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자연에 설레고 따스함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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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일본 호시노리조트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일본 호시노리조트
일본의 관광산업은 영리하다. 일본인들은 ‘타인에 대한 친절함’을 일본 관광의 상징으로 외국인에게 각인시켰다. 이른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다.
본래 오모테나시는 불교 순례자를 위한 보시(자비심으로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에서 유래했다.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라는 승려는 시코쿠를 무대로 몸과 마음의 합일을 설파했다. 그가 걸었던 시코쿠 88개 사찰을 종주하는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묵을 곳을 제공하던 종교적 관습이 오모테나시다.
오모테나시에 현대적 해석을 입힌 계기는 올림픽이었다. 2021 도쿄올림픽 유치전이 한창이던 2013년, 다키가와 크리스텔(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며느리)이라는 프랑스 혼혈 아나운서가 오모테나시를 화두로 꺼냈다. 강동국 일본 나고야대 법대 교수는 “세계라는 타자를 대상으로 일본의 친절함을 보여주자는 의미로 일본 올림픽협회와 관광업계가 오모테나시라는 단어를 널리 퍼뜨렸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은 뿌리 깊은 ‘병영(兵營)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기는 하다. 깨끗한 거리, 공중목욕탕에서 타인에게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는 행위, 손님이 떠날 때까지 끝까지 머리를 숙이는 친절함 등의 근원은 자발적이라기보다 무(武)에 대한 오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란 얘기다.
유래가 어찌 됐든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은 ‘요우코소 재팬’(‘일본에 어서 오세요’라는 뜻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 캠페인)의 최종 무기다. 올해로 창립 109년을 맞은 호시노리조트는 오모테나시를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시노 가문의 4대 당주인 호시노 요시하루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일본 주요 온천 지역의 쓰러져 가던 료칸을 서양 스타일이 가미된 리조트로 전면 개조했다. 호시노리조트가 운영하는 호텔, 리조트 등 67개 시설의 자산 가치만 1911억엔(약 1조7293억원)에 달한다.
어디에 있든 호시노의 시설에 발을 디디면, 손님은 ‘오직 나만을 위한 극강의 접객(接客)’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호시노에 가보라. 그러면 메리어트와 힐튼이 지배하는 글로벌 호텔&리조트의 세상에서 일본의 료칸이 살아남은 비결을 알게 될 것이다.도쿄 빌딩 숲에서 즐기는 전통 일본
일본 도쿄의 금융 중심가인 오테마치 1번지.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룬 이곳에 호시노리조트는 작은 연못이 들어선 호텔을 지었다. ‘호시노야 도쿄’다. 칼처럼 곧추선 빌딩들에 가려져 초행자는 입구조차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일단 호시노야의 문턱을 넘는 순간 깨닫게 된다. 올해로 창립 109년이 된 호시노리조트를 이끄는 4대 당주 호시노 요시하루가 무엇을 구현하려 했는지를. 현재와의 단절, 완전한 휴식을 위한 바깥세상과의 절연이다.
호시노리조트의 최상급 브랜드 ‘호시노야’는 일본에서도 독보적 위상을 갖추고 있다. 전통 료칸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효과적으로 가미해 호시노만의 스타일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시노야는 가루이자와, 교토, 다케토미섬, 후지, 도쿄, 오키나와 등 일본에 여섯 곳밖에 없다. 어디를 가든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오모테나시’의 완벽한 구현이다.
2016년 도쿄 도심 한복판에 호시노야를 만들면서 료칸의 주인은 고심에 빠졌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절연을 표현할 것인가. 교토에선 배를 이용했다. 손님은 강 위를 오가는 배를 타야만 호시노야에 들어설 수 있다. 가루이자와 호시노야는 기타(北)알프스의 깊은 산속에 파묻혀 있다. 후지산 아래 호시노야는 그 앉음새 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료칸 주인은 신발을 절연의 모티브로 택했다. 호시노야 도쿄에 출입하려면 누구든 신발을 벗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 유명한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신발은 세파에 찌들었던 ‘지금의 나’를 상징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내부에도 다다미가 깔려 있다.
