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연 PD/사진=넷플릭스
정종연 PD/사진=넷플릭스
"tvN은 나영석이 벌고 정종연이 쓴다."

정종연 PD의 대표작 '대탈출' 시리즈가 히트하면서 나온 '밈'(meme)이었다. 제작비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연출자,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볼거리와 함께 희로애락을 모두 자극하는 정종연 PD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는다고 했을 때 다른 어떤 예능 연출자들보다 관심을 모았던 부분도 어떤 볼거리를 제공하고, 어떻게 극한의 감정을 자극할지 여부였다.

정종연 PD의 새 프로그램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블스 플랜'은 변호사, 의사, 과학 유튜버, 프로 게이머, 배우 등 다양한 직업군의 12인의 플레이어가 7일간 합숙하며 최고의 브레인을 가리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다. 출연자들이 게임을 하고, 탈락자가 나온다는 점에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더 지니어스' 시리즈와 유사하지만 7일간의 합숙과 감옥 등 새로운 요소들로 신선함을 더했다.

3주에 걸쳐 최종 우승자까지 공개된 후 마주한 정종연 PD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게임이 흘러갔다"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다음은 정종연 PD와 일문일답.
정종연 PD/사진=넷플릭스
정종연 PD/사진=넷플릭스
▲ 연출자로서 프로그램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처음 기대했던 것과 매칭 비율이 12.3% 정도?(웃음) 그만큼 안 맞았다. '현타'가 온다. 많이 얘기가 나오고 시즌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공리주의'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이었다. 첫 경험이었다. 그게 (궤도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정말 뒷면에 뭐가 있는지 많이 파봤지만, 일관된 철학이 맞았다. 그걸 우리가 '그렇게 하지 마'라고 할 수 없어서 당혹스럽지만, 그냥 했다. 어쨌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또한 새로운 서사라 생각했다.

▲ 연출자로서 고민했던 부분이 있나.

이 장르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뭐가 정수인지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경험하면서 느낀 건 출연자의 감정, 행동, 철학 등에 변화해야 한다는 거였다. 성장하거나, 역성장하거나. 그런 부분을 유도하는 장르라고 본다. 합숙 서바이벌이라는 장치가 그걸 더욱 강화하고, 그게 가장 잘 드러난 게 결승 진출전이라고 본다.

▲ 각 출연자는 어떤 기준으로 선발했나.

짧은 면접 과정에서 다 알 수 없지만, 변화의 여지가 있다거나, 성장의 여지가 보이고, 그렇게 됐을 때 서사가 될만한 사람들을 많이 생각했다. 일반인 출연자의 경우 면접을 오래 봤다. 이 사람의 게임에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봤다. 그래도 공격적인 사람을 일반인 중에서 찾으려 했다. 뒤에 시선을 두지 않는 스타일. 출연자들의 균형적인 면에서 봤을 땐 각각의 영역을 나눠 생각했다.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악역만 다 모은다고 해서 재밌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공리주의도 그 부분에 있었다. 다만 중립적인 캐릭터들이 상황적으로 동의하는 부분들이 있었고, 방어적인 플레이를 펼치게 된 거 같다.

▲ 출연자 중 응원했던 사람이 있었나.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류를 했던 스태프고, 개개인은 그런 감정이 쏠릴 수 있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 걸 밝히는 건 부적절하다. 심판이 누굴 응원하는지 밝힐 수 없는 것처럼.

▲ 그런데도 떨어졌을 때 아쉬운 사람이 있지 않았나.

모든 출연자의 떨어짐이 아쉬웠지만, (김)동재가 제일 아쉽긴 했다. 그때 상황이 지나치게 아수라장이 되고, 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전략적으로 풀려서 계획대로 됐다기보단 오해가 중첩되면서 그런 부분들이 있었다. 내 욕망대로 한 것인지 플레이어들도 헷갈리게 되는 거다. 그때 그게 가장 심하게 충돌했던 거 같다. 그걸 정돈하는 게 저에겐 큰 과제였다.

▲ 출연자들의 눈물이 많이 나오긴 했다.

일주일 동안 큰 감정의 파도를 경험하다 보니 그런 거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압축된 경험을 하다 보니, 하루만 지나도 정이 쌓이고, 미안한 일도 했던 거 같은데 그걸 풀지 못하고 집에 보내는 아쉬움이 아닌가 싶다. 서동주 씨가 한명씩 탈락할 때마다 '내 우주가 무너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느낌이 아닌가 싶다. 저희도 같이 갇혀서 촬영하다 보니 스태프 중에도 막판엔 우는 사람도 있었다.(웃음)

▲ 궤도의 '공리주의' 플레이에 대해선 호불호가 나뉘는 분위기다. 방송을 본 그의 반응은 어떤가.

그도 당황하긴 하는데(웃음), 그의 공리주의가 게임을 본격적으로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게 동물원 게임이었다. 궤도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게임 자체와 게임을 했다. 더 나은 사람에게 1점씩 나눠주기 위해. 그게 반대로 궤도를 무너뜨리는 지점이 됐다. 원하는 대로 안됐고, 다들 자기 생각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심경 변화가 일어난 회차였다. 하석진의 서사 변화의 변곡점이기도 했다.

▲ 하석진은 후반부에 각성한 후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이다.

