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기업의 4대 소재사업이 향후 3년간 ‘공급 과잉’에 시달릴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전기차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소재 업체의 공격적인 증설이 맞물린 영향이다. 여기에 국내 기업들의 기존 주력 제품인 삼원계가 아닌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요가 급증한 탓도 있다. 배터리 소재 기업들의 증설 계획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배터리 소재 공급과잉"…韓기업, 증설 경쟁 멈추나
17일 삼성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양극재 기업의 올해 생산능력(492GWh)은 내년 글로벌 수요(예상치)보다 142%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요 대비 공급 과잉은 내년 147%, 2025년 146%, 2026년 141%로 향후 최소 3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성장세를 기반으로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의 공급능력 확장 계획 등을 비교한 결과다. 이들 기업의 중장기 배터리 소재 공급과 수요를 비교한 장기 추정치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음극재도 마찬가지다. 올해 122%, 내년 103%, 2025년 109%, 2026년 107%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파악됐다. 전해액 공급 능력은 2025년 수요보다 40% 많고, 분리막은 59%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배터리 4대 소재 모두 공급 과잉 상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공급 과잉은 중국 내 문제로만 여겨져왔다. 해외 시장 개척이 어려운 중국 기업들이 자국에서 난립해 과거 전기차, 태양광 산업처럼 줄도산할 것이란 우려가 작지 않았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중국 공급망을 사실상 배제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수혜를 예상하면서 생산 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하지만 2분기부터 글로벌 전기차 시장 증가세가 꺾이면서 중국 기업의 사례가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을 맞게 됐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지속되며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전기차를 사려는 수요가 줄어 배터리 셀 재고가 쌓이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올 1분기까지 설비 증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했지만 향후 대규모 수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 계획을 짜던 배터리 소재사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완성차 업계가 시장 수요에 따라 저가 전기차 생산을 늘리며 LFP 배터리를 주로 탑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직격탄을 맞게 된 모양새다.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코스모신소재, LG화학 등 국내 양극재 5사의 2025년 생산능력은 연 912GWh로 추정된다. 이 설비는 대부분 삼원계 양극재다. LFP 시장 성장세에 대응하려면 따로 투자를 더 해야 한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양극재 가운데 LFP 비중이 2021년 33%에서 2022년 45%로 증가한 데 이어 올해 51%로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한국 배터리 소재 기업의 가동률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설비 증설 속도도 예상보다 더뎌질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가 성장 산업이었지만 최근엔 자동차 기업의 수요에 따라 실적이 갈리는 경기 순환 산업으로 바뀌며 ‘치킨게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관건은 한국 기업이 대규모 수주를 잇달아 확보한 미국과 유럽의 내년 전기차 수요다.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망간리치, 미들니켈, 단결정 양극재 등 원가를 대폭 낮춘 소재를 개발해 대응하고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