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우리, 그리고 담백한 용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서효인의 탐나는 책
최의택 에세이《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최의택 에세이《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의 용기를 위한 캠프〉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 생활을 하는 장애인 소녀 ‘밀라나’의 용기를 좇는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 살던 소녀는 2015년 러시아의 마리우폴 폭격으로 한쪽 다리를 어머니를 잃었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또다시 일어난 전쟁으로 둘은 난민이 되었고, 지금은 전쟁 난민이 된 둘은 알프스산맥에서 열린 여름캠프에 참여하게 된다. 알프스의 여름산에 오르는 캠프의 프로그램에, 밀라나는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의족이 못내 신경 쓰이는 눈치다.
현실 안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함을 모아놓은 듯한 밀라나지만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높은 경사의 오르막 앞에서 겁을 내는 모습은 그저 또래의 아이로 보일 뿐이다. 밀리나의 양육에 대해 고민하고 그 큰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 할머니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둘은 용기를 내어 알프스에 오른다. 첫날부터 눈물 바람이던 밀라나도 드디어 용기를 내어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내밀어 알프스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다다른다. 그리고 알프스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는다. 비극의 주인공 밀라나의 사연이 아닌, 보통의 어린이 밀리나의 용기가 빛을 발했다. 그 모습은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었던 수려하고 빛이 나는 알프스만큼 아니, 그보다 아름답고 벅찼다. 같은 시기에 최의택 소설가의 에세이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을 읽은 것은 마땅한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휠체어 장애 아동이었지만 어쩌면 가장 보통의 어린이였던 시절을 작가는 가장 빛나는 추억으로 갖고 있다. 장애의 비극은 신체의 상태와는 별도로, 사회의 편견과 주변의 강제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된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는 스토리를 인간 승리의 서사 혹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 그 어딘가에서 소비한다. 장편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SF작가이자 휠체어 장애인인 그의 이야기가 이에 마침맞은 ‘소재’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보기 좋게 그러한 소비 패턴을 배신하고서는 모른 체한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천진하게 되묻는다.
작가는 택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냄으로써 장애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소비하기를 멈추게 한다. 드러내면 드러나는 대로 볼 수밖에 없다. 소설가지만 한 번에 한 자모씩 문자를 입력해야 하는 다소 사이보그적인 글쓰기를 보고, 자신의 장애를 잘 인식하지 않던 어린이가 성장함에 따라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인식하는 장면을 본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가 극장에 간 모습을 본다. 작가인 그가 도서전 현장에 온 장면을 본다. 그의 현실을 보고 그의 꿈을 본다. 보다 보면 알게 된다. 그는 어떤 의미 부여를 할 것 없이 그저 존재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SF를 쓰는 최의택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밀리나가 그림을 그리고 친구를 사귀고 꿈을 키우듯이. 그러한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보통의 거의 모든 우리가, 빠짐없이 그러하듯이. 그 담백한 용기가 아름답고 벅차다.
현실 안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함을 모아놓은 듯한 밀라나지만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높은 경사의 오르막 앞에서 겁을 내는 모습은 그저 또래의 아이로 보일 뿐이다. 밀리나의 양육에 대해 고민하고 그 큰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 할머니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둘은 용기를 내어 알프스에 오른다. 첫날부터 눈물 바람이던 밀라나도 드디어 용기를 내어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내밀어 알프스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다다른다. 그리고 알프스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는다. 비극의 주인공 밀라나의 사연이 아닌, 보통의 어린이 밀리나의 용기가 빛을 발했다. 그 모습은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었던 수려하고 빛이 나는 알프스만큼 아니, 그보다 아름답고 벅찼다. 같은 시기에 최의택 소설가의 에세이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을 읽은 것은 마땅한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휠체어 장애 아동이었지만 어쩌면 가장 보통의 어린이였던 시절을 작가는 가장 빛나는 추억으로 갖고 있다. 장애의 비극은 신체의 상태와는 별도로, 사회의 편견과 주변의 강제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된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는 스토리를 인간 승리의 서사 혹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 그 어딘가에서 소비한다. 장편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SF작가이자 휠체어 장애인인 그의 이야기가 이에 마침맞은 ‘소재’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보기 좋게 그러한 소비 패턴을 배신하고서는 모른 체한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천진하게 되묻는다.
작가는 택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냄으로써 장애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소비하기를 멈추게 한다. 드러내면 드러나는 대로 볼 수밖에 없다. 소설가지만 한 번에 한 자모씩 문자를 입력해야 하는 다소 사이보그적인 글쓰기를 보고, 자신의 장애를 잘 인식하지 않던 어린이가 성장함에 따라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인식하는 장면을 본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가 극장에 간 모습을 본다. 작가인 그가 도서전 현장에 온 장면을 본다. 그의 현실을 보고 그의 꿈을 본다. 보다 보면 알게 된다. 그는 어떤 의미 부여를 할 것 없이 그저 존재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SF를 쓰는 최의택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밀리나가 그림을 그리고 친구를 사귀고 꿈을 키우듯이. 그러한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보통의 거의 모든 우리가, 빠짐없이 그러하듯이. 그 담백한 용기가 아름답고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