소리 없이 뒤따르던 직원이 아름다운 하얀색 벌집 같은 거대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주고 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사각형 빌딩 안에 이토록 완벽하게 료칸을 구현해내다니.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내부는 오로지 나무와 돌로만 장식했다. 호시노야 도쿄가 자랑하는 프랑스식 일본 요리 레스토랑 입구 한쪽 벽면은 에도성의 성벽을 그대로 옮겨놨다. 중앙엔 거대 석물을 절묘하게 잘라내 배치했다. 일본식 마른 정원을 호시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토 내해(內海)의 돌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디테일과 정교함 덕분에 호시노야 도쿄에 한번 발을 디딘 이는 오로지 내부에만 집중하게 된다. 사색은 조용히 이어진다. 호시노리조트 특유의 공간미를 극대화하는 요소는 극강의 오모테나시다. 호시노리조트의 어떤 곳을 방문하든 차에서 내리면 손님만을 위해 배정된 직원이 가방을 받아준다. 호시노는 2001년 멀티태스킹 제도를 도입해 글로벌 호텔업계의 오랜 관행을 깼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직원이 객실 청소도 하고, 프런트 데스크에서 결제도 도와준다. 고객과의 접점이 많다 보니 직원들은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세세하게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직원 처우도 업계 최상급이다.
일본의 오모테나시를 외국인에게 제공한다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건강 진단서’로 불리는 사후 고객 설문조사를 통해 최고점이 나오지 않은 서비스 항목에 대해선 경영진 개입 없이 직원들 스스로 개선점을 찾는다.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 인터뷰
‘여행은 마법.’ 호시노리조트의 경영 철학이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와 문화로 향하는 통로라는 의미다. 호시노 요시하루 호시노리조트 대표는 “내년 창립 110주년을 앞두고 또 다른 100년에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호시노의 브랜드를 진출시키는 것도 목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지방 소멸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방 도시는 호시노리조트가 활약할 기회이자 공간입니다. 코로나 이전까진 일본도 30개 정도의 지방 현(縣)이 여행산업의 혜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외국인만 고려해선 근거리 여행을 활성화하기 어렵죠.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휴가를 분산하는 방안이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적극적입니다.
“기업의 이익 추구가 사회 문제 해결에도 연결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호시노 ESG의 핵심입니다.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있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경우 사용 에너지의 70%를 지열난방 등을 통해 자급합니다. 시설에서 배출된 음식물 쓰레기는 인근 농장에서 퇴비로 사용하고, 농부가 기른 야채를 우리가 다시 구입하는 식입니다. 신선한 식자재를 확보할 수 있죠.”
▷직원 대부분이 젊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계속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했습니다. 팬데믹(대유행)이 끝나면 이전보다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죠. 지방 대학 졸업생을 많이 뽑았고, 일본에 유학하러 온 학생들을 지방 시설 곳곳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선 언어와 관광 모두를 배울 기회입니다.”
▷오모테나시를 어떻게 유지합니까.
“직원들이 경영자 관점에서 일하도록 권합니다. 각 지점의 고객 만족도 데이터는 물론 시장 점유율, 매출, 비용 등의 정보에 직원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직원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제주도보다 일본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은 시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나가노현의 가루이자와는 한국인에게 낯선 지명이다. 일본에선 다르다.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도쿄의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가루이자와 간다”는 말을 ‘좋은 곳으로 피서 간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가루이자와는 해발 약 1000m의 아사마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887년 영국인 선교사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해 여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1893년 도쿄와 철도로 연결된 것을 계기로 일본을 대표하는 정·재계 인사와 작가, 예술인들이 가루이자와로 몰려들었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도 가루이자와의 한 테니스 클럽에서 인연을 맺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부부는 가루이자와의 만페이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1914년 호시노리조트가 첫 번째 온천 료칸(현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을 연 곳도 가루이자와다.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좋아하는 작가로 몇 번 언급하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센주 히로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더 폴(The fall)’ 연작으로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명예상을 받았다. 폭포, 호반, 석벽 등 아사마산의 자연을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담은 100여 점의 작품이 센주히로시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미술관은 숲에 파묻혀 있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통창 밖 푸른 나무를 배경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센주 히로시는 일본 전통 회화 기법을 통해 모던함을 극대화한 보기 드문 작가다. 천연 재료에서 추출한 색소를 활용해 아사마산의 절벽을 표현한 작품은 시각만으로도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도쿄 하네다국제공항에 전시된 ‘꿈의 신사’도 그의 작품이다.
