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의대 정원 확대는 의과학 기술 도약의 기회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의대 입학 정원을 지금보다 늘린다는 것이다. 사실 의사 수 제한은 가장 대표적인 진입규제다. 직업면허(occupational licensing)의 고전적 근거는 정보의 비대칭성 또는 외부성에 있다. 면허에 대한 신뢰 제고와 저질 서비스 방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똑똑한 소비자의 탁월한 선택과 의료 서비스 품질을 보증하는 과학기술의 발달 그리고 각종 서비스 플랫폼이 창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제 너무 옛날이야기다. 또한 실증적인 학술적 관찰 결과 직업면허가 아무래도 지대 추구 행위(rent seeking behavior)라는 것이 주된 발견이다. 의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각종 전문직 직업이 모두 그런 측면이 있다.

정원 확대의 효과가 너무 늦을까 걱정이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의사가 되는 것은 10여 년 뒤다. 의사에 대한 수요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의료법상 의사가 수행해야 할 기능이 채혈, 봉합, 튜브 관리,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등 너무나 많다. 또한 119 구급차, 지방보건소와 각종 산업현장 등 다양한 임상현장도 급증하고 있다. 반면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의사실은 점점 비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회적 수요는 의과학 기술 분야(medical science and technology)에 있다.

임상현장의 각종 공백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가 어정쩡하게라도 버텨냈다. 하지만 의과학 기술 이슈는 국가의 모든 차원에서 너무나도 시급하고 엄중하다.

현재 우리나라 의학 수준은 임상의 경우 자타공인 세계 최고다. 지난 수십 년간 시행착오와 경륜이 축적되고 조합된 결과다. 이 과정에는 국민 모두가 참여했다. 반면에 의과학 기술 분야는 연구 여건과 봉급 수준이 턱없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보도에 따르면 논문 및 인용지수 등을 고려했을 때 국내 1위 의과학자의 실적은 세계 3315위라고 한다.

경험과 직관이 넘치는 명의들의 제자들이 이제는 과학과 공학으로 무장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기와 의료시스템, 약물, 소프트웨어 등을 발명·개발·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강국이 될 수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하고 대단한 찬스인 것이다.

멋진 직업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대 정원은 확대되는 것이 맞다. 청년들이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의과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은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의료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생물학적 다양성, 심리적 개별성 및 다양다기한 환경 때문에 의료는 쉽게 표준화하기 어렵다. 많은 전문직이 AI의 파도에 휩쓸려 가겠지만 의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멋진 전문직을 가능한 한 많이 창출해서 청년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많은 청년이 의사가 되면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또 그 나름대로 멋진 직업이 창출되는 것이다. 비슷한 근거로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관세사, 노무사, 평가사, 약사, 기술사 등 전문직도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문직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공개하고, 소비자의 선호와 선택 결과가 자유로이 흘러 다닐 수 있도록 사회에 맡겨 둬야 한다.

그래도 남게 되는 유일한 직업면허는 엉뚱하게도 공공부문이다. 정부 관료와 산하 공공부문은 20~30대에 한두 번의 시험 합격 후 정년까지 직무를 독점하며 선후배와 동기들이 서로의 이익을 비호해주고 있다. 외부 인재가 편입하기도 어렵고 바깥 세계의 조언이나 권고, 감시도 잘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들이 결합해 ‘순살아파트’, 재정 낭비, 부정 채용 등의 사고로 터지곤 하는 것이다. 공공부문 진입 기회를 파격적으로 다양하게 해야 하며 외부 전문가의 진입도 훨씬 자유롭게 보장해야 한다.

또한 정보 공개와 시민사회의 감시 및 평가가 실질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조성하고 겸손하게 그 결과를 받들어야 한다. 자기들은 진입장벽 뒤에 숨어 꿀을 빨면서 민간인 중에 여론이 조금 나빠지는 집단만을 골라서 저격하는 형국이라면 어느 누가 순순히 따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