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루이지. 롯데콘서트홀 제공
파비오 루이지. 롯데콘서트홀 제공
"세계 최고의 악단을 이끈다는 건, 지휘자에게 크나큰 도전인 동시에 특권이기도 하죠. "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는 건 어떤 심정일까.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135년 전통의 로열콘세트르헤바우 오케스트라(RCO) 지휘를 맡은 파비오 루이지(64·사진)의 글에는 '건강한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다음달 RCO를 이끌고 내한하는 루이지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매우 기쁜 일"이라면서도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그와 RCO의 인연은 2005년 시작됐다. 당시 RCO가 처음 연주하는 프란츠 슈미트의 교향곡 4번을 그가 지휘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RCO는) 아름다운 소리와 우아한 프레이징, 정확한 테크닉까지 두루 갖춘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입니다. 음악을 대할 때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단원들의 표정은 다른 오케스트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죠."

RCO는 빌렘 멩겔베르크, 마리스 얀손스 같은 지휘 거장들을 배출한 네덜란드 명문 악단이다. 2008년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뽑은 세계 1위 악단이다. 평단은 RCO의 음색을 '벨벳같은 현악 파트, 황금같이 풍성한 금관 파트'라고 표현한다. 루이지는 이런 음색에 대해 "전통에 대한 존중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단원들 프로필. 롯데콘서트홀 제공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단원들 프로필. 롯데콘서트홀 제공
그의 말처럼 평단에선 RCO의 강점으로 '전통과 개성의 조화'를 꼽는다. RCO는 25개 국가에서 온 음악가들이 모인 다국적 악단인만큼 음악적 색채가 다채롭고, 정통 클래식부터 현대음악까지 소화하는 등 레퍼토리도 넓다. 개성있으면서도 전통을 놓치지 않는 분위기가 RCO만의 색채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루이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수석지휘자,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등 굵직한 이력을 쌓아온 명장이다. 지금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상임지휘자를 맡고있다. 그는 오페라와 교향곡 레퍼토리 모두에 강점을 보여왔으며 꼼꼼한 악보 분석과 음악적 디테일로 세련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정평 나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세계적인 오페라, 성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서며 시야가 확장됐고 더 넓은 음악 세계를 그리게 됐다고. 오페라와 주요 교향곡 레퍼토리를 탐구하고 싶었던 그에겐 피아니스트보다는 지휘자가 더 어울렸다.

이번 공연에서는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제2번(예핌 브론프만 협연),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을 들려준다. 모두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들이다. 루이지는 수백년전 작품이라도 무대에 오르는 순간 '현대의 음악'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무대 위의 음악은 항상 현대적입니다. 작품이 언제 쓰여졌는지와 관계없이 공연 중에 일어나는 창조적인 일들이 음악을 그렇게 만들어요. 물론 새 작곡가들에게 목소리를 실어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

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양인모 등 한국인 연주자들과도 손을 맞춘 바 있다. 그는 "한국 연주자들은 이탈리아인과 비슷한 성격과 본능을 지녔다"며 "이들과의 작업은 항상 성공적이었다"고 호평했다.

다음달 한국에서 펼쳐지는 세계 3대 오케스트라의 격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RCO는 관현악으로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품격이 뭔지,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전통을 따르는 것, 그러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 동시에 음악에 혼을 담는 것이 어떤 건 지 들려드릴 겁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