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 주가 조작 일당, 부당이득 1000억원대 달해
지난 1년간 주가 상승폭이 976%에 달하는 영풍제지 주가 조작에 약 11개월간 100여개 계좌가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주가 조작 ‘세력’이 적어도 1000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혐의 계좌는 대부분은 ‘빚투(빚내서 투자)’ 허용 기준이 유독 낮았던 키움증권 한 곳에 몰렸다.

‘증거금 40%’ 주가조작 통로 된 키움증권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풍제지 주가 조작 일당은 주로 키움증권에 등록한 계좌 100여개를 통해 영풍제지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키움증권의 영풍제지에 대한 미수거래 증거금률이 40%로 주요 증권사 중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영풍제지 주가 조작 일당, 부당이득 1000억원대 달해
미수거래 증거금률은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사들일 때 최대 한도를 정하는 현금 비율이다. 40%라면 40만원만 가지고 100만원어치 주식을 살 수 있다.

각 증권사는 통상 개별적으로 종목별 증거금을 정한다. 기업 내실과 전망 등에 비춰 주가가 터무니없이 높은 등 이상거래가 의심되는 ‘위험 종목’에 대해선 증거금률을 높인다. 과도한 빚투 미수금 리스크(위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은 각각 올해 초부터 지난 7월까지 영풍제지 증거금을 100%로 상향 설정해 유지해오고 있다. 현금으로만 주식을 매수하게 해 미수거래를 차단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지난 7월 26일과 8월 3일 영풍제지를 투자경고·주의 종목으로 지정했고, 이후 한동안 별다른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금을 올린 채로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반면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가 터진 지난 18일까지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했다. 거래가 정지된 19일에서야 100%로 조정했다. 리스크 관리가 미비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감원 관계자는 “모두가 증거금률을 100%로 올릴 때 40%를 유지하고 있으니 세력의 주요 작전 창구가 된 것”이라며 “키움증권이 신용융자에 대한 증거금 비율은 강화한 반면 미수거래 비율을 챙기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시장에선 주가조작 세력이 키움증권에서 약 3000억원 규모 증거금으로 5000억원가량을 대출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차명계좌 등 비정상 계좌도 여럿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키움증권의 영풍제지 주식 거래 미수금은 4943억원에 달한다. 키움증권 상반기 순이익(4258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무자본 M&A’ 이득 본 이들 의심”

금융감독원은 이번 주가조작 세력이 영풍제지 모기업인 대양금속과 연결됐을 가능성도 따져보고 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대양금속이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영풍제지를 ‘무자본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득한 이들이 영풍제지 주가 조작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양금속은 지난해 영풍제지 지분 50.51%를 약 1300억원에 인수하면서 자금을 거의 CB로 조달해 논란을 샀다. 당시 대양금속이 발행한 CB를 피인수기업인 영풍제지가 취득했다. 인수한 회사에서 자금을 조달해 인수자금을 갚는 구조였던 셈이다.

영풍제지는 대양금속이 인수를 발표한 작년 6월부터 주가가 급등했다. 올 들어선 무인항공기와 2차전지 등 신사업 진출 계획을 밝히며 주요 투자 테마 열풍에 올라타기도 했다. 실질적 호재가 없는 와중에도 11개월간 주가가 12배 이상 올라 주가수익비율(PER)이 300배를 넘었다. 제지업계 다른 기업들의 PER이 4~10배 정도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양금속은 지난 18일 하한가(29.91%)인 2250원에 장을 마감한 이후 거래 정지 상태다.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세력이 긴급 체포되자 공범 등 관련자들이 주식 투매에 나서면서 대양금속까지 주가가 폭락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1개월이나 지나 발각’ 지적도

주가 조작 일당은 11개월간 영풍제지를 매집해 조금씩 시세를 올리는 식으로 시세조종을 시도했다. 지난 4월 발각된 라덕연 일당 사건과 유사한 방식이다. 라덕연 일당이 골랐던 종목처럼 영풍제지도 유통 주식 물량이 적고 공매도가 불가능해 시세조종이 비교적 용이했다는 점도 닮았다. 비슷한 방식으로 대규모 주가 조작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국의 단속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풍제지는 하한가에 이르기 전엔 1년간 주가가 17배까지 올랐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시세조종 시도가 반년 이상 중·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반면 기존 이상거래 적출 기준은 100일에 불과해 시스템상으로 걸러낼 수 없는 구조”라며 “의심되는 종목에 대해 거래를 하나하나 따져봐야 하는 식이라 ‘즉시 발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라덕연 사건 적발 이후 6개월·연간 거래에 대해서도 이상거래를 포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실제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