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리의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 로댕의 작품들. /이선아 기자
곰리의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 로댕의 작품들. /이선아 기자
근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는 누구일까. 십중팔구는 '오귀스트 로댕'을 꼽는다. '생각하는 사람'(1880) 등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까지 조각하면서 '신이 내린 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대표 조각가는 누구일까.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영국 출신 안토니 곰리를 떠올릴 것이다. 사각형의 큐브와 단순한 선으로 사람의 몸을 추상화한 작품이 그의 '시그니처'다.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들. /이선아 기자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들. /이선아 기자
시대를 대표하는 두 조각가가 한 자리에서 만났다. 프랑스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안토니 곰리: 크리티컬 매스'다.

전시의 구성은 독특하다. 우선 티켓을 끊으면 미술관 본관에 들어서기 전 별도 전시장을 거쳐야 한다. 그 안에 펼쳐진 광경은 기이하다. 실물 크기의 사람 조각상이 공중에 매달려있고, 이리저리 서로 뒤엉켜 있다.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들. /이선아 기자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들. /이선아 기자
벽에 머리를 처박고 있거나, 쪼그린 채 고개를 숙여 뒤를 보는 이상한 자세의 조각상들도 있다.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이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조각상들은 그 어떤 고유성도 없는, 익명의 군중처럼 느껴진다.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들. /이선아 기자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들. /이선아 기자
본관으로 향하는 길에도 곰리의 '검은 인간'들이 이어진다. 본관 앞 중정에 여러 개의 조각상들이 쪼그려 앉아있다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곰리가 로댕을 만나러 가는 관람객을 안내하는 듯하다.
본관 앞 중정에 놓인 곰리의 작품들. /이선아 기자
본관 앞 중정에 놓인 곰리의 작품들. /이선아 기자
본관 안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두 예술가의 만남이 펼쳐진다.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만들어진 로댕의 인물 조각상들이 곰리의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가하면, 진열장에 두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있기도 하다.

근육과 핏줄 하나하나까지 살아있는 로댕의 작품, 가장 단순한 요소인 선과 면으로 사람의 몸을 조각한 곰리의 작품이 구분 없이 뒤섞여있는 모습은 묘하다.
로댕 작품 사이에 진열돼있는 곰리의 작품(밑줄 맨 오른쪽). /이선아 기자
로댕 작품 사이에 진열돼있는 곰리의 작품(밑줄 맨 오른쪽). /이선아 기자
약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두 예술가를 잇는 연결고리가 여기에 있다.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둘 다 '신체의 힘'을 탐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체는 시대와 공명한다. 100년 전 로댕은 각자만의 고유성과 디테일로, 곰리는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는 익명성으로 인간을 표현했다.

곰리는 전시 전문을 통해 그 창조성의 공을 로댕에게 돌린다. "로댕은 고대와 현대의 재료, 방법을 결합해 조각을 해방시켰다. (…) 나도 작품을 통해 조각예술에서 신체의 힘을 되살리고자 했다."
로댕 작품들 사이에 전시된 곰리 작품. /이선아 기자
로댕 작품들 사이에 전시된 곰리 작품. /이선아 기자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파리=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