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30년전 첫 작품이 궁금하다면...넷플 다큐 ‘노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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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넷플릭스에 공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봉 감독 출발점과 미공개 첫 단편 보여줘
봉 감독 출발점과 미공개 첫 단편 보여줘
퀴즈 하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1950)과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성난 황소(Raging Bull)’(1980)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다. 그중 하나는 1990년대 ‘시네필’로 불릴만한 영화 애호가라면 어떤 경로로든 관람했거나, 직접 보진 못했어도 작품 내용과 의미를 공부했을 법한 영화란 점이다. 프랑스어인 시네필은 영화(Cinéma)와 사랑(Phil)을 합친 단어로, 영화광(映畫狂)이나 영화 애호가 정도로 번역된다.
둘을 하나로 묶는 또 다른 답변이 하나 생겼다. 27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라쇼몽과 성난 황소가 자료 화면으로 나오면서 이 작품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992년 결성된 영화 공부 모임인 ’노란문‘의 한 초기 회원이 이 모임의 최고 일꾼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첫 단편 영화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를 회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단편은 어둡고 칙칙한 지하에 사는 고릴라 인형이 '똥 벌레'의 공격을 피해 낙원을 꿈꾸는 내용을 담은 23분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라쇼몽의 주요 인물들이 한 사건을 두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서로 다르게 진술하는 것처럼 이 회원의 회고도 그렇다. 23분짜리 단편을 5분짜리로, 주인공을 고릴라가 아니라 악당인 벌레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데도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경악했다”고 말한다. 인터뷰어는 이 작품을 연출한 노란문 회원 출신인 이혁래 감독이다. 영화에는 이 감독의 “흐흐흐”하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라쇼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이 작품에서 출연 및 멘트 비중이 가장 높은 봉 감독이 한다. “노란문 초기 모습을 찍은 필름들이 들어 있는 오동나무 상자들을 찾았어요. ‘집단 라쇼몽’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영화는 주로 약 30년 전인 1992~1993년 활동했던 노란문 멤버 10여 명이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만나 봉 감독이 찾은 필름들을 같이 보며 당시의 모임 내용과 시대 상황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 ‘룩킹 포 파라다이스’의 유일했던 시사회에 참석했던 회원들이 이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추억과 기억을 따라간다. 하지만 봉 감독의 희망과는 달리 영화는 명확한 팩트보다는 서로 엇갈리는 기억이나 이견, 오해 등 집단 라쇼몽 현상을 더 부각한다. 3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회원들이 제각각 다르게 추억하는 노란문 사건들이 더 큰 재미와 웃음을 준다. 이 감독은 “출연진 각각의 목소리와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당시 시네필의 에너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길이었다”고 했다. 1990년대 시네필이 자주 찾았던 곳은 서울 황학동(청계천)이었다.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파는 곳들이 많았다. 노란문의 자료 담당이었던 봉 감독은 여기서 영화 공부에 꼭 필요한 작품들을 많이 구했다. 그는 이런 작품 구입 과정을 ‘보물찾기’라고 했다. 봉 감독은 “허접한 영화들 사이에 이상한 제목으로 출시된 보물들이 숨어 있는데, 감이 좋아야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시기에 황학동으로 비디오테이프를 사러 가본 영화 애호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봉 감독이 이렇게 찾은 보물 중 대표적인 작품이 '분노의 주먹'이란 제목으로 출시된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성난 황소'였다. 한 회원은 “준호(봉 감독)가 정말 마틴 스코세이지를 좋아했다”며 “한글 자막에 문제가 많았지만, 압도적인 권투 시퀀스에 다들 완전히 맛이 갔다”고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한 봉 감독의 출발점과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된 1990년대 한국의 시네필 문화를 흥미로운 노란문 이야기와 함께 깊이 있는 시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지만, 영화와 영상산업 역사에 관심 있는 시청자라면 일부 동의할 수 없는 대목도 있을 법하다."1990년대 중후반에 대기업들의 영상산업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자막과 진술이 특히 그렇다. 1998년 외환위기 전부터 대기업들이 문화산업에서 하나둘씩 발을 뺐던 사례들을 기억한다면 다큐멘터리 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다. 그중 하나는 1990년대 ‘시네필’로 불릴만한 영화 애호가라면 어떤 경로로든 관람했거나, 직접 보진 못했어도 작품 내용과 의미를 공부했을 법한 영화란 점이다. 프랑스어인 시네필은 영화(Cinéma)와 사랑(Phil)을 합친 단어로, 영화광(映畫狂)이나 영화 애호가 정도로 번역된다.
