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나를 위한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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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나만의 詩를 써보라
그걸 붙잡고 살아낼 날도 있다
이소연 시인
그걸 붙잡고 살아낼 날도 있다
이소연 시인
중장년 청춘 문화공간에서 진행하는 강연이 있어 창원에 다녀왔다. 강연 담당자는 포스터 제작을 위해 강연 제목만 미리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 전화를 화장실에서 받았고 하필 화장실 벽에 붙은 문구가 일본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시게타의 문장이었다. “많이 넘어져 본 사람일수록 쉽게 일어선다. 넘어지지 않는 방법만을 배우면 결국에 일어서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음, 맞는 말이다. 근데 솔직히 안 넘어지고 싶다. 일어서는 방법을 몰라도 될 정도로 넘어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므로 상처를 안고도 씩씩하게 살아가게 하는 말이 필요해진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한 문장’을 붙잡고 겨우겨우 살아내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행사 담당자에게 ‘나를 위한 나만의 시’라는 제목을 지어 보냈다. 강연 막바지에는 자신을 위한 한 문장을 종이에 써보게 했다. 그리고 종이를 거둬 와 읽었다. 단 한 문장일 뿐이었지만 삶의 면면이 느껴졌다. 석 자 이름 옆에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런 별것 아닌 말이 한 줄기 빛처럼 내려앉기도 하는구나.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 자신이 쓴 시를 내보이며 이렇게 써도 시가 되는지 물었던 분의 문장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문장이 온전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을 보느라 늙어버렸다. 그러고도 못 본 것이 ‘나다!’” 박수가 터졌다. 어느새 폭삭 늙어버릴 만큼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도 어째서 자기 자신만은 볼 수 없었을까. 부모님 생각이 나서 나도 울컥했다.
강연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나를 위한 말을 두둑이 챙겨 창원에서 가까운 통영에도 들렀다. 통영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 기분 좋게 취해 걷는데 친구가 소리친다. “이 냄새야!” 금목서 얘기다. 골목을 지나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달큰한 냄새가 달라붙는다. 향이 만 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만리향이라는 나무 얘기를 아까 술자리에서도 한 것 같은데, 이제야 제대로 듣는다. “금목서가 어디 있는데?” 한참 두리번거려도 금목서를 찾을 수 없다. 나무 없이 향기만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나. “샤넬 향수가 금목서 향으로 만든 거래잖아.” 그런데 나는 왜 몰라? 만 리가 4000㎞인데 왜 서울까지 안 와? 말도 안 되는 떼를 써본다. 지금껏 금목서를 모르고 살았다는 게 신기하다.
금목서뿐인가. 통영에 와서 보니 다찌집도 꿀빵도 모르고 살았고 통영 누비도 모르고 살았다.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몰라도 되는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모르고 살 수가 없다. 꽃이 귀한 10월에 피는 금목서 향기를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 같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구경하고 내려와 세병관 입구 쪽에 있는 통제영 12공방에서 누비 작품을 여러 개 샀다. 작품 하나하나 보는 내내 감탄이 터져 나왔다. 임진왜란 때 갑옷이 부족해 천을 덧대고 바느질을 촘촘하게 해 몸을 보호하던 것에서 유래돼 지금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누비는 통영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누비질하면 섬유의 수명이 몇 배나 길어진다는 점원의 설명을 듣는데 낮에 앤솔로지 ‘싫음’에서 읽은 김윤리의 시 ‘삼켰다’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원래 이야기는/약점으로 만들어 내는 거다” 멋지다. 순간, 약점을 누벼 만들어낸 단단한 갑옷 같은 이야기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한 문장’을 붙잡고 겨우겨우 살아내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행사 담당자에게 ‘나를 위한 나만의 시’라는 제목을 지어 보냈다. 강연 막바지에는 자신을 위한 한 문장을 종이에 써보게 했다. 그리고 종이를 거둬 와 읽었다. 단 한 문장일 뿐이었지만 삶의 면면이 느껴졌다. 석 자 이름 옆에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런 별것 아닌 말이 한 줄기 빛처럼 내려앉기도 하는구나.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 자신이 쓴 시를 내보이며 이렇게 써도 시가 되는지 물었던 분의 문장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문장이 온전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을 보느라 늙어버렸다. 그러고도 못 본 것이 ‘나다!’” 박수가 터졌다. 어느새 폭삭 늙어버릴 만큼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도 어째서 자기 자신만은 볼 수 없었을까. 부모님 생각이 나서 나도 울컥했다.
강연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나를 위한 말을 두둑이 챙겨 창원에서 가까운 통영에도 들렀다. 통영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 기분 좋게 취해 걷는데 친구가 소리친다. “이 냄새야!” 금목서 얘기다. 골목을 지나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달큰한 냄새가 달라붙는다. 향이 만 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만리향이라는 나무 얘기를 아까 술자리에서도 한 것 같은데, 이제야 제대로 듣는다. “금목서가 어디 있는데?” 한참 두리번거려도 금목서를 찾을 수 없다. 나무 없이 향기만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나. “샤넬 향수가 금목서 향으로 만든 거래잖아.” 그런데 나는 왜 몰라? 만 리가 4000㎞인데 왜 서울까지 안 와? 말도 안 되는 떼를 써본다. 지금껏 금목서를 모르고 살았다는 게 신기하다.
금목서뿐인가. 통영에 와서 보니 다찌집도 꿀빵도 모르고 살았고 통영 누비도 모르고 살았다.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몰라도 되는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모르고 살 수가 없다. 꽃이 귀한 10월에 피는 금목서 향기를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 같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구경하고 내려와 세병관 입구 쪽에 있는 통제영 12공방에서 누비 작품을 여러 개 샀다. 작품 하나하나 보는 내내 감탄이 터져 나왔다. 임진왜란 때 갑옷이 부족해 천을 덧대고 바느질을 촘촘하게 해 몸을 보호하던 것에서 유래돼 지금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누비는 통영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누비질하면 섬유의 수명이 몇 배나 길어진다는 점원의 설명을 듣는데 낮에 앤솔로지 ‘싫음’에서 읽은 김윤리의 시 ‘삼켰다’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원래 이야기는/약점으로 만들어 내는 거다” 멋지다. 순간, 약점을 누벼 만들어낸 단단한 갑옷 같은 이야기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