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보험사 밥그릇 싸움이 발달지연 아이를 죽인다 [기자수첩]
"너희는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다 가라"



기자는 발달지연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아이는 전반적으로 발달이 지연돼 만 5세가 지났는데도 문장을 말할 수 없고, 소근육 발달도 늦어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은 물론 단추를 스스로 잠그는 것조차 서투르다. 언어발달이 늦다보니 대화는 물론이고, 소변이 마렵다는 간단한 의사표현조차 할 수 없어 여전히 기저귀는 필수다.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리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발달지연은 뚜렷한 원인이 없고 치료제도 없다. 발달지연 아동들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언어를 촉진시키는 언어치료, 감각 이상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돕는 감각통합치료, 상호작용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돕는 놀이치료 등 일대일 형태의 치료가 최선이다. 병원에서조차 아이의 특성에 따라 치료 방향을 잡아주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부모는 기다릴 뿐이다.

◆ 최선은 꾸준한 치료…비용은 '눈덩이'



아이들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아이가 언제 일반 정상발달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을 지, 언제쯤 말을 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최대한 정상발달 아이들의 속도에 맞출 수 있도록,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치료를 계속 병행해주는 것이 현재 의료수준으로는 최선이다. 발달지연이 장애로 굳어지지 않도록 선제적 조치를 해주는 것이다.

이 같은 치료는 대체적으로 한 타임 당 치료 40분, 부모 상담 10분까지 총 50분으로 구성된다. 병원에서는 발달지연 정도에 따라 치료당 주 1~2회를 권고한다. 평균적으로 1년 가량 발달지연인 아동들에겐 언어치료 주 1~2회, 놀이치료 주 1~2회, 감각통합치료 주 1~2회 등이 권고된다. 별도로 미술치료나 인지치료가 병행되는 경우도 있다.

단발성 치료는 한계가 있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치료를 꾸준히 장기적으로 해줘야 아이의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자폐스펙트럼과 같은 장애진단을 받은 아이들도 이 같은 치료를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성인이 됐을 때 예후가 좋다고 말한다.

문제는 부모가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치료마저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 치료들은 회당 8만~10만 원, 행동치료의 경우 12만~13만 원에 달한다. 현재 기자가 병원에서 아이의 치료를 위해 지불하고 있는 비용은 월 160만 원, 병원 대기가 길어 시작조차 하지 못 하고 있는 치료항목은 인근 발달센터를 통해 받게 하는데 이 비용은 정부의 발달지연 바우처 지원(월 12만 원)을 제외하고도 월 50만 원, 순수 치료비만 월 210만 원이다.

이 치료들을 2년째 해오고 있으니 현재까지 지불한 치료비만 5,000만 원을 넘어섰다. 엄청난 경제적 부담에도 치료를 중단하지 못 하는 이유는 아이가 미세하게나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손해 커지자 태세 전환한 보험사

이런 막막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보험'이다. 보험사들은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어린이보험 가입에 열을 올린다. 저출산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그 경쟁은 치열해져 값비싼 유모차를 상품으로 내걸면서까지 뱃속 태아의 보험 가입을 부추긴다. 한 번의 보험가입으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각종 위험에서 보장해준다는 달콤한 유혹이다. 그 어떤 부모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정작 발달지연 아동들이 늘면서 보험사는 태세를 전환했다. 발달지연 아동 치료비를 청구하는 가입자들이 늘면서 예상보다 손해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린이보험시장 점유율 1위인 현대해상은 올 상반기 높은 손해율을 기록한 배경 중 하나로 '발달장애 관련 실손보험 청구 증가'를 꼽았다.

일찌감치 어린이보험에 가입한 기자도 최근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지급기준을 강화한다는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그간 치료 세부내역서와 영수증만 있으면 가능했던 보험금 청구 조건을 '치료사명, 치료사의 자격증명서, 자격번호, 치료일지, 환아 치료 스케쥴표, 영수증과 세부내역서'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발달센터를 통한 치료는 아예 미지급 대상이 돼 버렸다.

최근 일부 병원들의 과잉진료로 불필요한 치료를 받는 아동이 늘어난데다 민간 치료사들이 근무하는 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게 보험사의 설명이다. 물론 늘어난 서류 발급 비용에 대한 부담은 가입자의 몫이다.

