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 진출한 건설사들의 손실이 누적되면서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섰다. 정부가 관련 법 개정안을 내놓은 가운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해 말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9월 국내 건설사가 해외 현지 법인에 낸 대여금에 대해 대손충당금 손금산입 한도를 늘려주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만큼 세무상 세전 이익이 줄어들어 법인세 부담이 경감되는 효과가 있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7월 ‘2023년 세법개정안 브리핑’에서 “중동의 기업 문화로 인해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이 파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며 “일시에 비용으로 손금산입하기엔 재정적 부담이 있어 엄격한 기준하에 손금산입 한도를 상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은 채권 잔액을 기준으로 최대 1% 정도만 대손충당금에 산입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대손충당금 손금산입 비율은 내년부터 매년 10%포인트씩 상향돼 2034년 100%에 이르게 된다. ‘2022년 이전에 지급한 대여금 가운데 회수가 어려운 경우에만 특례를 적용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여금을 돌려받을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을 땐 대손금으로 볼 수 없어 ‘해외 법인 대여금을 모두 손금산입하게 해달라’는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는 정부안보다 한발 더 나아간 법안들이 발의됐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4일 ‘10년 이상 자본잠식 상태인 해외 현지 법인의 대손금 인정 한도를 100%로 늘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특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진 의원은 일몰 시한을 2026년으로 정하고, 외부감사인의 재무제표 감사를 의무화해 해당 규정이 남용될 여지를 줄였다. 진 의원실 관계자는 “해외 진출에는 수많은 중소기업도 함께하는 만큼 상생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윤영석 의원과 조해진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 개정안을 내놨다.

관련 법안들은 정부 법안과 함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병합 심의되는 만큼 이 과정에서 대손충당금 인정 한도가 정부안보다 상향될 가능성이 있다. 국세청 관계자도 “지금까지는 기존 세법을 기준으로 법인세를 부과해왔다”며 “정부가 법 개정안을 낸 만큼 제도 변화에 맞춘 과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