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지키기도 벅찬데 파업은 무슨…" 일본은 달랐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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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안하는 나라 일본③
파업수, 1974년 5197건→2022년 33건
버블붕괴 후 대량도산에 '乙'된 노조
코로나 이후 다시 변한 노사 역학관계
'백화점 시대의 종언' 상징하는 61년 만의 파업
'통째로 바뀐 어장'…종합소매그룹 전략 실패
파업수, 1974년 5197건→2022년 33건
버블붕괴 후 대량도산에 '乙'된 노조
코로나 이후 다시 변한 노사 역학관계
'백화점 시대의 종언' 상징하는 61년 만의 파업
'통째로 바뀐 어장'…종합소매그룹 전략 실패
파업 안하는 나라 일본②에서 계속 지난 8월31일 도쿄 북서 지역 도심인 이케부쿠로를 대표하는 백화점 '세이부 이케부쿠로 본점'이 파업을 실시했다. 일본의 백화점이 파업한 건 1962년 한신백화점이 마지막이었다.
단 하루 동안이었지만 61년 만의 백화점 파업이 일본 사회와 경제계에 주는 파장은 매우 깊고 오래 갈 전망이다. 이날 파업은 먼저 일본 사회와 노동시장 역학 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일본인이 파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대립과 갈등을 피하려는 일본 특유의 문화, 조직에 순종적인 일본인 특유의 기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하지만 일본인도 경제적인 동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1974년만 해도 일본에서는 5197건의 파업이 벌어졌다.
툭하면 파업을 벌이던 일본이 파업하지 않는 나라로 변한 건 근로자가 철저히 ‘을(乙)’이 됐기 때문이다. 1990년 버블(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 기업들이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도산하면서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급급하게 됐다. 철밥통의 대명사이던 은행원들마저 잘리던 시기였다. 당연히 노조는 파업 같은 강경수단을 선택하기 어렵게 됐다. 일본 최대 노조인 렌고의 정책 우선 순위도 임금인상보다 회사 존립으로 바뀌었다. 2019년 인터뷰한 렌고의 고위 간부는"임금 인상보다 일하는 방식 개혁 등 복리후생을 늘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파업을 기피하는 노사문화는 일본식 경영의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반면 노조의 약체화는 임금을 3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하게 하면서 일본의 디플레를 만성화시킨 측면도 있다. 2023년 8월 미국 재무성은 노조의 존재가 임금을 10~15% 올린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기업과 근로자의 역학관계는 다시 변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력난이 고질병이 되고, 세계적인 인플레로 더 이상 종업원을 낮은 임금으로 붙잡아 두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와 아르바이트가 시장을 대거 이탈한 서비스업의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근로자의 목소리가 커지게 됐고 그 분기점이 도쿄 도심 백화점에서 벌어진 61년 만의 파업이란 분석이다. 벌써부터 일본 전문가들은 소고·세이부의 파업을 계기로 지난 30년 가까이 노동쟁의를 피해온 일본 노조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회사 매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파업을 하는 마당에 임금인상,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못 하겠냐는 것이다. 61년 만의 파업이 담고 있는 두번째 의미는 일본 유통시장의 판도 변화다. 구체적으로는 백화점 시대의 종말과 온라인, 전문 매장 시대의 득세를 뜻한다. 세븐앤아이는 2006년 2000억엔(약 1조8076억원) 이상을 들여 소고·세이부 백화점을 인수했다.
소고·세이부를 손에 넣음으로써 세븐앤아이는 편의점(세븐일레븐), 슈퍼마켓(이토요카도), 백화점(소고·세이부), 유통 전문점(아카창혼포, 로프트) 등 모든 형태의 유통업을 거느린 종합 소매그룹 전략을 완성하게 됐다. 하지만 인수 이후 백화점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온라인 쇼핑이 급속도로 확산한데다 가구 전문점 니토리, 패스트패션의 유니클로, 작업복과 레저의류 전문점 워크맨 같이 저렴하면서 품질도 좋은 제품을 파는 전문점이 떴기 때문이다. 미쓰이쇼핑파크 같은 교외 지역 중심의 대형 쇼핑몰이 생겨난 것도 백화점 이탈을 가속화했다.