보험금 청구가 장기화되면 보험사는 의료자문을 실시한다. 아이가 치료를 통해 정상발달이 가능해질 단순 발달지연 상태인지,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는 장애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아이가 장애로 판명나면 보험사는 면책 사항으로 보고 치료 보험금 지급을 중단할 수 있다. 지원이 필요한 절실한 상황이 될수록 보험에 기댈 수 없게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긴 하다. 장애를 예상하고 아이를 낳을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을텐데 말이다.

◆ 부모도 병원에 치료를 맡기고 싶다

이 같은 보험사의 주장 때문에 발달지연 아동들을 치료하는 사설 발달센터로 화살이 향한다.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 '치료'를 맡기는 부모들을 탓한다. 물론 자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치료 행위를 하고 있다면 충분히 문제 소지가 있다. 이는 보다 명확한 기준과 권한 강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발달지연 아동의 부모는 치료사의 자격까지 확인할 여력이 없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치료를 시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대다수의 발달지연 아동의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문제를 인지했을 때 가장 먼저 병원의 소아정신과를 찾는다. 병원의 치료와 진단이 가장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병원의 경우 현재 예약조차도 불가하다. 지난해만 해도 유능한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예약을 시도하면 대기만 2~3년이었고, 현재는 아예 예약 대기조차 되지 않는다.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2~3년의 골든타임을 버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때문에 차선책으로 찾는 곳이 발달센터다. 어떻게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실제 의료계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아이에게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왜 치료를 받냐"며 부모를 탓하는 보험사의 지적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부모는 그저 현 의료체계 안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보험금 지급 기준이 강화되면서, 비용 부담 때문에 병원에서 권고하는 치료를 모두 받지 못 하고 일부 포기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치료 포기로 인해 아이의 예후가 좋지 않을 경우 수반되는 죄책감, 오롯이 부모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 치료를 받지 않는 게 부모들의 소원이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실손의료보험은 매번 그 손해율이 문제가 돼 왔다. 정당하게 질병이나 상해를 치료받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 외에 과잉진료, 브로커를 통한 허위진료 등이 그 중심에 있다. 최근 문제가 불거졌던 백내장 수술 보험금도 논란 중 하나였다. 실제로 최근 발달지연 아동들이 늘어난 것을 악용해 일부 센터 치료를 부추기는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의사에게 들은 바 있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당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큰 국가적 손실이다. 금융당국과 정부가 나서 발달지연 아이들을 위한 치료체계와 의료 환경부터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할 시기다. 저출산 위기를 연일 언급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나 복지부 등 관련 부처들은 과연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살펴보고는 있는 지 의문이다.

보험사들은 "치료받지 않아도 될 아이들이 치료를 받는다"며 과잉진료를 문제삼는다. "일부 부모들은 보험금으로 학원 대신 치료실에서 일대일 과외를 받는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하지만 그 기준을 감히 누가 논할 수 있을까. 발달이라는 영역은 의료계 조차도 명확하게 진단할 수 없어 '달리 분류되지 않은 장애, 일명 R코드'라는 질병분류코드를 아이들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모는 그저 실나락 같은 희망을 안고 의료진의 권고에 따를 뿐이다.

팔 때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 줄 것 처럼 현혹하고, 막상 손해가 나는 아이들에 대해 고개를 돌리는 보험사들의 이중적인 행태는 가뜩이나 심각한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혼탁한 시장을 만드는 브로커들도 강력히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선량한 가입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있어야 한다. 아니, 아이를 볼모로 한 밥그릇 싸움은 이유를 불문하고 중단돼야 한다.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치료에 대해 정부는 모르쇠, 그나마 울타리가 돼 줄 것 같았던 보험사마저 등을 돌리는 모습은 마치 "너희들은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다 가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잔혹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발달지연 아이 부모들의 소원은 내 아이가 더 이상 치료실에 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주기 싫어하는 보험금, 부모들은 제발 더 이상 받을 일이 없길 기도하며 하루 하루를 버텨낸다.
병원·보험사 밥그릇 싸움이 발달지연 아이를 죽인다 [기자수첩]
장슬기기자 jsk9831@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