일본 부호들의 휴양지답게 가루이자와엔 가볼 만한 미술관이 즐비하다. 가루이자와뉴아트뮤지엄에선 일본 현대 미술의 참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건축가 니시모리 리쿠오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가라마쓰모리(낙엽송 숲)의 이미지를 재해석해 전면이 유리로 만들어졌다. 그 주변을 하얀 기둥이 나무숲처럼 에워싸고 있다. 약 6000권의 그림책을 소장한 그림책의 숲 미술관은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하다.
80여 채의 호시노야 객실은 호수 위의 오리처럼 조용히 유영하듯 자리 잡고 있다. 109년 전 호시노 료칸의 창업주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이곳에서 온천을 개발했다. 현 대표인 4대 당주 호시노 요시하루가 일본 유명 조경·건축가와 손잡고 2005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을 단행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에 머물면 밤의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곳엔 TV도 없고, 밤을 밝히는 조명도 최소화했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피키오라는 이름의 야생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에코 투어리즘은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호시노야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엔 ‘돌의 교회’라고 불리는 우치무라 간조 기념당도 있다. 1988년 미국인 건축가 켄드릭 켈로그가 아시아에 유일하게 설계한 건축물이다.
나가노현엔 가루이자와 외에도 들러볼 만한 숨겨진 ‘보석’이 많다. 기타(北)알프스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나가노현 2대 도시인 마쓰모토는 독특한 점박무늬의 사용으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출생지다. 마쓰모토시미술관은 그의 인상적인 컬렉션을 포함해 여러 일본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우키요예(浮世繪·덧없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의미) 약 10만 점을 전시하는 우키요예 박물관도 마쓰모토에 있다. 일본의 전통 판화를 좋아한다면 방문을 추천한다. 마쓰모토는 일본 와인의 주요 산지이기도 하다. 산산 와이너리 등 메를로를 활용한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지연 료칸을 바꾼 '마법'
호시노리조트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호시노를 안 가본 이들은 있어도, 한 번만 가고 마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는 게 국내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60여 개 호시노 시설 중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일본 중부 나가노현에 있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가 숲속의 선계(仙界)라면, 도쿄 금융가 한복판에 있는 ‘호시노야 도쿄’는 빌딩 숲에 구현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메리어트식의 미국식 글로벌 호텔 체인이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은 공간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이다.
호시노 다양성의 원천은 일본 각 지역의 고유함이다. 1914년 가루이자와에서 작은 료칸으로 시작한 호시노 가문은 홋카이도에서 규슈 남단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국의 온천 지대로 영역을 꾸준히 확장했다.
2005년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손을 잡았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폐업 일보 직전의 료칸과 온천을 사들이면서 일본 관광·레저산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료칸 주인들은 쉽게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구세주로 등장한 곳이 호시노 가문이다. 4대 당주이자 미국 명문 코넬대에서 관광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91년 호시노리조트 대표로 취임한 호시노 요시하루는 지방의 료칸 주인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전통과 자연을 유지하면서 재생 작업을 하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호시노리조트는 코로나 팬데믹 3년간 일본 내 마이크로투어리즘(근거리 여행)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나가노의 ‘카이 마쓰모토’가 대표적이다.
지역 와인과 결합해 이곳을 일본 국내 여행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카이 마쓰모토에선 매일 저녁 지역 아티스트를 초빙해 클래식, 전통극 등의 다양한 공연을 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본래 오모테나시는 불교 순례자를 위한 보시(자비심으로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에서 유래했다.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라는 승려는 시코쿠를 무대로 몸과 마음의 합일을 설파했다. 그가 걸었던 시코쿠 88개 사찰을 종주하는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묵을 곳을 제공하던 종교적 관습이 오모테나시다.
