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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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국가부도 위기에 '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정크(투기)등급으로 떨어졌던 그리스가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투자적격등급을 받았다. 재정 적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정부 정책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S&P는 그리스에 대한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 'BB+'에서 'BBB-'로 상향 조정했다. 이로써 그리스 국채는 정크(투기등급) 채권에서 투자적격 등급으로 인정받게 됐다. S&P는 그리스 신용등급에 대한 전망으로 '안정적'을 제시했다.

S&P는 그리스의 국가부채와 재정 개선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S&P는 "2009년 부채위기 이후 경제 및 재정적 불균형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면서 "경제 구조 개혁이 올해부터 2026년까지 탄탄한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 국가부채의 지속적인 감소를 지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P는 2010년 그리스가 재정위기를 겪을 당시 글로벌 신용평가사 중 가장 먼저 신용등급을 강등한 곳이다.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인 'BB+'로 내린 뒤 '잠재적 디폴트(SD)'까지 하향 조정한 바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그리스는 재정난을 감당하지 못해 2010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총 3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았다. 총 2900억유로의 구제금융과 고강도 긴축 조치 끝에 2018년 8월 구제금융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으로 남아있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유럽 안정화 기금(ESM)은 성명을 통해 "(이번 등급 상향은) 그리스의 위대한 성과이자 게임체인저"라고 평했다. ESM은 "그리스는 강력하고 안정적인 투자 등급의 국가라는 투자자 신뢰를 유지할 것"이라며 "그리스 정부가 경제 개혁 모멘텀을 유지하고 재정 정책을 신중하게 지켜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올해 연 2.3%에 이어 내년에는 3%로 추산된다. 유로존 평균값의 2배에 육박한다. S&P는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감소할 경우 신용등급이 한 차례 더 상향될 여지가 있다"면서도 "다만 기초 재정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정치적 압력에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2차 총선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신민당의 재집권이 이번 평가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스 경제 구조 개혁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자국 경기 부양을 우선 과제로 내걸고 규제철폐와 감세, 민영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큰 정부와 방만 지출로 붕괴한 그리스의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리스 정부는 GDP 대비 부채비율을 2020년 206%에서 2027년 140% 밑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S&P는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올해 말까지 146%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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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가 선제적으로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면서 무디스, 피치 레이팅스 등 다른 신용평가사도 그리스에 대한 평가를 낙관적으로 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앞서 지난달 DBRS모닝스타가 그리스의 장기 국채 등급을 트리플B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DBRS모닝스타는 S&P, 무디스, 피치 등 이른바 3대 신용평가사에 비해 위상은 낮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이 이 회사 등급을 인정하기 때문에 유럽 내 영향력은 높다.

피치레이팅스는 오는 12월 1일 그리스 신용등급을 재평가할 예정이다. 피치는 지난 1월 그리스 신용등급을 투자적격등급 직전인 'BB+'까지 올린 바 있다. S&P를 비롯해 총 2개 신용평가사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으로 평가하면 그리스 국채는 공식적으로 투자적격 채권 지수에 편입된다. 이 경우 최소 수 조달러가량의 글로벌 펀드 자금이 유입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