이슬’ 등 과일소주를 병째 들고 마시는 게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병당 가격은 약 7000원으로 한국(5000원)보다 높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요즘 ‘전루퉁(眞露桶)’이 화제다. ‘전루’는 진로의 중국 발음이다. 전루퉁은 ‘딸기에이슬’ 등 전루와 음료, 과일을 섞어 펀치 스타일로 만든 주류 레시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한다. 이 덕분에 중국 내 과일소주 판매량은 2018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103% 늘었다.

수출 선봉장은 하이트진로다. 세계 80여 개국에 소주를 수출하고 있다. 2021년 1억달러를 넘어선 수출액은 지난해 1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이 크게 늘자 베트남에 해외 첫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롯데칠성도 ‘처음처럼 순하리’를 중심으로 소주 수출을 늘려 37개 국가에 진출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출액은 약 57% 증가했다.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일화다. 2016년 이란 대통령이 프랑스 국빈 방문을 앞두고 오찬에서 와인을 빼줄 것을 요청했다. 이슬람의 금주 율법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와인은 전통문화라며 거절했고, 오찬은 결국 맹물 만남이 됐다. 그래도 프랑스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이탈리아는 와인을 빼고 연회를 베풀었다가 “돈 앞에 이탈리아 문화를 배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외에서 우리 소주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품질을 높이고 음주문화도 더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중주라도 마시는 사람의 멋과 품격, 즐거움이 제대로 어울려야 세계인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