오모테나시에 현대적 해석을 입힌 계기는 올림픽이었다. 2021 도쿄올림픽 유치전이 한창이던 2013년, 다키가와 크리스텔(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며느리)이라는 프랑스 혼혈 아나운서가 오모테나시를 화두로 꺼냈다. 강동국 일본 나고야대 법대 교수는 “세계라는 타자를 대상으로 일본의 친절함을 보여주자는 의미로 일본 올림픽협회와 관광업계가 오모테나시라는 단어를 널리 퍼뜨렸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은 뿌리 깊은 ‘병영(兵營)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기는 하다. 깨끗한 거리, 공중목욕탕에서 타인에게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는 행위, 손님이 떠날 때까지 끝까지 머리를 숙이는 친절함 등의 근원은 자발적이라기보다 무(武)에 대한 오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란 얘기다.
유래가 어찌 됐든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은 ‘요우코소 재팬’(‘일본에 어서 오세요’라는 뜻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 캠페인)의 최종 무기다. 올해로 창립 109년을 맞은 호시노리조트는 오모테나시를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시노 가문의 4대 당주인 호시노 요시하루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일본 주요 온천 지역의 쓰러져 가던 료칸을 서양 스타일이 가미된 리조트로 전면 개조했다. 호시노리조트가 운영하는 호텔, 리조트 등 67개 시설의 자산 가치만 1911억엔(약 1조7293억원)에 달한다.
어디에 있든 호시노의 시설에 발을 디디면, 손님은 ‘오직 나만을 위한 극강의 접객(接客)’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호시노에 가보라. 그러면 메리어트와 힐튼이 지배하는 글로벌 호텔&리조트의 세상에서 일본의 료칸이 살아남은 비결을 알게 될 것이다.
도쿄 빌딩 숲에서 즐기는 전통 일본
'센과 치히로' 처럼…문지방 넘는 순간, 빌딩이 료칸으로 변했다
일본 도쿄의 금융 중심가인 오테마치 1번지.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룬 이곳에 호시노리조트는 작은 연못이 들어선 호텔을 지었다. ‘호시노야 도쿄’다. 칼처럼 곧추선 빌딩들에 가려져 초행자는 입구조차 찾기 힘들다.하지만 일단 호시노야의 문턱을 넘는 순간 깨닫게 된다. 올해로 창립 109년이 된 호시노리조트를 이끄는 4대 당주 호시노 요시하루가 무엇을 구현하려 했는지를. 현재와의 단절, 완전한 휴식을 위한 바깥세상과의 절연이다.
호시노리조트의 최상급 브랜드 ‘호시노야’는 일본에서도 독보적 위상을 갖추고 있다. 전통 료칸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효과적으로 가미해 호시노만의 스타일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시노야는 가루이자와, 교토, 다케토미섬, 후지, 도쿄, 오키나와 등 일본에 여섯 곳밖에 없다. 어디를 가든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오모테나시’의 완벽한 구현이다.
2016년 도쿄 도심 한복판에 호시노야를 만들면서 료칸의 주인은 고심에 빠졌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절연을 표현할 것인가. 교토에선 배를 이용했다. 손님은 강 위를 오가는 배를 타야만 호시노야에 들어설 수 있다. 가루이자와 호시노야는 기타(北)알프스의 깊은 산속에 파묻혀 있다. 후지산 아래 호시노야는 그 앉음새 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료칸 주인은 신발을 절연의 모티브로 택했다. 호시노야 도쿄에 출입하려면 누구든 신발을 벗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 유명한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신발은 세파에 찌들었던 ‘지금의 나’를 상징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내부에도 다다미가 깔려 있다.
