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 김혜인 씨가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창비 제공
이태원 참사 유가족 김혜인 씨가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창비 제공
"저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의현이 누나 김혜인입니다. 누나로서 의현이가 어떤 동생이었고,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이를 기억해야 하니까요."

이태원 참사로 동생을 잃은 김혜인 씨는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우린 지금 이태원이야>(창비)에 구술자로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출간된 이번 책은 사건 당일과 그날 이후의 증언을 수록한 생존자·유가족 인터뷰집이다. 잠시 눈물을 삼킨 김 씨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와 정부는 2022년 10월 29일에 없었다"며 힘주어 말했다.
<우린 지금 이태원이야>(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348쪽, 1만8000원)
<우린 지금 이태원이야>(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348쪽, 1만8000원)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려는 취지로 결성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썼다. 시민단체 활동가, 변호사, 작가 등 13명의 작가기록단이 9달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엮었다. 집필에 참여한 유해정 작가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이 현실과 마주하고, 사건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발버둥 친 시간을 기록했다"며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바람을 담았다"고 했다.

진술에 참여한 이들은 형제자매부터 친구와 애인, 이태원 주민과 노동자까지 다양하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희생자들과 비슷한 또래인 '2030 세대'라는 점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부모님을 위해 정작 본인들의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꾹 참았던 형제자매들이 많다"며 "어쩌면 부모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젊은이들의 아픔을 다룬 책"이라고 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창비 제공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창비 제공
책은 1년이 다된 지금까지도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진 공직자가 단 한명도 없다"고 지적한다. "유가족이 설치한 시민분향소를 위협하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등 사회 안전의 부재를 개인의 불행이자 잘못으로 전가했다"고 주장한다. 이 운영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국가에서 참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고 했다.

'왜 놀러 간 이들의 죽음에 국가가 나서야 하느냐'는 사회적인 인식도 상처로 다가왔다. 김혜인 씨는 "(이태원에) '왜 갔느냐'가 아니라 '왜 못 돌아왔는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사고가 발생했으면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애꿎은 핼러윈 축제를 없애자는 이야기만 나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의 사망자는 159명, 이 중에는 14개국 출신 26명의 외국인 사망자도 있다. 향후 작가기록단은 이번 책에 담지 못한 이들의 사연도 추가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해정 작가는 "이 책에 담은 이야기 보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며 "외국인이나 부모 등 더 다양한 유가족·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유가족 김혜인 씨, 유해정 작가, 이현경 작가. /창비 제공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앞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유가족 김혜인 씨, 유해정 작가, 이현경 작가. /창비 제공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