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부스에 있는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부스에 있는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는 세상이 다 아는 라이벌 도시다. 수백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사안에서 '유럽 최고 도시' 타이틀을 놓고 다퉜다.

지난 열흘동안 두 도시가 겨룬 '종목'은 미술이었다. 세계 양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로 불리는 '프리즈'와 '아트바젤'이 각각 런던과 파리에서, 그것도 사흘 간격으로 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 많은 '큰 손' 컬렉터라도 두 아트페어에 나온 작품을 모두 쓸어담을 수는 없는 터. 둘 중 어떤 아트페어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 더 많은 작품이 팔렸는지, 더 좋은 작품이 걸렸는지에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쏠린 이유다.

‘프리즈 런던’(11~15일)과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18~22일)’ 현장에서 만난 컬렉터들과 갤러리스트들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했다. "파리의 판정승"이라고. 한 컬렉터는 "지난 몇년간 파리가 런던에 다소 밀렸지만, 아트바젤이 파리에서 대규모 아트페어를 열기 시작한 작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올해 전시 구성이나 참여 열기 등을 보면 파리가 런던을 누르고 '유럽 미술수도' 자리를 되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런던 대신 파리로 몰려간 VIP

'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전시장 통로가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전시장 통로가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는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의 모기업인 스위스 MCH그룹이 작년에 파리 토종 아트페어인 '피악(FIAC)'을 인수하면서 시작했다. 올해로 2회째인 '신생 페어'인데도 20주년을 맞은 프리즈 런던의 대항마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트바젤'이란 이름값과 '피악'의 전통을 등에 업고 세계 34개국, 154개 갤러리를 끌어모았다.

파리 플러스의 열기는 첫날부터 뜨거웠다. VIP 오프닝이었던 지난 18일 행사가 열린 에펠탑 근처 그랑팔레 에페메르 전시장은 쏟아지는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서로 몸을 부딪히지 않고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그 중에는 세계 최고 부자로 손 꼽히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딸 델핀 아르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도 있었다. 한 외국 갤러리 관계자는 "프리즈 런던에서 볼 수 없었던 컬렉터들이 많이 보였다"며 "런던을 건너뛰고 파리로 직행한 컬렉터도 많다고 들었다"고 했다.
'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부스에 있는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부스에 있는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이런 VIP들이 찾으니 세일즈가 안 좋을 리 없다. 전세계에 지점을 갖고 있는 '메가 갤러리'들은 첫날부터 수백만달러대 판매 소식을 알렸다. 프리즈 런던에선 100만달러 이상 판매작이 없었던 데이비드 즈워너는 파리 플러스 첫날에 케리 제임스 마샬의 그림을 600만달러(약 81억원)에 팔았다. 하우저앤워스도 첫날 240만달러(32억원)짜리 조지 콘도의 신작을 포함해 부스에 걸려있던 작품을 '완판'했다. 독일 갤러리 페레스프로젝트의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는 "미술 투자 광풍이 불었던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기대에 부응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말했다.

◆'한몸'으로 움직인 명품·미술관

많은 컬렉터들이 런던 대신 파리를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루이비통은 아트페어 안에선 박서보 등 예술가들과 협업한 '아트카퓌신' 가방 부스를 차렸고, 페어장 밖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선 마크 로스코 작품을 밤 늦도록 즐길 수 있는 VIP 행사를 열었다. 피노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리모델링한 공간에서 미국 작가 마이크 켈리 전시를 열었고, 겔랑은 샹젤리제 거리 매장을 예술 전시장으로 바꿔놨다.
파리 플러스 파 전시장에 설치된 루이비통의 '아트카퓌신' 부스.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 파 전시장에 설치된 루이비통의 '아트카퓌신' 부스. /이선아 기자
반 고흐(오르세박물관), 모딜리아니(오랑주리미술관), 곰리(로댕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에서도 '블록버스터 전시'가 일제히 열렸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아트 디렉터 엠마는 "이 정도로 굵직한 작가들 전시가 한꺼번에 열리는 건 파리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내년엔 파리가 '유럽 미술 수도' 입지를 확실하게 굳힐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파리 플러스 전시장을 지금의 7배에 달하는 그랑팔레로 옮기기 때문이다. 내년 7~8월 파리올림픽을 치른 바로 그 자리에서 두달 뒤 아트페어를 연다는 얘기다. 미술계에선 파리 플러스가 그랑팔레로 옮기면 지금보다 25% 더 많은 갤러리들이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리 플러스 파 전경.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 파 전경. /이선아 기자

◆"아시아도 한 곳으로 집중될 것"

유럽 미술 수도를 둘러싼 런던과 파리의 전쟁은 아시아에서 비슷한 형태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①최근 몇 년 새 아트페어 수가 부쩍 늘어났는데, ②글로벌 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미술시장이 쪼그라들어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 MCH그룹이 올 초 파리 플러스에 힘을 싣기 위해 10년이 넘은 아트페어 ‘마스터피스 런던’을 중단한 것처럼.
파리 플러스 파에서 한 컬렉터가 작품 구매 전 뒷편을 살펴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 파에서 한 컬렉터가 작품 구매 전 뒷편을 살펴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아시아가 딱 그런 상황에 처했다. 지난 몇년간 아시아 최고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이 정치 불안 여파로 흔들리자 프리즈 서울(한국), 아트SG(싱가포르), 도쿄겐다이(일본) 등이 줄줄이 생겼기 때문이다. 공급부족시장에서 순식간에 공급초과시장으로 바뀌었다.

미술계에선 우후죽순처럼 생긴 여러 아시아 아트페어 가운데 사람과 돈이 몰리는 1~2개 중심으로 조만간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프리즈 서울은 전통의 강호인 아트바젤 홍콩과 함께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아트페어로 분류되고 있다.

파리에서 만난 한 중국인 컬렉터는 "미술 투자열기가 수그러든 만큼 대다수 글로벌 컬렉터들은 아시아 아트페어중 한두 곳 정도만 둘러볼 것"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프리즈 서울은 아트바젤 홍콩과 함께 가장 경쟁력 있는 아시아 아트페어로 볼 수 있다"이라고 했다.
'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부스에 있는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파리 플러스 파'가 개막한 지난 18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부스에 있는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선아 기자
파리=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