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김민희 커플이 빚은 우리네 소소한 일상...영화 '우리의 하루'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40대의 전직 여배우(김민희)에게 사촌 동생(박미소)이 찾아와 선물 박스를 내민다. 샴푸와 비누 따위의 내용물 냄새를 건성으로 맡으며 여배우가 넌지시 묻는다. “너 연기하려고 한다며? 아니 그냥. 의외여서.” 사촌은 자신의 선물이 실패한 걸 눈치챈다.
시간을 때우려는 듯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던 여배우가 진지해진다. 이어지는 그녀의 ‘연기 철학’은 얼핏 해학적으로 들리지만, 진실한 순간들도 느껴진다. 감독이 원하는 연기와 나의 것 사이의 간극, 연기자로서의 고민에 대한 이 대사들은 어디서 온 걸까. 배우를 연기하는 김민희 본인일까. 홍상수 감독이 그녀에게 투영해내려는 또 다른 누군가일까.
‘우리의 하루’는 홍상수 감독의 서른번째 장편 영화다. 구성은 단순하다. 우선 여배우가 묵는 지인(송선미)의 집. 네 여자와 고양이 한마리가 하루를 보낸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우리’다.
또 하나의 공간이 교차하는데, 70대 시인(기주봉)의 집이다. 여대생(김승윤)은 그에 대한 영상을 찍고 있고, 젊은 배우(하성국)는 ‘삶이 무엇인가’ 묻기 위해 그를 찾는다. 젊은이들의 관심에 기분이 좋을 만도 하지만, 사실 시인은 건강 때문에 끊은 술과 담배 생각이 더 간절하다.
이들 시공간의 연결고리는 딱히 없어 보인다. 같은 하루인지도 알 수 없다. 이들 사이를 유추하게 하는 순간은 있다. 여배우도 시인도 라면에 고추장을 가득 풀어서 먹는다는 점. 이들이 과거에 스쳐갔거나, 또는 같은 지인을 둔 지도 모른다. 두 집 모두 기타가 있고, 고양이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이건 또 필연일까 우연일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고 끝난다. 집 나갔던 고양이 ‘우리’가 어딜 다녀왔는지, 사촌의 쪽지는 무슨 사연인지, 여배우는 이 집에 왜 머물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관객들은 그저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를 보면서 상상하고 유추해볼 뿐이다.
홍상수 영화의 즐거움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지극히 소소한 타인의 순간순간들을 지켜보는 것. 메시지나 의미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순간. 흥미로운 패턴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배우 김민희는 습관처럼 말을 반복한다. 대화들은 자주 어색하게 미끄러지고 멈춰선다.
이런 반복과 변주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궁금해진다면, 소소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낄 것이다. 그것이 홍상수 영화의 극적 긴장이다. ‘우리의 하루’에서 흥미로운 패턴 중 하나는 집을 둘러싼 것이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집에 들어오고 나가고, 또 머문다. 시인을 방문한 두 젊은이는 언제 여길 나갈 것인지 고민한다.
고양이 ‘우리’의 가출은 이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무 일 없었던 하루가 저무는 동안 ‘우리’는 태평하게 잠이나 잔다. ‘우리’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는 중이다.
영화의 마무리는 시인이 장식한다. 삶이 무엇인가 묻던 청년에게 말없이 대답하듯이. 이 장면은 해학적이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영화를 본 직후 홍상수 감독의 나이를 확인해본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60년생. 삶과 나이에 대해, 그리고 무탈히 지나가는 하루의 소중함에 대해 홍상수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이래, 장편 필모그래피만 30개째인 그다. ‘소설가의 영화’(2022), ‘물안에서’(2023)에 이어 또 다시 찾아온 그의 영화는 늘 그렇듯, 뭔가 과시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제작/각본/감독/촬영/편집/음악을 모두 홍상수가 했고, 그의 연인이기도 한 김민희가 제작실장을 맡았다.
김유미 객원기자
시간을 때우려는 듯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던 여배우가 진지해진다. 이어지는 그녀의 ‘연기 철학’은 얼핏 해학적으로 들리지만, 진실한 순간들도 느껴진다. 감독이 원하는 연기와 나의 것 사이의 간극, 연기자로서의 고민에 대한 이 대사들은 어디서 온 걸까. 배우를 연기하는 김민희 본인일까. 홍상수 감독이 그녀에게 투영해내려는 또 다른 누군가일까.
‘우리의 하루’는 홍상수 감독의 서른번째 장편 영화다. 구성은 단순하다. 우선 여배우가 묵는 지인(송선미)의 집. 네 여자와 고양이 한마리가 하루를 보낸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우리’다.
또 하나의 공간이 교차하는데, 70대 시인(기주봉)의 집이다. 여대생(김승윤)은 그에 대한 영상을 찍고 있고, 젊은 배우(하성국)는 ‘삶이 무엇인가’ 묻기 위해 그를 찾는다. 젊은이들의 관심에 기분이 좋을 만도 하지만, 사실 시인은 건강 때문에 끊은 술과 담배 생각이 더 간절하다.
이들 시공간의 연결고리는 딱히 없어 보인다. 같은 하루인지도 알 수 없다. 이들 사이를 유추하게 하는 순간은 있다. 여배우도 시인도 라면에 고추장을 가득 풀어서 먹는다는 점. 이들이 과거에 스쳐갔거나, 또는 같은 지인을 둔 지도 모른다. 두 집 모두 기타가 있고, 고양이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이건 또 필연일까 우연일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고 끝난다. 집 나갔던 고양이 ‘우리’가 어딜 다녀왔는지, 사촌의 쪽지는 무슨 사연인지, 여배우는 이 집에 왜 머물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관객들은 그저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를 보면서 상상하고 유추해볼 뿐이다.
홍상수 영화의 즐거움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지극히 소소한 타인의 순간순간들을 지켜보는 것. 메시지나 의미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순간. 흥미로운 패턴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배우 김민희는 습관처럼 말을 반복한다. 대화들은 자주 어색하게 미끄러지고 멈춰선다.
이런 반복과 변주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궁금해진다면, 소소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낄 것이다. 그것이 홍상수 영화의 극적 긴장이다. ‘우리의 하루’에서 흥미로운 패턴 중 하나는 집을 둘러싼 것이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집에 들어오고 나가고, 또 머문다. 시인을 방문한 두 젊은이는 언제 여길 나갈 것인지 고민한다.
고양이 ‘우리’의 가출은 이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무 일 없었던 하루가 저무는 동안 ‘우리’는 태평하게 잠이나 잔다. ‘우리’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는 중이다.
영화의 마무리는 시인이 장식한다. 삶이 무엇인가 묻던 청년에게 말없이 대답하듯이. 이 장면은 해학적이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영화를 본 직후 홍상수 감독의 나이를 확인해본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60년생. 삶과 나이에 대해, 그리고 무탈히 지나가는 하루의 소중함에 대해 홍상수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이래, 장편 필모그래피만 30개째인 그다. ‘소설가의 영화’(2022), ‘물안에서’(2023)에 이어 또 다시 찾아온 그의 영화는 늘 그렇듯, 뭔가 과시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제작/각본/감독/촬영/편집/음악을 모두 홍상수가 했고, 그의 연인이기도 한 김민희가 제작실장을 맡았다.
김유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