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본햄스 전시장에서 김성희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선아 기자
영국 런던 본햄스 전시장에서 김성희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선아 기자
영국 런던의 '최고 부촌' 메이페어 뉴 본드 스트리트. 이곳을 걷다 보면 '본햄스'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면서 꽃과 식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입구가 나타난다. 정글 같은 통로를 지나자 르누아르 등 옛 거장부터 트레이시 에민 등 동시대 인기 작가들의 작품이 보인다.

전세계 22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경매사 본햄스의 전시장이다. 230년 전통의 본햄스가 이달 7~13일 런던의 중심에서 한국 작가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것도 영국 미술계의 최대 행사인 '프리즈 런던'이 열리는 기간에, VIP들에게만 문을 여는 '프라이빗 전시장'에서다. 본햄스에서 한국 작가의 전시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주인공은 혜명 김성희(60)다.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인 김 작가는 서울대미술관장, 서울대 미대 학장 등을 역임했지만, 본업은 '예술가'다. 혜명의 그의 호다.

본햄스 전시장에서 만난 그에게 소감을 묻자, 수줍은 미소와 함께 돌아온 말. "정말 꿈만 같은 일이죠. 동시에 한국 미술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요."
김성희 작가의 '별 난 이야기 1709'(2017). /김성희 작가 제공
김성희 작가의 '별 난 이야기 1709'(2017). /김성희 작가 제공
이번 전시는 우연히 이뤄졌다. 평소 김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던 영국인 컬렉터가 본햄스에 김 작가의 작품을 보여준 것. 아시아 미술에 관심이 있던 본햄스는 김 작가에게 작품 실물을 보내달라고 했다. 작품을 보내고 얼마 안 돼 본햄스에서 연락이 왔다. 모든 비용을 다 댈테니 전시를 열자고.

본햄스를 사로잡은 건 '별자리'였다. 김 작가는 장섬유로 만든 한지에 먹과 천연염료로 별을 만들고, 선을 그어 이들을 잇는다. 한지를 밤하늘 삼아 만들어진 별무리는 때로는 사람이 되고, 때로는 새와 나무가 된다.

"별자리 연작은 10여년 전 제가 다치면서 시작됐어요. 그 전엔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죠. 하루에 3시간도 못 잘 정도로요. 그러다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로 3개월간 병상에만 누워있게 되면서 깨닫게 됐어요. 인간의 욕망이 마치 별과 같다는 것이요.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별처럼 욕망은 덧없기도 하지만, 그걸 원동력 삼아 인간은 선(線)처럼 나아가잖아요."
김성희 작가의 '별 난 이야기 1702'(2017). /김성희 교수 제공
김성희 작가의 '별 난 이야기 1702'(2017). /김성희 교수 제공
김 작가는 현대인의 욕망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풀어냈다. 작품에 쓰이는 염료는 자연에서 채취한 열매와 나무껍질로 만든다. 한지도 일반 한지가 아니라, 전통적 기법으로 만든 한지를 쓴다. 김 작가는 "천연재료를 선택한 건 자연의 순환이란 제 철학과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엔 여기에 오색을 입힌 신작도 선보였다. "한 외국인 컬렉터가 그러더라고요. 이건 동양화가 아니라 현대 미술이라고. '동양화'라는 서구중심적인 시각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한국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런던=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