지난 30년간 평균 임금은 제자리걸음인데 부유층은 증가하면서 구매력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사치품과 기호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은 광범위한 지역으로부터 부유층 고객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야마자키 야스히로 유통경제연구소 상무는 "교외형 대형 쇼핑몰의 확대로 백화점의 집객력이 저하되자 유력한 테넌트를 유치하기 어려워지고 이것이 더욱 집객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세븐앤아이의 종합 소매그룹 전략은 편의점, 슈퍼, 백화점, 전문점 등 모든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그물을 짜면 소비시장이라는 어장의 고객을 모조리 사로잡을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 새로운 형태의 전문점, 교외형 대형 쇼핑몰 등의 등장으로 어장이 통째로 바뀌면서 종합 소매그룹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됐다. 파업 안하는 나라 일본④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단 하루 동안이었지만 61년 만의 백화점 파업이 일본 사회와 경제계에 주는 파장은 매우 깊고 오래 갈 전망이다. 이날 파업은 먼저 일본 사회와 노동시장 역학 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일본인이 파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대립과 갈등을 피하려는 일본 특유의 문화, 조직에 순종적인 일본인 특유의 기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하지만 일본인도 경제적인 동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1974년만 해도 일본에서는 5197건의 파업이 벌어졌다.
툭하면 파업을 벌이던 일본이 파업하지 않는 나라로 변한 건 근로자가 철저히 ‘을(乙)’이 됐기 때문이다. 1990년 버블(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 기업들이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도산하면서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급급하게 됐다. 철밥통의 대명사이던 은행원들마저 잘리던 시기였다. 당연히 노조는 파업 같은 강경수단을 선택하기 어렵게 됐다. 일본 최대 노조인 렌고의 정책 우선 순위도 임금인상보다 회사 존립으로 바뀌었다. 2019년 인터뷰한 렌고의 고위 간부는"임금 인상보다 일하는 방식 개혁 등 복리후생을 늘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파업을 기피하는 노사문화는 일본식 경영의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반면 노조의 약체화는 임금을 3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하게 하면서 일본의 디플레를 만성화시킨 측면도 있다. 2023년 8월 미국 재무성은 노조의 존재가 임금을 10~15% 올린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기업과 근로자의 역학관계는 다시 변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력난이 고질병이 되고, 세계적인 인플레로 더 이상 종업원을 낮은 임금으로 붙잡아 두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와 아르바이트가 시장을 대거 이탈한 서비스업의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근로자의 목소리가 커지게 됐고 그 분기점이 도쿄 도심 백화점에서 벌어진 61년 만의 파업이란 분석이다. 벌써부터 일본 전문가들은 소고·세이부의 파업을 계기로 지난 30년 가까이 노동쟁의를 피해온 일본 노조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회사 매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파업을 하는 마당에 임금인상,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못 하겠냐는 것이다. 61년 만의 파업이 담고 있는 두번째 의미는 일본 유통시장의 판도 변화다. 구체적으로는 백화점 시대의 종말과 온라인, 전문 매장 시대의 득세를 뜻한다. 세븐앤아이는 2006년 2000억엔(약 1조8076억원) 이상을 들여 소고·세이부 백화점을 인수했다.
소고·세이부를 손에 넣음으로써 세븐앤아이는 편의점(세븐일레븐), 슈퍼마켓(이토요카도), 백화점(소고·세이부), 유통 전문점(아카창혼포, 로프트) 등 모든 형태의 유통업을 거느린 종합 소매그룹 전략을 완성하게 됐다. 하지만 인수 이후 백화점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온라인 쇼핑이 급속도로 확산한데다 가구 전문점 니토리, 패스트패션의 유니클로, 작업복과 레저의류 전문점 워크맨 같이 저렴하면서 품질도 좋은 제품을 파는 전문점이 떴기 때문이다. 미쓰이쇼핑파크 같은 교외 지역 중심의 대형 쇼핑몰이 생겨난 것도 백화점 이탈을 가속화했다.
지난 30년간 평균 임금은 제자리걸음인데 부유층은 증가하면서 구매력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사치품과 기호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은 광범위한 지역으로부터 부유층 고객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야마자키 야스히로 유통경제연구소 상무는 "교외형 대형 쇼핑몰의 확대로 백화점의 집객력이 저하되자 유력한 테넌트를 유치하기 어려워지고 이것이 더욱 집객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세븐앤아이의 종합 소매그룹 전략은 편의점, 슈퍼, 백화점, 전문점 등 모든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그물을 짜면 소비시장이라는 어장의 고객을 모조리 사로잡을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 새로운 형태의 전문점, 교외형 대형 쇼핑몰 등의 등장으로 어장이 통째로 바뀌면서 종합 소매그룹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됐다. 파업 안하는 나라 일본④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