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초롱이' 사라질까
우리나라에 자동차 시대가 열린 것은 1970년 즈음이다. 신진자동차 현대 아세아 등 자동차 회사가 잇따라 설립됐고 국내 차량 대수는 10만 대를 넘어섰다. 중고차 판매도 이즈음부터 붐을 이뤘다. 서울 무교동 일대에 불법 브로커들이 성업했고 양화대교 북단에는 국내 최초의 중고차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중고차는 도시 서민들에게 온 가족의 ‘생명줄’이었다. 아버지는 수년간 공사판을 전전하며 모은 40만원으로 현대 코티나 중고 택시를 구매해 밤낮으로 몰았다. 삼촌은 암시장에 나온 1950년식 미군용 트럭을 싸게 얻어 막 뚫린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화물을 실어 날랐다. 중고차 보급이 늘면서 전국 일일권 시대가 열리고 다양한 서비스업도 생겨났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은 태생적으로 정보 비대칭 문제를 안고 있었다. 시민들이 무허가 판매업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사고 차량이나 침수 차량을 떠안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1970년대 초에는 불량 중고차 사고가 하도 잦아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중고차 매매를 중지하거나 공무원 경력자에게만 판매 자격을 주는 황당한 시절도 있었다. 1980년대 중고차 매매시장이 제법 커지자 그 주변은 조직폭력배들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기업형 조폭으로 악명 높았던 장안파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판매망이 구축되고 정부의 관리 감독이 강화되면서 중고차 시장에 대한 신뢰가 커졌지만 지금도 잊을 만하면 허위 매물, 강매 등의 범죄 사례가 나온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3’에서 침수차를 강매하는 조폭 ‘초롱이’는 코믹한 연기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매매 현장에서는 사라져야 할 캐릭터다.

현대자동차가 오는 24일부터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 완성차 브랜드 중 국내 첫 사례다. 국내 완성차 회사들은 1993년부터 중고차 시장 진출을 추진했지만, 그때마다 기존 판매 업체들의 반발에 접어야 했다. 해외에선 이미 많은 해외 완성차 브랜드가 중고차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앞으로 대기업과 전문성을 갖춘 중소업체 간 선의의 경쟁으로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고 시장 신뢰도가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