가장 영향을 끼쳤던 건 동재의 탈락이었다. 동재가 탈락하면서 석진의 심경 변화가 시작됐고, 동물원 게임에서는 사실상 게임을 보이콧 한 게 아닌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에 나름대로 불만이 있었고. 그런데도 정신은 피스에 팔려있고. 그래서 게임에 몰입을 못한 게 아닌가 싶다.

▲ 하석진이 감옥 금고를 여는 피스의 비밀을 풀 거라는 믿음은 있었나.

누군가는 풀 거라 기대했고, 사실 너무 늦게 나와서 놀랐다. 서로 다른 모양의 피스 3개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시원 씨가 직관적으로 잘 접근했고, 하석진 씨가 잘 풀었다. 생활 활동에서도 계속 게임을 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게임의 연장선상에서 놓은 장치였다. 이게 큰 변곡점이 될 거라 생각했다. 감옥 매치는 한 게임 정도 더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 감옥 매치 블라인드 오목 대결에서 하석진이 이시원에 비해 손쉽게 이기는 인상을 줘 제작진의 개입을 의심하는 반응도 있었다.

오목 앱 AI로 진행된 게임이었다. 블라인드로 진행되는 만큼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난이도가 높아져서 게임 수준은 가장 쉬운 걸로 했다. 리뷰 녹화할 때 출연자들에게 조종실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시원 씨와 하석진 씨 모두 동일한 난이도였고, 이시원 씨와 게임에서 AI가 좀 더 분발한 거 같다. 두 사람 모두 승률 50% 정도의 가장 낮은 난이도였다.

▲ 게임이 어렵다보니 설명이 지루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설명이 지루하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그게 평생의 고민이다. 저도 쉽고 단순한 규칙의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그게 극악의 난이도다. 다만 게임이 쉬워졌을 때 누구나 아는 해법이 존재하고, 그렇게 되면 운 싸움이고 이렇게 될 수 있으니, 그런 균형을 맞추는 게 저에겐 중요했다. 난이도를 낮추는 건 지상과제다. 멋을 부리려 어렵게 하는 건 아니다.

▲ '최고의 두뇌'라고 프로그램은 소개하지만, 출연자들의 수준차가 크다는 지적도 있었다. 몇몇은 "프로그램의 인지도를 위해 섭외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대중적인 부분을 위해 아이돌, 유튜버를 섭외한 건 맞다. 프로그램의 외연을 넓히고 싶었다. 다만 공격성이 문제였다. 방어적인 사람이 많이 몰린 거 같다. 그 부분은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거 같다. 물론 방어적인 플레이도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제가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 출연자들이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더라. 자연광을 볼 수 없는 곳에서 일주일 동안 촬영이 이뤄진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저도 이번에 하면서 '해를 보여줘야겠다', '세트장 안에 자연광을 녹여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우리가 출연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필요 이상의 자극이 필요한지, 출연자를 해치는 방향이라면 고민한 부분들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도 상주해 있어서 상황이 안 좋다 하면 상담도 진행했다.

▲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공개되면서 연출자로서 새롭게 경험한 부분도 있을까.

'더지니이어스'도 해외에서 보신 분들도 꽤 있고, 팬들도 있다고 알고 있지만, 외연 확장이 엄청나게 된 것 같다. 어떤 채널에서 1위를 하는 건, 신기한 경험이고 어려운 경험이다. 번역해서 보는 건데, 이게 잘 이뤄질까 싶기도 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1등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 '나영석이 번 돈으로 '대탈출'을 만들었다'는 말까지 있었는데, CJ ENM을 퇴사하면서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손을 잡았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건 크리에이터에 대한 존중과 이 회사가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데블스 플랜'은 (김)태호 형 돈으로 만든 게 아니다.(웃음) 넷플릭스 돈으로 만들었다. 저와 넷플릭스와 접점은 이전부터 있었다. 회사가 어디냐는 관계가 없다. 돈은 알차게, 필요한 곳에, 써야 하는 곳에 썼다. 방송국은 예산을 치열하게 쓰는데, 제가 들어가기 전부터 경계가 정해져 있다. 회당 1억, 2억 이렇게. 그런데 넷플릭스는 이유가 있으면 쓰게 해준다. '멋을 부리고 싶다'고 하면, 엄청 멋있게 만들면 해준다.

▲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 건 어딜까.

게임을 개발하는 인건비가 크다. 거기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 그리고 카메라를 숨길 수 있는 스튜디오. 집에다 촬영하는 것과 촬영을 위해 만든 공간은 출연자들의 몰입도가 다르다. 제작 기간이 긴 것도 한몫을 한다.

▲ 준비 기간은 얼마나 됐나.

팀을 꾸려 사람을 모아서 한 건 녹화 전까지 6개월 정도 진행했고, 녹화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쳤다. 포맷까지 새로 짜는 거라, 원래 신규 기획을 할 땐 좀 더 기간이 길어지긴 한다. 편집은 일주일 단위 한 개씩 뽑는 걸 목표로 했고, 넷플릭스에 검수를 보내고, 자막 작업을 하는데 1~2주 정도가 더 소요된다. 그렇게 1년 넘게 걸린 거 같다.

▲ '데블스 플랜'이 연출자로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

저는 이 작품은 제2의 시작으로 생각했다. 저를 알린 프로그램으로 '지니어스'가 꼽힌다. '데블스 플랜'은 CJ를 20년 동안 다니다가 나와서 처음 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고민도 되고,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잡념도 많이 생기지 않나. 그걸 헤치면서 준비했던 작품이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