소리 없이 뒤따르던 직원이 아름다운 하얀색 벌집 같은 거대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주고 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사각형 빌딩 안에 이토록 완벽하게 료칸을 구현해내다니.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내부는 오로지 나무와 돌로만 장식했다. 호시노야 도쿄가 자랑하는 프랑스식 일본 요리 레스토랑 입구 한쪽 벽면은 에도성의 성벽을 그대로 옮겨놨다. 중앙엔 거대 석물을 절묘하게 잘라내 배치했다. 일본식 마른 정원을 호시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토 내해(內海)의 돌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디테일과 정교함 덕분에 호시노야 도쿄에 한번 발을 디딘 이는 오로지 내부에만 집중하게 된다. 사색은 조용히 이어진다. 호시노리조트 특유의 공간미를 극대화하는 요소는 극강의 오모테나시다. 호시노리조트의 어떤 곳을 방문하든 차에서 내리면 손님만을 위해 배정된 직원이 가방을 받아준다. 호시노는 2001년 멀티태스킹 제도를 도입해 글로벌 호텔업계의 오랜 관행을 깼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직원이 객실 청소도 하고, 프런트 데스크에서 결제도 도와준다. 고객과의 접점이 많다 보니 직원들은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세세하게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직원 처우도 업계 최상급이다.
일본의 오모테나시를 외국인에게 제공한다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건강 진단서’로 불리는 사후 고객 설문조사를 통해 최고점이 나오지 않은 서비스 항목에 대해선 경영진 개입 없이 직원들 스스로 개선점을 찾는다.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 인터뷰
"여행은 마법…지방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시스템 만들어야"
‘여행은 마법.’ 호시노리조트의 경영 철학이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와 문화로 향하는 통로라는 의미다. 호시노 요시하루 호시노리조트 대표는 “내년 창립 110주년을 앞두고 또 다른 100년에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호시노의 브랜드를 진출시키는 것도 목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한국에서도 지방 소멸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방 도시는 호시노리조트가 활약할 기회이자 공간입니다. 코로나 이전까진 일본도 30개 정도의 지방 현(縣)이 여행산업의 혜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외국인만 고려해선 근거리 여행을 활성화하기 어렵죠.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휴가를 분산하는 방안이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적극적입니다.
“기업의 이익 추구가 사회 문제 해결에도 연결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호시노 ESG의 핵심입니다.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있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경우 사용 에너지의 70%를 지열난방 등을 통해 자급합니다. 시설에서 배출된 음식물 쓰레기는 인근 농장에서 퇴비로 사용하고, 농부가 기른 야채를 우리가 다시 구입하는 식입니다. 신선한 식자재를 확보할 수 있죠.”
▷직원 대부분이 젊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계속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했습니다. 팬데믹(대유행)이 끝나면 이전보다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죠. 지방 대학 졸업생을 많이 뽑았고, 일본에 유학하러 온 학생들을 지방 시설 곳곳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선 언어와 관광 모두를 배울 기회입니다.”
▷오모테나시를 어떻게 유지합니까.
“직원들이 경영자 관점에서 일하도록 권합니다. 각 지점의 고객 만족도 데이터는 물론 시장 점유율, 매출, 비용 등의 정보에 직원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직원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가루이자와 미술 투어, 존 레넌도 반했다…갤러리 가득 품은 귀족 휴양지
존 레넌도 반했다…갤러리 가득 품은 귀족 휴양지제주도보다 일본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은 시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나가노현의 가루이자와는 한국인에게 낯선 지명이다. 일본에선 다르다.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도쿄의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가루이자와 간다”는 말을 ‘좋은 곳으로 피서 간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가루이자와는 해발 약 1000m의 아사마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887년 영국인 선교사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해 여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1893년 도쿄와 철도로 연결된 것을 계기로 일본을 대표하는 정·재계 인사와 작가, 예술인들이 가루이자와로 몰려들었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도 가루이자와의 한 테니스 클럽에서 인연을 맺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부부는 가루이자와의 만페이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1914년 호시노리조트가 첫 번째 온천 료칸(현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을 연 곳도 가루이자와다.
존 레넌 부부의 휴양지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1시간 조금 넘게 가면 가루이자와에 닿는다. 요즘은 이상기후로 눈이 늦게 내리기 시작하지만, 12월 중엔 백설(白雪)의 도시로 변한다. 뛰어난 자연경관 덕분에 예술가들이 일찌감치 이곳에 자리 잡았다.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좋아하는 작가로 몇 번 언급하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센주 히로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더 폴(The fall)’ 연작으로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명예상을 받았다. 폭포, 호반, 석벽 등 아사마산의 자연을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담은 100여 점의 작품이 센주히로시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미술관은 숲에 파묻혀 있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통창 밖 푸른 나무를 배경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센주 히로시는 일본 전통 회화 기법을 통해 모던함을 극대화한 보기 드문 작가다. 천연 재료에서 추출한 색소를 활용해 아사마산의 절벽을 표현한 작품은 시각만으로도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도쿄 하네다국제공항에 전시된 ‘꿈의 신사’도 그의 작품이다.
