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에게 당신과 책을 내고 싶다고 말을 건넬 때 나는 그것이 그의 생애 첫 책이거나 그가 처음 쓰는 장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첫’이란 무엇인가. 첫이란 단어에는 처음 들은 아기 울음이나 처음 목격한 엄마 눈물 같은 떨림, 처음 잡은 손의 뭉근함이나 처음 입맞춘 입술의 따스한 온기, 처음 본 낯선 이의 비명이나 처음 귀 기울인 자신의 울부짖음 같은 육성이 있다. 그러니까 책 앞에 붙는 첫이란 단어는 맥박을 뛰게 만든다.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진은영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는 이 시인들의 첫 시집으로 어떤 각오나 인간이 들어야만 하는 고백이 있다. 나는 어떤 쓸쓸함이 엄습할 때 이 시집들을 펼쳐 읽는데, 첫 시집에는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허무와 분노에서 발로한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발행 순으로 꽂혀 있는 최승자의 시집 여덟 권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중 그의 첫 시집 <이 時代의 사랑>을 꺼내어 다시 보았다. 최승자의 시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은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란 구절이 실린 <즐거운 日記>이지만,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시집은 <이 時代의 사랑>이다. 한때 나는 이 시집을 데리고 살았고 여전히 모시고 살고 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란 구절과 동시에 뒤표지에 쓰인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존재한다. 그는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 그리하여 시는 어떤 가난 혹은 빈곤의 상태로부터 출발한다. 없음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없음의 현실을 부정하는 힘 또는 없음에 대한 있음을 꿈꾸는 힘, 그것이 시이다. 그 부정이 아무리 난폭하고 파괴적인 형태를 띤다 할지라도 그것은 동시에 꿈꾸는 건강한 힘이다. 그리하여 가난과, 그 가난이 부정된 상태인 꿈 사이에서 시인은, 상처에 대한 응시의 결과인, 가장 지독한 리얼리즘의 산물인 상상력으로써 시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밥벌이를 할 수도 없고 이웃을 도울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배고파 울 때 같이 운다든가, 다른 사람들이 울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울어 버릴 수 있다는 것뿐이다.”
사진출처 moon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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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초판이 발행된 때는 1981년, 최루탄이 도시를 뒤덮은 흐린 시대였지만 그때 시인은 혼자 울지 않고 “같이” 울고, 모두가 울지 않을 때 “과감히”울어버렸다. 같이 과감히 울어버린다는 말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울음이란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기 얼마나 어려운가. 구슬프게 소리내어 울지 않지만 결국 폭발하듯 울고 있는 그의 시에서 나는 시대와 육체를 넘는 소중한 시대정신을 느낀다.

최승자의 첫 시집은 나에게 같이 과감히 울어버리는 언어를 알려주었다. 울음과 울부짖음이 섞인 시대 속에서 억압에 맞서 저항하고 외로워하는 비극이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쓰는 시가 무엇인지, 고독에 꺾이지 않고 고독 너머를 본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20대 초반에 나는 시 몇 줄을 쓰면서 그의 시를 부러워하다가 끝끝내 끌어안았다.

처음 시를 써본다는 C에게 최승자의 첫 시집을 권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를 써보겠다고 다짐했을 때 '성경'처럼 곁에 두고 읽은 책 중 한 권이니, 이 시집에 더할 말이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입원 중이었을 때 그는, 자신은 홀로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라고 말했다. 심신쇠약과 정신분열로 불면을 시간을 보낸 건 시대가 저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는 시인이란 얼마나 고마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