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A는 어떻게 DNA를 누르고 ‘꿈의 분자’가 되었나 [책마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꿈의 분자 RNA
김우재 지음/김영사
536쪽|2만7800원
김우재 지음/김영사
536쪽|2만7800원
20세기는 ‘DNA의 시대’였다. 1866년 그레고어 멘델이 완두콩 실험 결과를 발표한 이래 유전자의 실체를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경쟁이 벌어졌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나선구조 규명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상은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DNA 염기 서열과 각 부분의 기능을 밝히면 질병 진단, 신약 개발, 개인 맞춤형 치료 등에서 엄청난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3년 걸려 2003년 완료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로 32억쌍의 인간 DNA 염기 서열이 다 밝혀진 뒤에도 기대했던 도약은 없었다.
답은 RNA에 있었다. 21세기는 ‘RNA의 시대’다. 노벨상만 봐도 그렇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mRNA 백신 개발의 토대를 닦은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2020년 노벨화학상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연구자들이 받았다. <꿈의 분자 RNA>는 RNA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는 김우재 교수다. 포항공대에서 바이러스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를 거쳐 2021년부터 중국 하얼빈공업대 생명과학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중을 위한 글을 오랫동안 써온 그는 이번 책에서도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RNA도 DNA처럼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다른 점도 있다. DNA는 두 가닥인데, RNA는 한 가닥이다. 길이도 짧다. DNA는 A, G, C, T라는 네 글자로 유전 정보를 쓰는 반면 RNA는 A, G, C는 같지만 T 대신 U를 쓴다. 비유하자면 DNA는 모든 유전 정보가 보관돼 있는 도서관이다. RNA는 그 일부를 복사해 실제 현장에서 쓰는 도면이다. 유전 정보는 후손을 낳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생명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몸속에서 합성하는 데 더 많이 쓰인다. 뼈와 근육, 피부, 혈액뿐 아니라 각종 효소, 호르몬 등이 모두 단백질이다. 이런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 물질이 바로 RNA다.
‘메신저 RNA’라 불리는 mRNA가 대표적이다. mRNA 백신은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사람에게 주입하면 몸 안에서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이후 실제로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쉽게 물리칠 수 있게 돕는다.
mRNA 백신 개발에도 난관은 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주입한 mRNA를 우리 몸이 이물질로 인식하고 공격했다. 염증 반응을 일으켰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커털린 커리코와 드루 와이스먼 교수는 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RNA를 만들어 내 2005년 발표했다.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빛을 보게 됐다.
RNA 연구는 아직 한창이다. 저자는 ‘미르(miR)’라고도 불리는 ‘마이크로RNA’가 또 하나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르는 아주 짧다. 22개 내외의 염기 서열로 구성돼 있다. 종류와 기능이 다양한데, mRNA의 꼬리 부분과 결합하면 그 mRNA의 발현이 억제된다. 이를 통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 일종의 ‘스위치’다.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 분야 권위자다.
저자는 “특정 조직에서 발현되는 미르 유전자의 특성을 이용하면 특정 단계에 있는 암 환자의 종양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암 진단과 치료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책은 RNA의 역사를 ‘영웅 없는 혁명’이라고 요약한다. mRNA 백신 개발 공로로 올해 두 명의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RNA 연구라는 기초과학 분야에 헌신한 수백 명의 과학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육성하자며 시끄럽게 떠들기보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에 따뜻한 시선을 보낼 때 우리의 기초과학이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모두가 DNA에 집중할 때 RNA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과학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연구의 다양성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나선구조 규명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상은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DNA 염기 서열과 각 부분의 기능을 밝히면 질병 진단, 신약 개발, 개인 맞춤형 치료 등에서 엄청난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3년 걸려 2003년 완료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로 32억쌍의 인간 DNA 염기 서열이 다 밝혀진 뒤에도 기대했던 도약은 없었다.
답은 RNA에 있었다. 21세기는 ‘RNA의 시대’다. 노벨상만 봐도 그렇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mRNA 백신 개발의 토대를 닦은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2020년 노벨화학상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연구자들이 받았다. <꿈의 분자 RNA>는 RNA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는 김우재 교수다. 포항공대에서 바이러스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를 거쳐 2021년부터 중국 하얼빈공업대 생명과학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중을 위한 글을 오랫동안 써온 그는 이번 책에서도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RNA도 DNA처럼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다른 점도 있다. DNA는 두 가닥인데, RNA는 한 가닥이다. 길이도 짧다. DNA는 A, G, C, T라는 네 글자로 유전 정보를 쓰는 반면 RNA는 A, G, C는 같지만 T 대신 U를 쓴다. 비유하자면 DNA는 모든 유전 정보가 보관돼 있는 도서관이다. RNA는 그 일부를 복사해 실제 현장에서 쓰는 도면이다. 유전 정보는 후손을 낳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생명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몸속에서 합성하는 데 더 많이 쓰인다. 뼈와 근육, 피부, 혈액뿐 아니라 각종 효소, 호르몬 등이 모두 단백질이다. 이런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 물질이 바로 RNA다.
‘메신저 RNA’라 불리는 mRNA가 대표적이다. mRNA 백신은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사람에게 주입하면 몸 안에서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이후 실제로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쉽게 물리칠 수 있게 돕는다.
mRNA 백신 개발에도 난관은 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주입한 mRNA를 우리 몸이 이물질로 인식하고 공격했다. 염증 반응을 일으켰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커털린 커리코와 드루 와이스먼 교수는 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RNA를 만들어 내 2005년 발표했다.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빛을 보게 됐다.
RNA 연구는 아직 한창이다. 저자는 ‘미르(miR)’라고도 불리는 ‘마이크로RNA’가 또 하나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르는 아주 짧다. 22개 내외의 염기 서열로 구성돼 있다. 종류와 기능이 다양한데, mRNA의 꼬리 부분과 결합하면 그 mRNA의 발현이 억제된다. 이를 통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 일종의 ‘스위치’다.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 분야 권위자다.
저자는 “특정 조직에서 발현되는 미르 유전자의 특성을 이용하면 특정 단계에 있는 암 환자의 종양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암 진단과 치료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책은 RNA의 역사를 ‘영웅 없는 혁명’이라고 요약한다. mRNA 백신 개발 공로로 올해 두 명의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RNA 연구라는 기초과학 분야에 헌신한 수백 명의 과학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육성하자며 시끄럽게 떠들기보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에 따뜻한 시선을 보낼 때 우리의 기초과학이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모두가 DNA에 집중할 때 RNA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과학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연구의 다양성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