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제지업체인 영풍제지 주가가 최근 1년간 시세 조종으로 10배 이상 오르는 사이 작전 세력은 1000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시세 조종 혐의를 포착한 지난 8월 이후 두 달여간 주식 거래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나 이 기간 손실을 본 투자자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작전 세력은 ‘빚투’(빚내서 투자) 허용 기준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키움증권 계좌를 시세 조종 창구로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풍제지 작전세력, 증거금률 낮은 증권사 노렸다

증거금률 낮은 키움증권 노렸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풍제지 주가 조작 일당은 주로 키움증권에 등록한 계좌 120여 개를 통해 영풍제지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키움증권의 영풍제지 미수거래 증거금률이 40%로 주요 증권사 중 가장 낮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수거래 증거금률은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사들일 때 최대 한도를 정하는 현금 비율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대형 증권사는 올해 초부터 7월까지 영풍제지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다. 현금으로만 주식을 매수하게 해 미수거래를 차단했다는 얘기다. 반면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가 터진 지난 18일까지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하다가 거래가 정지된 19일 100%로 조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들이 증거금률을 100%로 올릴 때 40%를 유지하고 있으니 작전 세력의 통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키움증권이 내부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고 보면서도, 법 또는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혐의는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종목에 대한 증거금률은 증권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키움증권에 대해 조사·검사 계획은 없다”며 “새로운 혐의가 드러나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 “당국 대처 늦은 것 아니냐”

영풍제지 소액주주들은 “당국의 대처가 늦은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영풍제지는 4월 차액결제계좌(CFD)를 활용해 대규모 주가 조작을 한 ‘라덕연 사태’가 터진 뒤 ‘작전 세력이 관여하고 있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거래소는 소수 계좌가 과도하게 매매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7월 26일과 8월 3일 각각 영풍제지를 투자주의,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했다. 한국경제신문도 8월 8일 ‘영풍제지 1년간 17배 폭등…제2 라덕연 있다’는 보도를 통해 주가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이 강제 수사에 나선 건 이로부터 두 달 이상 지난 시점이다. 금감원이 내부 조사를 거쳐 검찰에 이첩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게 금감원 등의 설명이다. 이 기간 상당수 작전 세력이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의심됐다. 실제 거래정지 직전 최근 두 달간(8월 19일~10월 18일) 영풍제지의 하루 평균 주식 거래량은 544만2728주로 직전 두 달간(6월 19일부터 8월 18일)보다 143.46%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 하루 평균 거래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영풍제지는 1970년 설립돼 1993년 상장한 업체다. 2015년 사모펀드(PEF) 큐캐피탈에 650억원에 매각됐다. 작년 6월 큐캐피탈은 영풍제지를 대양금속에 1206억원에 팔았다. 대양금속에 매각한 직후 박스권에 있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이번 주가 조작 세력이 영풍제지 모기업인 대양금속과 연결됐을 가능성도 따져보고 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대양금속이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영풍제지를 무자본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득한 이들이 영풍제지 주가 조작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양금속은 지난해 영풍제지를 인수하면서 자금을 거의 CB로 조달했다. 당시 대양금속이 발행한 CB를 피인수기업인 영풍제지가 취득했다.

선한결/박의명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