일본 부호들의 휴양지답게 가루이자와엔 가볼 만한 미술관이 즐비하다. 가루이자와뉴아트뮤지엄에선 일본 현대 미술의 참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건축가 니시모리 리쿠오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가라마쓰모리(낙엽송 숲)의 이미지를 재해석해 전면이 유리로 만들어졌다. 그 주변을 하얀 기둥이 나무숲처럼 에워싸고 있다. 약 6000권의 그림책을 소장한 그림책의 숲 미술관은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하다.
나가노로 떠나는 미술관 여행
호시노야도 가루이자와를 대표하는 명소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계곡, 강, 거대한 나무들을 그대로 살린 리조트 건물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리조트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70%가량을 지열 등 자연에서 얻는다.80여 채의 호시노야 객실은 호수 위의 오리처럼 조용히 유영하듯 자리 잡고 있다. 109년 전 호시노 료칸의 창업주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이곳에서 온천을 개발했다. 현 대표인 4대 당주 호시노 요시하루가 일본 유명 조경·건축가와 손잡고 2005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을 단행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에 머물면 밤의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곳엔 TV도 없고, 밤을 밝히는 조명도 최소화했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피키오라는 이름의 야생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에코 투어리즘은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호시노야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엔 ‘돌의 교회’라고 불리는 우치무라 간조 기념당도 있다. 1988년 미국인 건축가 켄드릭 켈로그가 아시아에 유일하게 설계한 건축물이다.
나가노현엔 가루이자와 외에도 들러볼 만한 숨겨진 ‘보석’이 많다. 기타(北)알프스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나가노현 2대 도시인 마쓰모토는 독특한 점박무늬의 사용으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출생지다. 마쓰모토시미술관은 그의 인상적인 컬렉션을 포함해 여러 일본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우키요예(浮世繪·덧없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의미) 약 10만 점을 전시하는 우키요예 박물관도 마쓰모토에 있다. 일본의 전통 판화를 좋아한다면 방문을 추천한다. 마쓰모토는 일본 와인의 주요 산지이기도 하다. 산산 와이너리 등 메를로를 활용한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지연 료칸을 바꾼 '마법'
전통·자연 그대로, 서비스 두 배로…죽어가던 마을 살린 '호시노'
호시노리조트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호시노를 안 가본 이들은 있어도, 한 번만 가고 마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는 게 국내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60여 개 호시노 시설 중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예컨대 일본 중부 나가노현에 있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가 숲속의 선계(仙界)라면, 도쿄 금융가 한복판에 있는 ‘호시노야 도쿄’는 빌딩 숲에 구현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메리어트식의 미국식 글로벌 호텔 체인이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은 공간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이다.
호시노 다양성의 원천은 일본 각 지역의 고유함이다. 1914년 가루이자와에서 작은 료칸으로 시작한 호시노 가문은 홋카이도에서 규슈 남단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국의 온천 지대로 영역을 꾸준히 확장했다.
2005년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손을 잡았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폐업 일보 직전의 료칸과 온천을 사들이면서 일본 관광·레저산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료칸 주인들은 쉽게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구세주로 등장한 곳이 호시노 가문이다. 4대 당주이자 미국 명문 코넬대에서 관광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91년 호시노리조트 대표로 취임한 호시노 요시하루는 지방의 료칸 주인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전통과 자연을 유지하면서 재생 작업을 하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호시노리조트는 코로나 팬데믹 3년간 일본 내 마이크로투어리즘(근거리 여행)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나가노의 ‘카이 마쓰모토’가 대표적이다.
지역 와인과 결합해 이곳을 일본 국내 여행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카이 마쓰모토에선 매일 저녁 지역 아티스트를 초빙해 클래식, 전통극 등의 다양한 공연을 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