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쟁규칙 무시한 병원 폭격
지난해 3월 9일 열흘째 고립돼 있던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의 어린이병원과 산부인과병원을 러시아 공군이 폭격했다. 병원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6세 어린이를 포함해 4명이 사망했고 17명이 다쳤다. 러시아군의 의료시설 공격은 처음이 아니었다. 같은 날 수도 키이우 서쪽 지토미르에서도 병원 2곳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러시아는 우크라 침공 2주 만에 의료시설을 18차례나 공격했다.

앙리 뒤낭(1828~1910)은 1859년 제2차 독립전쟁 중이던 이탈리아의 솔페리노를 지나다 전쟁터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군인들을 목격했다. 마을 부녀자들과 구호활동을 펴고 제네바로 돌아간 그는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전쟁터에서도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함을 역설했다.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부상자, 환자, 포로, 민간인, 의무요원과 종교요원 등은 차별 없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그의 호소는 국제인도법의 철학적 바탕이 됐다.

무력분쟁 중이라도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과 학살, 생존에 필수적인 기반시설 공격은 명백한 국제인도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런 전쟁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 2015년 10월에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쿤드즈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이 미군의 폭격에 희생됐다. 어린이 3명을 포함한 환자 24명과 의료진 14명, 간병인 4명 등 42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 정부는 “병원에 탈레반이 숨어들어 공격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적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2015~2016년 시리아와 예멘에서도 병원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민간인 500명 이상이 희생된 가자지구 알아흘리아랍병원 폭발 참사는 누구의 소행이든 반인도적 전쟁범죄임이 분명하다. 희생자 가운데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어린이, 여성, 피란민 등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전쟁 열흘도 안 돼 양측 사망자는 벌써 4000명을 넘었다. 가자지구 사망자의 60%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한다. “전쟁에도 법이 있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호소가 공허하게 들린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