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연방 의회 총선이 실시된 22일(현지시간) 베른시의 한 남성이 투표지를 넣고 있다.   / AFP연합뉴스
스위스 연방 의회 총선이 실시된 22일(현지시간) 베른시의 한 남성이 투표지를 넣고 있다. / AFP연합뉴스
스위스 총선에서 우익 성향 집권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의석을 휩쓸었다. 아프리카·중동 난민의 대규모 유럽행 러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등 무력분쟁이 잇따른 데 따른 사회 분위기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스위스 공영 SRF 방송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연방 국민의회(하원) 총선거에서 다수당인 국민당이 28.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연방 하원의 의석 총 200석 가운데 62석을 차지했다. 득표율이 3%포인트 상승해 의석이 지금보다 9석 늘어난다. 반면 2019년 총선에서 녹색 바람을 일으킨 녹색당(GPS)과 녹색자유당(GLP)은 의석이 5석과 6석씩 각각 줄어들었다. 국민당에 이어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 18%, 중도당(CP) 14.6%, 급진자유당(FDP) 14.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제2당인 사회민주당은 1.2% 포인트, 중도당은 0.8% 포인트씩 득표율이 올랐다.

우익 성향의 집권당이 약진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자 불법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밀려들면서 사회 불안, 건강보험 비용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한 탓으로 분석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충돌 역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현지 여론조사 기관 소토모의 마이클 헤르만 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4년 전에는 사람들이 좀 더 이상주의적이고 진보적이었기 때문에 녹색당이 선전했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안보에 대해 더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당은 선거 캠페인 홍보물에 피 묻은 칼, 두건을 쓴 범죄자, 겁에 질린 여성들, 멍든 얼굴의 함께 '이것이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냐'는 문구를 넣는 등 외국인 혐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국민당의 지지세는 크게 확대됐다. 마르코 키에사 국민당 대표는 승리를 자축하며 "우리는 불법 이민과 같은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리라는 명확한 위임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핀란드 등 유럽 각국에서 나타난 우익 정당의 득세가 스위스에서도 나타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수·가뭄 등의 자연재해에 이어 아프리카 곳곳의 내전과 정치 불안이 대량의 난민을 양산해 유럽 각국의 사회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국민연합당이 극우 핀란드인당을 포함한 3개 정당과 함께 이번 달 새로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스웨덴도 작년 9월 총선에서 집권 중도좌파연합이 우파연합에 패배했고, 극우 포퓰리즘 정당으로 평가받았던 스웨덴 민주당이 원내 제2당으로 떠올랐다.

상원에선 중도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배분하는 하원과 달리 주(州)별 최다 득표자가 당선된다. 총 46석의 상원 의석 가운데 중도당이 10석을 차지했다. 이어 급진자유당 9석, 사회민주당 5석 등의 순으로 많은 의석을 얻었다. 하원 다수당인 국민당은 4석에 그쳤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