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짝지근해'도 선방…올초부터 '밀수' 등 코미디 색채 영화 대세
"팍팍한 삶에 웃음 주는 작품 선호…집·극장용 영화 경계도 흐려져"
'30일' 예상 밖 흥행…요즘 관객들, 대작보다 팝콘 무비 본다
올해 들어 블록버스터 한국 영화가 본전도 못 건진 채 퇴장하는 반면 코미디 영화는 '남는 장사'를 하는 사례가 속속 늘고 있다.

최근에는 별다른 고민이나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기는 이른바 '팝콘 무비'가 극장가의 대세가 됐다는 게 영화계 시각이다.

25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강하늘·정소민이 주연하고 남대중 감독이 연출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30일'은 손익분기점인 160만명을 넘겨 170만명을 향해 가는 중이다.

이 영화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 '1947 보스톤', '거미집' 등 추석 극장가를 겨냥한 3편이 한꺼번에 쏟아진 이후인 이달 3일 개봉해 흥행에 불리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앞선 세 작품이 스타 배우를 앞세우고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들이라는 점도 이런 예상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30일'만이 유일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판타지 영화 '천박사'가 가장 많은 관객(190만여 명)을 모으기는 했지만, 손익분기점인 240만명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예상 밖 흥행…요즘 관객들, 대작보다 팝콘 무비 본다
이한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달짝지근해: 7510'(이하 '달짝지근해') 역시 '30일'과 비슷한 상황에서 개봉했지만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달짝지근해'는 여름 성수기 끝물인 지난 8월 15일 극장에 걸렸다.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대작이 개봉한 이후였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와 정우성이 연출·주연한 '보호자'와도 한날 개봉해 '달짝지근해'가 흥행하리라고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몇 주간 박스오피스 2∼4위를 꾸준히 지키며 138만여 명을 동원했다.

200억원 이상의 자본이 들어간 '더 문', '비공식작전'보다 더 많은 관객 수다.

손익분기점(165만명)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최근 IPTV 서비스를 시작해 제작비를 거둬들이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 영화 등 팝콘 무비가 예상 밖 선전을 거두고 블록버스터나 누아르 등 무거운 영화들이 흥행에 참패하는 흐름은 올해 초부터 이어져 왔다.

'교섭'(172만여 명), '대외비'(75만여 명), '유령'(66만여 명) 등은 쓴맛을 봤고 '범죄도시 3'(1천68만여 명), '밀수'(514만여 명) 등 코미디 색채가 강한 작품은 흥행했다.
'30일' 예상 밖 흥행…요즘 관객들, 대작보다 팝콘 무비 본다
영화계에서는 관객들의 성향이 변화하면서 작품 흥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안 좋은 뉴스만 나오는 사회 분위기가 코미디 영화 선호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젊은 관객들은 영화 티켓값으로 1만5천원을 내고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집에서도 볼 수 있는 코미디를 왜 극장에서 보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지금 관객에겐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게 잘 없다"면서 "집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으로 보는 영화와 극장용 영화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역시 "과거 기준으로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는 '1947 보스톤'이나 '비공식작전' 같은 영화들이지만, 요즘 관객들은 아무런 사유 없이 2시간 동안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부자들' 등 사회 고발성 영화가 2015년까지 유행한 것처럼 지금은 코미디 영화가 관객들에게 통하는 장르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이 다양한 영화 제작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는 "특정 장르가 잘 되면 비슷한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일은 항상 반복돼왔다"며 "결국엔 관객들도 질려서 이런 영화를 안 찾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에 관객 수요에 알맞은 선에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