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로부터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받은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3자 회동을 역제안했다. 대통령을 포함해야 만날 수 있다는 민주당과 이를 수용할 뜻이 없는 국민의힘이 설전을 주고받으면서 회동의 취지인 협치와 민생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제 회복, 민생 챙기기를 위해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여·야·정 3자 회동을 제안한다”며 “대통령이 민생과 정치 복원을 위해 나설 때라는 것이 민주당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날 “언제 어디서든 형식,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야당 대표와 만나겠다”는 김 대표의 제안을 민주당이 거부하고, 윤 대통령을 포함한 만남을 요구한 것이다.

이날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선 김 대표를 향한 조롱과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권한도 없는 ‘바지사장’과 의미 없는 시간 낭비를 하는 것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실질적 회담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김 대표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무공천 의사를 번복하고 김태우 후보를 지명한 것을 거론하며 “공천권 행사도 자기 뜻대로 못 하는 무기력한 대표와 만나 무슨 얘기를 논하고, 어떤 합의를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어려운 민생을 진정 생각한다면 복귀한 이 대표가 내일 당장이라도 만나자고 응할 것을 기대했지만 아쉽다”며 “이 대표와 민주당이 민생을 위해 형식, 조건 구애 없이 만나자는 국민의힘과 김 대표의 진정성을 받아들일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듯하다”고 지적했다.

여야 간 ‘회담 논쟁’은 1년 넘게 결론 없이 공회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해 8월 “당대표가 되면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해 민생의 잘못된 방향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민주당에서 비이재명계 박광온 원내대표가 당선되자 대통령실이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간 회동을 제안해 ‘이재명 패싱’ 논란이 불거지는 등 여야 간 감정싸움만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양당 대표가 각자의 정치적 손익계산을 바탕으로 만남을 제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표는 대통령과 단독회담으로 자신의 격을 대통령급으로 만들려 하고, 김 대표는 단독회담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둘 다 헛된 망상은 하지 마시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