둘을 하나로 묶는 또 다른 답변이 하나 생겼다. 27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라쇼몽과 성난 황소가 자료 화면으로 나오면서 이 작품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992년 결성된 영화 공부 모임인 ’노란문‘의 한 초기 회원이 이 모임의 최고 일꾼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첫 단편 영화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를 회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단편은 어둡고 칙칙한 지하에 사는 고릴라 인형이 '똥 벌레'의 공격을 피해 낙원을 꿈꾸는 내용을 담은 23분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라쇼몽의 주요 인물들이 한 사건을 두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서로 다르게 진술하는 것처럼 이 회원의 회고도 그렇다. 23분짜리 단편을 5분짜리로, 주인공을 고릴라가 아니라 악당인 벌레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데도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경악했다”고 말한다. 인터뷰어는 이 작품을 연출한 노란문 회원 출신인 이혁래 감독이다. 영화에는 이 감독의 “흐흐흐”하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라쇼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이 작품에서 출연 및 멘트 비중이 가장 높은 봉 감독이 한다. “노란문 초기 모습을 찍은 필름들이 들어 있는 오동나무 상자들을 찾았어요. ‘집단 라쇼몽’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영화는 주로 약 30년 전인 1992~1993년 활동했던 노란문 멤버 10여 명이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만나 봉 감독이 찾은 필름들을 같이 보며 당시의 모임 내용과 시대 상황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 ‘룩킹 포 파라다이스’의 유일했던 시사회에 참석했던 회원들이 이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추억과 기억을 따라간다. 하지만 봉 감독의 희망과는 달리 영화는 명확한 팩트보다는 서로 엇갈리는 기억이나 이견, 오해 등 집단 라쇼몽 현상을 더 부각한다. 3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회원들이 제각각 다르게 추억하는 노란문 사건들이 더 큰 재미와 웃음을 준다. 이 감독은 “출연진 각각의 목소리와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당시 시네필의 에너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길이었다”고 했다. 1990년대 시네필이 자주 찾았던 곳은 서울 황학동(청계천)이었다.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파는 곳들이 많았다. 노란문의 자료 담당이었던 봉 감독은 여기서 영화 공부에 꼭 필요한 작품들을 많이 구했다. 그는 이런 작품 구입 과정을 ‘보물찾기’라고 했다. 봉 감독은 “허접한 영화들 사이에 이상한 제목으로 출시된 보물들이 숨어 있는데, 감이 좋아야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시기에 황학동으로 비디오테이프를 사러 가본 영화 애호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봉 감독이 이렇게 찾은 보물 중 대표적인 작품이 '분노의 주먹'이란 제목으로 출시된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성난 황소'였다. 한 회원은 “준호(봉 감독)가 정말 마틴 스코세이지를 좋아했다”며 “한글 자막에 문제가 많았지만, 압도적인 권투 시퀀스에 다들 완전히 맛이 갔다”고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한 봉 감독의 출발점과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된 1990년대 한국의 시네필 문화를 흥미로운 노란문 이야기와 함께 깊이 있는 시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지만, 영화와 영상산업 역사에 관심 있는 시청자라면 일부 동의할 수 없는 대목도 있을 법하다."1990년대 중후반에 대기업들의 영상산업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자막과 진술이 특히 그렇다. 1998년 외환위기 전부터 대기업들이 문화산업에서 하나둘씩 발을 뺐던 사례들을 기억한다면 다큐멘터리 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