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기금에서 돈을 빼 정부사업 예산으로 쓰고 있다는 지적이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국민연금과 관련도 없는 사업에 연기금이 쓰인 규모가 지난 7년간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 국민의 노후 종잣돈인 국민연금 기금을 정부가 부적절하게 사용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가 해야 할 사업을 국민연금공단에 맡기고, 정부가 지급해야 할 사업 예산을 연기금에서 지급했다"는 지적이다.

고 의원이 말한 공단의 수탁사업은 장애 정도 심사, 장애인 활동 지원, 근로능력 평가, 기초연금 지원 사업 등 네 가지다. 이 수탁사업을 위해 1200여명의 인원을 채용하고 있는데, 인건비 등 예산 일부를 연기금에서 지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고 의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2016~2022년 장애 정도 심사에 약 478억원, 장애인 활동 지원에 413억원, 근로능력 평가에 174억원의 연기금이 사용됐다. 이는 각 사업에 필요한 인건비의 30~40% 수준이다. 7년 동안 1067억원가량이 이 정부사업을 위해 연기금에서 지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보다 앞서 2011~2015년까지는 연기금에서 쓰인 액수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고 의원은 "국민연금법에는 국민연금 사업에 관련된 것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탁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이 사업들은 국민연금 관련 사업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받아도 잘못된 건데 돈을 떼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연금 인건비가 매년 100억~200억원가량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공단 자체 인건비 증액이 아니다"라며 "정부 예산을 대신 메꿔주기 위해 예산이 늘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정부사업에 대한 연기금 지출액을) 정부에서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 이런 상황을 알게 됐다"며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이 부분을 고려해 충분한 예산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고 의원은 "이는 국민들이 낸 연기금을 정부가 10여년 동안 떼먹은 사건"이라며 "연기금이 고갈된다고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면서 정부 예산으로 갖다 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과해야 한다"며 "관련자들 징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동근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도 "이건 명백한 배임 행위"라며 "수사까지 의뢰할 상황이다. 이 문제에 대해 허투루 듣지 말고 정확히 관련 조치를 이행해달라"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