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과 국회는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 시민이 24일 서울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을 걸어가고 있다. /최혁 기자
금융감독당국과 국회는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 시민이 24일 서울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을 걸어가고 있다. /최혁 기자
올해 연달아 터진 주가조작 사건이 과거와 다른 점은 별다른 호재 없이 주가가 장기간 야금야금 올랐다는 것이다. 과거 주가조작 세력들은 바이오, 기술주 등을 매집한 다음 호재성 재료를 퍼뜨린 뒤 주가를 띄웠다. 올해 주가조작 대상 종목은 호재도 없이 1~2년간 상승을 거듭해 10배씩 오른 경우가 많았다.

극심한 작전주 투자자 손실

올해 4월 발생한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 관련주가 대표적이다. 2020년 4월 말 9000원대이던 대성홀딩스 주가는 올해 3월 13만9000원까지 15배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가스도 7만원에서 50만원으로 7배 넘게 상승했다. 2022년 1월 초 9만원에 거래되던 삼천리는 올해 4월 52만4000원까지 6배 가까이 뛰었다.

검찰이 시세조종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영풍제지도 비슷한 유형이다. 지난 18일 하한가를 기록하기 전까지 1년간 17배에 달하는 상승률을 나타냈다.

상승 폭이 큰 만큼 개인투자자 피해도 막대했다. 이들 종목을 포함해 올 들어 주가조작이 적발된 14개 종목 대부분은 주가조작 전으로 시세가 돌아왔다.

대성홀딩스는 24일 1만340원에 마감했다. 고점 대비 92% 폭락했다. 서울가스도 이날 6만1700원에 마감해 8분의 1토막 났다. 거래가 정지된 영풍제지를 제외하고 뒤늦게 투자한 개인들은 최대 90%대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자산운용사는 올해 초 유틸리티 담당 애널리스트의 추천으로 삼천리에 대해 공매도를 검토했다. 동종 기업의 5배가 넘는 가치에 거래돼 과도하게 고평가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매도를 하지 못했다. 정부가 2020년 3월 코로나19를 계기로 전면 금지했던 공매도를 2021년 5월 코스피200·코스닥150 지수 구성 종목에 한해 부분 재개했기 때문이다. 삼천리는 시가총액이 작아 코스피200에 포함되지 않았다. 삼천리를 포함해 올해 주가조작이 적발된 14개 종목 가운데 11개는 공매도 불가능 종목이다.

신용거래만 허용돼 조작 더 쉬워져

전문가들은 주가의 이상 과열을 제한하는 공매도 기능은 막으면서 반대 기능을 하는 신용거래만 허용해 주가조작이 한층 용이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분석한다. 세력들은 4월 라덕연 사태 관련 8개 종목에 대해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통한 레버리지로 시세를 끌어올렸다. 이달 주가조작이 밝혀진 영풍제지는 초단기 대출이자 최대 5배 레버리지가 가능한 미수거래를 이용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세력들은 공매도 기능이 부재한 점을 이용해 신용거래를 동원해 작전을 펼쳤다”며 “재료 없이도 주가를 무한정 끌어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매도가 허용됐더라도 주가조작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대주주 지분이 높고 유통물량이 적은 종목은 대차물량을 구하지 못해 공매도가 허용되더라도 시세 부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한 펀드매니저는 “공매도가 들어올 수 있다는 심적 부담이 있으면 세력들이 마음 놓고 작전을 펼치기 어렵다”고 했다.

올 들어 잇단 주가조작 사태로 공매도 전면 재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커서다. 최근 외국계 기관인 BNP파리바와 HSBC가 총 560억원 규모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개인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처벌 수준을 강력하게 높여 불법 공매도를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공매도를 전면 재개해 주가의 이상 과열을 제한하는 기능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