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원 무기화의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있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갈륨·게르마늄에 이어 이번엔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음극재에 들어가는 흑연 수출 통제에 나섰다. 세계 2차전지 시장에서 경쟁 상대인 한국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어서 정부와 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중국 상무부와 관세청의 최근 공고를 보면 이유는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해’이며, 시행 시점은 12월 1일부터다. 인조흑연 천연흑연 등 원료뿐만 아니라 음극재도 대상에 포함했다. 이 품목들은 향후 통관이 지연되거나 수출이 제한될 우려가 커졌다. 중국은 이번 조치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며, 규정에 적합한 수출은 허가받는다고 했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대중 수출 통제를 강화한 미국에 맞대응해 중국이 흑연과 음극재를 무기화하려는 이유는 알 만하다. 한국 등 동맹국과 협력해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을 자국에서 대대적으로 육성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를 위해 배터리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중 하나인 음극재의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직접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흑연 제련과 음극재 시장에서 중국 비중은 압도적이다. 배터리 강국인 중국은 세계 흑연 제련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글로벌 1~4위 음극재 기업도 모두 중국 회사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수출 통제를 본격화하면 국내 배터리 및 음극재 업체는 핵심 원료 수급과 제품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음극재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세계 5위 음극재 업체 포스코퓨처엠도 흑연의 거의 전량을 중국에서 들여온다.

배터리업계는 상당한 재고를 확보한 만큼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흑연을 비롯한 핵심 광물의 공급망 다변화에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약한 고리’를 없애는 것 외엔 대안이 마땅찮다. 흑연이 시작일 수 있다. 중국이 희토류 등 국내 산업에 필요한 핵심 광물을 언제든지 무기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