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옴 전시관 찾은 尹 >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과 함께 23일(현지시간) 리야드의 네옴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리야드=김범준 기자
< 네옴 전시관 찾은 尹 >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과 함께 23일(현지시간) 리야드의 네옴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리야드=김범준 기자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 국빈 방문을 계기로 44개 항에 걸친 공동성명을 24일 채택했다. 공동성명에는 사우디가 추진하는 수백조원 규모의 네옴시티, 키디야 등 ‘기가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의 참여는 물론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협력 확대 등이 명시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팔 분쟁), 북한 등 국제 정세에 대한 언급도 이례적으로 포함됐다. 중동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한 차원 높이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 현안까지 이례적 언급

윤 대통령과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채택한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이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상 간 공동성명 채택은 1980년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이후 43년 만이다.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정상급 교류가 있었지만 공동성명을 채택한 적은 없었다.

공동성명은 총 44개 항으로 교역·산업, 건설·인프라, 국방·방산·대테러, 에너지·기후변화, 문화·관광, 국제·역내 평화 등을 망라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팔 분쟁 등 중동 지역 현안까지 포함한 것은 사우디로선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국에 대한 사우디 측의 신뢰를 보여주고,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네옴시티를 비롯해 키디야, 홍해 개발, 로신, 디리야 등 사우디가 추진하는 프로젝트 및 이에 연관된 인프라 사업 성공을 위해 협력하기로 한 점이 눈에 띈다. 교통, 해수 담수화 등 인프라 분야 협력은 물론 네옴 등 대규모 사업에서 금융 협력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현대자동차와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공동 투자하는 자동차 공장 설립, HD한국조선해양과 아람코가 건설 중인 조선소 등을 언급하면서 제조업 분야 투자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과 사우디가 속한 걸프협력회의(GCC)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조속한 타결도 협력 대상에 포함됐다.

사우디는 “한국의 원유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이자 원유 수출국이 될 것”이라며 한국에 대한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 의지를 천명했다. 한국이 제안한 ‘무탄소 연합’(탄소중립 이행 수단을 원전·수소 등으로 확대)에도 환영 의사를 밝혔다.

중동과 한반도 등 역내 정세와 관련된 입장도 공동성명에 명시했다. 이·팔 분쟁과 관련, 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국제사회 차원의 협력을 강조했다. 북한이 핵·탄도 프로그램 및 무기 이전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것을 규탄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사우디 “무기 공동 생산하자”

윤 대통령의 사우디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방산 분야 협력도 구체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리야드 영빈관에서 칼리드 빈 살만 사우디 국방장관과 압둘라 빈 반다르 국가방위부 장관을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칼리드 빈 살만 장관은 “결실 단계에 접어든 한·사우디 방산 협력 성과는 양국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과 차세대 방산 협력을 희망한다”며 기술 협력과 공동 생산까지 함께하는 포괄적인 협력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의 국방개혁 성공과 국방력 강화에 한국이 일조하기를 희망한다”며 “군사교육, 연합훈련, 부대방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폭과 깊이를 심화시키자”고 화답했다. 방산업계에서는 글로벌 무기시장 ‘큰손’으로 통하는 사우디와의 방산 협력은 한국 방위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사우디와는 이미 지대공 요격미사일 체계(천궁-2)와 화력무기 등 대규모 수출 계약을 앞두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 리야드 한 호텔에서 순방에 동행한 기업인들과 만찬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은 ‘원팀’이니 어렵고 불합리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달라”고 말했다.

만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등 180여 명의 기업인이 참석했다.

리야드=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