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고기를 비계 약간과 함께 굽는다. 갓 뜯은 끈적끈끈이버섯과 목이버섯도 추가한다. 구운 어수리 씨앗으로 향미를 더하고 직접 훈연한 바닷소금으로 살짝 간한다. 늦게 난 어수리 싹 몇 개를 곁들여 먹으니 마음도 뱃속도 모두 든든해진다."

낯선 식재료들이 눈에 띄지만, 군침이 도는 이 음식은 저자의 2020년 11월 28일 식단이다. <야생의 식탁>은 스코틀랜드 약초 연구가인 모 와일드가 1년 동안 집 근처 자연에서 구한 재료만으로 생활한 기록을 모은 에세이다. 계절마다 제철 요리로 소박한 식탁을 꾸렸는데, 궁핍과 고난을 각오하며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오히려 풍요로움을 선사했다고 주장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야생에 뛰어든 이유는 지구와 인류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책은 기후 위기가 가시화됐고, 자극적인 조미료로 점철된 음식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자연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만이 이를 치유할 방법"이라고 생각한 저자는 스코틀랜드 중부의 숲과 바다로 향한다.

첫 시작은 두툼한 연어였는데, 버터나 기름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양톱풀 잎을 깔고 구웠다. 야생 사과를 발효해 식초를, 흑겨자 씨앗으로 겨자를 만들었다. 그렇게 봄의 푸성귀 향에 취하고 가을의 풍족함에 감사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배고픔을 못 이겨 피시앤칩스 가게로 달려갔지만, 가게가 문을 닫은 덕에 자연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야생에서 구하기 어려운 당분과 지방을 섭취하기 위해선 이웃의 도움을 빌려야 했다. 가을에 채집한 각종 씨앗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었는데, 저자는 여기서도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먹으라는 자연의 교훈"을 찾는다.

2021년 겨울에 마지막 식사가 끝났다. 당초 비만이었던 저자의 체중은 31㎏ 줄었고, 옷 치수도 25년 전으로 돌아갔다. 회춘한 건 신체뿐만이 아니었다. 저자는 "나는 새로운 사람, 아니 새로워진 사람이 됐다고 느낀다.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더 젊고 가벼워진 기분이다"고 했다.
<야생의 식탁>(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부키)
<야생의 식탁>(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부키)
저자는 살이 빠졌을지 몰라도, 글을 읽는 독자는 다소 '언짢은 배부름'을 느낄 수도 있겠다. 책 곳곳에서 저자의 정치관을 독자한테 주입한다. 자연 친화적인 삶에 대한 강조뿐만 아니라 "평등을 실천하고 소비를 줄이며 더 단순한 삶을 살고 물질보다 정신을 추구"하라는 장황한 주문을 한다.

선진국 국민의 배부른 소리라는 느낌마저 준다. 그는 지구의 78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일이 어려운 일임을 인정하면서도 대량생산을 위한 농업과 축산업 시설에는 반대한다. 심지어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 복지 때문이란다. "자연에서는 누구도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식의 자연만능주의적 설명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상을 남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