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 250만 명 시대를 맞아 전국 일자리와 상권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중국동포(조선족)가 40% 이상 급감한 서울 대림동.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 250만 명 시대를 맞아 전국 일자리와 상권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중국동포(조선족)가 40% 이상 급감한 서울 대림동.
25일 국내 최대 중국동포(조선족) 밀집 거주지인 서울 지하철 7호선 대림역 11~12번 출구 앞 건물들에는 ‘상가 임대’ 팻말이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11번 출구 앞엔 분양 후 4년째 임차인을 찾지 못한 1층 상가가 있었고 대림역사거리 3층 건물은 통째로 1년 넘게 공실이었다. 일대에서 20년간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강희석 대표는 “중국동포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인데 이젠 임대료를 절반으로 낮춰도 임차인을 구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새 외국인 밀집 거주지로 떠오른 경기 시흥시 정왕동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을 내건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광식 기자
새 외국인 밀집 거주지로 떠오른 경기 시흥시 정왕동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을 내건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광식 기자

◆“궂은일 안 해”…5년 새 몸값 두 배

서울에서 중국동포가 사라지고 있다. 20~30대 젊은 중국동포는 높은 물가와 차별 때문에 한국행보다 중국 대도시를 선호한다. 서울에 남아 있던 중국동포는 물가고에 지방으로 떠나고 있다. 이날 법무부에 따르면 등록외국인 기준 서울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수는 2018년 9월 말 12만1245명에서 지난달 말 6만9672명으로 42.6% 줄었다. ‘조선족 1번지’로 통하는 대림동이 포함된 영등포구는 더 심각하다. 중국동포 수는 지난달 기준 1만5015명으로 5년 전인 2018년 9월(2만7222명)에 비해 44.9% 감소했다.

사회 전반에서 궂은일을 했던 이들이 사라지자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영업 인력난이 심각해진 게 대표적이다. 차이나타운조차 중국동포 종업원을 고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9년째 양꼬치집을 운영하는 임모씨(52)는 “180만원이던 중국동포 월급을 두 배 이상으로 올렸지만 잘 오지 않는다”며 “힘들다며 하루 이틀 만에 그만두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간병인과 가사도우미 등으로 일했던 중국동포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림동에서 10년 넘게 직업소개소를 운영해온 곽모씨는 “요즘엔 중국동포도 간병인 업무가 고되다고 기피한다”며 “일할 사람이 없으니 몸값도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고 했다. 가사도우미는 월 300만원 이상, 공동 간병인은 월 250만~300만원을 줘야 사람을 구할 수 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모두 월 180만~230만원 수준이었다.

직업소개소도 줄폐업하고 있다. 이날 찾은 직업소개소는 10여 곳 모두 상담원 책상이 절반 넘게 비어 있었다. 하루 방문자가 10명 정도에 그친다.

◆일손 부족·고령화에 자영업자들 신음

남아있는 중국동포는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 중국동포에 건설과 제조업 등 고된 업무를 맡기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는 얘기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동포 중 50세 이상은 51.8%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2년 35.5%에서 10년 새 16.3%포인트 올랐다. 60세 이상 비율도 같은 기간 6.0%에서 14.6%로 두 배 넘게 상승했다. 작년 말 기준 50대 이상 비중이 11.2%에 불과한 베트남인(등록 외국인 기준)과 비교하면 40.6%포인트 높다.

한국 거주 중국동포가 늙어가는 이유는 젊은 중국동포가 한국 이주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머무는 중국동포 대부분이 1990~2000년대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젊은 중국동포가 더 이상 ‘코리안드림’을 기대하고 한국에 오지 않는 데다 중국 대도시행을 택하는 이들이 많다. 중국동포 김세용 씨(67)는 “궂은일을 하며 무시당하느니 중국에 계속 살겠다는 20~30대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고령화는 산업 현장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설 현장이 대표적이다. 경기 시흥에서 건설 현장 인력소개소를 운영하는 서모 소장은 매일 아침 60세가 넘은 중국동포 구직자를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그는 “아무리 일용직이라도 60세가 넘으면 건설 현장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다”며 “업체에선 젊은 인력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인력은 충분하지 않다 보니 매일 고민”이라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