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마지막 70일, 목숨 걸고 그린 74점의 걸작 '오르세 특별전' [지금, 파리 전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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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박물관 - <오베르와 반 고흐, 그의 마지막 순간>
고흐가 죽기 전 머문 오베르 조명한 첫 전시
밤낮으로 그림만 그렸던 고흐의 '마지막 불꽃'
풍경화·인물화부터 에칭·드로잉까지 볼 수 있어
고흐가 죽기 전 머문 오베르 조명한 첫 전시
밤낮으로 그림만 그렸던 고흐의 '마지막 불꽃'
풍경화·인물화부터 에칭·드로잉까지 볼 수 있어
빈센트 반 고흐란 이름은 미술 전시에선 '흥행 보장수표'다. 언제, 어디서 전시를 열어도 항상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흐 전시는 더 특별하다. 고흐 작품이 적잖이 많은 파리에서조차 '이번 전시는 꼭 봐야 한다'며 입소문이 났다. 평일 낮에도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890년 5월 고흐가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나와 7월 밀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딱 70일. 전시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은 '오베르와 반 고흐, 그의 마지막 순간'. 파리 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와즈를 배경으로 고흐의 마지막 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삶을 짓누르는 우울증, 그 속에서도 두 달여간 혼신을 다해 그렸던 74점의 그림. 고흐는 그 기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고흐는 오베르에 도착하자마자 이 그림을 우울증 전담 의사인 폴 가셰에게 갖고 갔다. 초상화 옆에는 고흐가 가셰가 보였던 반응을 적어둔 글이 적혀있다. "가셰는 이 초상화에 완전히 열광하더군. 가능하다면, 그리고 내가 원한다면 자신의 초상화도 그려달라고 했어." 그 때부터 가셰는 고흐의 마지막 두 달을 함께하는 진정한 동료가 됐다. 고흐는 가셰를 자신의 '도플갱어'로 여겼다. 진료가 없는 날에도 수시로 만나서 가셰와 그림에 대해 얘기했다. 고흐의 초상화 옆에 그가 그려준 '가셰의 초상화'(1890)가 나란히 걸린 이유다. 입구 옆에 있는 작은 전시장에는 에칭 기법으로 완성한 가셰의 초상화도 만나볼 수 있다. 가셰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고흐에게 그림에 전념하라고 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오후엔 작업실에서 그림을 수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일상이었다. 고흐는 다른 예술가들과 만나는 것도 꺼리고, 그림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피했다. 널찍한 전시장에 걸려있는 오베르의 풍경화들은 그렇게 완성됐다. 강가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 넓게 펼쳐진 들판과 나무, 꼬불꼬불한 골목길 사이로 난 집들…. 고흐는 특유의 거칠지만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오베르의 풍경을 그려냈다.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오베르에 얼마나 매료됐는지를 알 수 있다.
"오베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야. 정말 아름다워서 일하지 않는 것보다 일하는 게 훨씬 낫다니까."
"글쎄, 난 내 작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어. 내 이성의 반은 작품에 머물러있지."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열린다.
파리=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890년 5월 고흐가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나와 7월 밀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딱 70일. 전시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은 '오베르와 반 고흐, 그의 마지막 순간'. 파리 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와즈를 배경으로 고흐의 마지막 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삶을 짓누르는 우울증, 그 속에서도 두 달여간 혼신을 다해 그렸던 74점의 그림. 고흐는 그 기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낮에도, 밤에도 오직 '그림'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고흐의 자화상에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묘한 청록색 배경과 살아있는 듯한 형형한 눈빛. 고흐가 오베르로 가기 전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35점의 자화상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고흐는 오베르에 도착하자마자 이 그림을 우울증 전담 의사인 폴 가셰에게 갖고 갔다. 초상화 옆에는 고흐가 가셰가 보였던 반응을 적어둔 글이 적혀있다. "가셰는 이 초상화에 완전히 열광하더군. 가능하다면, 그리고 내가 원한다면 자신의 초상화도 그려달라고 했어." 그 때부터 가셰는 고흐의 마지막 두 달을 함께하는 진정한 동료가 됐다. 고흐는 가셰를 자신의 '도플갱어'로 여겼다. 진료가 없는 날에도 수시로 만나서 가셰와 그림에 대해 얘기했다. 고흐의 초상화 옆에 그가 그려준 '가셰의 초상화'(1890)가 나란히 걸린 이유다. 입구 옆에 있는 작은 전시장에는 에칭 기법으로 완성한 가셰의 초상화도 만나볼 수 있다. 가셰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고흐에게 그림에 전념하라고 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오후엔 작업실에서 그림을 수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일상이었다. 고흐는 다른 예술가들과 만나는 것도 꺼리고, 그림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피했다. 널찍한 전시장에 걸려있는 오베르의 풍경화들은 그렇게 완성됐다. 강가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 넓게 펼쳐진 들판과 나무, 꼬불꼬불한 골목길 사이로 난 집들…. 고흐는 특유의 거칠지만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오베르의 풍경을 그려냈다.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오베르에 얼마나 매료됐는지를 알 수 있다.
"오베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야. 정말 아름다워서 일하지 않는 것보다 일하는 게 훨씬 낫다니까."
◆"난 작품에 목숨을 걸고 있어"
열정에 불타올랐던 고흐에게 주변 사람들은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셰와 그의 딸인 마거리트, 고흐가 묵었던 여관 주인의 딸, 신원불명의 여성들 초상화까지. 그 다음 전시장에는 그가 오베르에서 머물며 그린 여러 점의 인물화가 걸려있다. 그는 사람을 그리는 것을 "나를 가장 깊은 곳까지 감동시키고, 무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동감 있는 색채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까지 캔버스에 그대로 담는 것, 고흐는 그게 '현대 초상화'라고 여겼다. 이 시기 고흐는 '더블 스퀘어'라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도 13점 남겼다. 두 개의 정사각형을 가로로 합쳐놓은 듯한 긴 풍경화다. 일반적인 캔버스 크기가 아니라 고흐가 다양한 형식의 탐구를 위해 의도적으로 고른 양식이란 점에서 중요한 작품들이다. 이 중 11점이 이 전시를 위해 모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안 돼 고흐는 그림 속 밀밭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눴다. 그리고 이틀 후, 동생 테오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전시장 벽 한켠에 적힌 그가 테오에게 미처 보내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그야말로 그림에 살고, 그림에 죽는 삶이었다."글쎄, 난 내 작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어. 내 이성의 반은 작품에 머물러있지."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열린다.
파리=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