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에 자막과 수어가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요.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일찌감치 모든 콘텐츠에 자막 도입이 의무화돼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배리어 프리' 서비스를 내놓은 회사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소보로도 그 중 하나입니다. 20대 초반에 창업에 뛰어든 윤지현 소보로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웹툰 보고 창업 결심, 청각장애 돕기 위해 나섰죠"…포스텍 학생의 꿈 [긱스]
포항에 살던 21살 대학생은 '창업'에 대한 열정만으로 짐을 싸 상경했다. 아무리 바빠도 매주 두 번씩 일기를 썼다. 멘털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가 일기장에서 뽑아낸 '멘털 그래프'는 수백 번씩 등락을 반복하는 증시 같았다. 하지만 괜찮다. 그가 창업한 회사는 이제 어엿한 7년차 스타트업이 됐다. 직원 수도 27명까지 늘었다.

한경 긱스(Geeks)와 만난 윤지현 소보로(소리를보는통로) 대표는 '보조공학' 분야의 혁신을 노리고 있다고 회사를 정의했다. 보조공학은 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기능적인 제한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의 귀, 시각장애인의 눈이 돼 주는 식이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AI) 자막 서비스를 내놨다. AI가 실시간으로 음성을 인식해 자막을 제공한다. 청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된다. 강연이나 회의에 활용할 수 있다. 생성된 자막을 편집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AI의 도움뿐 아니라 검수 과정에서 필요시 속기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 인력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회사의 자막 서비스 누적 이용 시간은 8만 시간, 서비스를 도입한 고객사는 800곳에 달한다. 청각장애 학생들이 있는 지역별 교육청과 대학교에서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활발한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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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본 뒤 아이템 발견

윤 대표(사진)는 부산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포스텍(옛 포항공대) IT융합공학과에 들어갔다. 수학과 과학을 사랑했고,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 전형적인 공대생 '바이브'를 갖고 있었다. 가족들도 마침 "이왕 IT 관련 학과를 들어갔으니, 회사를 한 번 만들어보라"고 말할 정도로 그를 응원해줬다.

웹툰을 좋아하는 대학생이던 윤 대표는 2학년 때 청각장애인 작가 라일라의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웹툰을 접했다. 이 작품엔 주인공이 대학생 시절 문자통역을 접한 뒤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교 때까지 수업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항상 고개숙이고 있던 주인공이 비로소 문제를 해결하게 된 이후 느낀 소회다. 이 대사는 윤 대표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이 때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돌아봤다.

이듬해 3학년 학부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이를 창업 아이템으로 발전시켰다. 앱이나 서비스를 기획해 이를 만들어보는 수업이었다. 수백 명의 청각장애인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후엔 휴학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법인은 2017년 11월 세웠다. 곧바로 시드(초기) 투자도 받았다. 소보로라는 사명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어머니가 지었다. 소리도 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윤 대표는 "돈을 많이 벌던 직장인도 아니었고, '잃을 것' 없는 대학생 신분이었기에 오히려 더 과감하게 창업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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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음성 인식해 텍스트 변환

회사가 만든 AI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실행하자 옆에 있던 TV 모니터에 대화 내용이 그대로 기록됐다. 인터뷰 내용을 타이핑하던 기자에게 윤 대표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는 "자막은 통상 90% 이상의 정확도로 구현되고, PESQ나 STOI 같은 음성 품질을 평가하는 지표에서도 증명됐다"며 "클로바노트 같은 빅테크가 만든 서비스에 비해 '실시간성'을 확보한 게 큰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음성이 텍스트로 변환된 뒤에는 필요 시 회사가 가진 100여 명의 프리랜서 타이피스트 풀을 활용해 2차 검수를 도와준다. 속기사 1급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 10여 명도 검수를 돕는다. 최종 완성본 자막은 온라인 교육 업체나 대학교, 회의록 작성이 필요한 기업, 녹취공증 고객사 등에 전달된다. 콘텐츠에 자막이 들어가는 유튜버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은행 상담창구 등도 잠재 고객이다.

윤 대표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자막이 의무화돼 있는데, 한국은 아직 일부 콘텐츠에만 적용된다"며 "국내 스크립팅 시장은 연 75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글로벌 시장에서 벤치마킹 중인 미국의 레브(Rev) 같은 업체처럼 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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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공학 분야 '다작' 노린다

윤 대표는 스타트업 업계에서의 사투를 매 순간 '멘털 붙잡기'와의 싸움이라고 봤다. 그가 주기적으로 쓰던 일기장 속 체크리스트에도 멘털 관리법이 담겨 있다.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로 나뉜 체크리스트는 '스타트업으로 시간을 채우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가 제공하려는 가치와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 명확하다' 같은 질문들로 채워졌다. 그는 "멘털 점수가 바닥일 때도 여러 차례 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때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만큼 사소한 일도 많고, 또 인생이 새옹지마라는 걸 깨닫는다"고 했다.

그만큼 행복한 일도 더러 있었다. 서비스 이용자들의 피드백이 이메일과 편지로 종종 온다고 했다. 윤 대표는 "어느날 청각장애를 가진 고3 학생과 부모님이 사무실에 찾아온 적이 있는데,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고 말했다.

소보로는 이제 보조공학 분야에서 '다작'을 노리는 회사로 발돋움하는 게 목표다.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시각장애, 발달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돕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배리어 프리'를 실현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론 비장애인에도 도움이 된다면 일석이조다. 윤 대표는 "청각장애에 적용되는 자막 분야를 잘 다진 후 차차 다른 장애로 분야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