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하마스가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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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안전 미비엔 분노하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인 안보는 조롱
하마스의 스승인 北 감시 무력화
기만·반역의 군사합의는 폐기를
안보와 국방이 없는 국가에서는
인간이 아닌 벌레처럼 짓밟힐 뿐
이응준 시인·소설가
국가의 존재 이유인 안보는 조롱
하마스의 스승인 北 감시 무력화
기만·반역의 군사합의는 폐기를
안보와 국방이 없는 국가에서는
인간이 아닌 벌레처럼 짓밟힐 뿐
이응준 시인·소설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어렵다. 인간은 사랑과 운명의 산물이라서 그 삶과 죽음에 대한 해석에 신의 섭리를 소환할 정도로 난해하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쉽다. 국가가 인간의 필요와 의지의 산물이라서 그것이 왜 만들어졌으며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한국인들에게 다음 세 가지 각성(覺醒)을 요구한다.
첫째,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정답으로서, “국가는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게 살해, 강간, 약탈, 학대, 모멸, 차별 등을 당하지 않기 위해 건설한 인공물(人工物)이며 그 핵심은 군대(army)다”가 바로 그것이다. 삼성그룹이 웬만한 작은 국가보다 큰 자본력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가 못 되는 이유는 군대가 없어서다. 파룬궁이 어지간한 국가보다 사람 머릿수가 많지만 국가적 힘이 없는 것 또한 그래서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라는 첫 줄로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히틀러의 제3제국 독일인들에게만 당했던 게 아니다. 2000년간 전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인간곤충’ 대우를 받았다. 그러던 그들이 이스라엘, 즉 국가를 세우자 ‘일방적 재앙’에서 벗어났고 나약한 민족성이 강한 국민성으로 거듭났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국가를 세우려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4000만 명에 달하는 쿠르드족이 매번 열강들에게 ‘피의 농락’을 당하는 생지옥 속에서도 국가 건설의 희망 고문을 견디고 있는 까닭 역시 그 때문이다. 한데 요즘 한국인들은 길거리 개인 안전 미비에는 분노하면서, 국가 존재의 ‘최소이유’인 국방과 안보에는 망각과 조롱을 일삼는다.
둘째, “아날로그의 공격에 무너지는 디지털 시스템”이다. 하마스는 패러글라이더, 오토바이, 사륜구동자동차, 절삭기 같은 것들로 나타났고, 이스라엘군은 20시간 가까이 실종 상태로 붕괴됐다. 이스라엘인들은 폭탄이 아니라 대부분 대면 학살에 의해 사망했다. 하마스는 북한제 무기만 사용한 게 아니라 1980년대 아프리카의 반군들이 그랬듯 북한군이 스승이었다. 한국군과 한국 경찰 복장을 한 북한군들은 쟁반 위에 쏟아지는 개미떼처럼 서울 시내 주택가로 퍼져 스며들 것이다. 북한이 지난 남한 정권을 이용해 남한의 감시정찰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게 우연일까.
북핵만 문제가 아니다. 정규군으로서의 북한군은 무섭지 않지만, 비정규군처럼 행동하는 북한군은 무섭다. 원래 아날로그 자체가 디지털에 대한 비대칭 전력이고, 모더니티는 ‘무자비한 조잡함’ 앞에 속수무책이다. 문명은 야만을 이긴 게 아니다. 문명이 야만을 숨기고 유보시킨 것뿐이다. 야만은 언제든 튀어나와 문명을 유린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은 북한을 환경단체 대하듯 대했고 그 여파는 아직도 존속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협정을 맺은 나라들끼리는 평균적으로 2년 안에 전쟁이 일어났다. 기만과 반역의 ‘9·19 남북군사합의’는 즉각 폐기돼야 한다.
셋째, “내부 분열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극한 정치 분열과 나사 빠진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고무돼 이번 공격을 추진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손자병법은 망하는 군대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그것들 전부가 내부의 문제이지 외부의 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손자병법, 이 딱 6000자로 이뤄진 전쟁에 관한 성경은 적 앞의 내부 분열이 치르게 될 대가를 잘 설명해준다. 공화정치란 국내 문제 대립 속에서도 국방과 외교에서는 한마음이 되는 정치를 뜻한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는 시비가 무의미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원한지옥(怨恨地獄)’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세계 전체가 사실상 이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게 역사이고, 현실 세계다.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은 ‘반역’이라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고, 국민은 비극 앞에서 겸손해야 할 것이다. 조지 오웰은 말했다. 지식인은 절대 자신의 개소리를 반성하지 않고 계속 떠드는데, 단 하나 예외가 전쟁이 터졌을 때만 입을 다문다고. 멋 내며 투덜거리는 거야 뭐,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상한 질문은, 안보와 국방이 있는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아니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벌레처럼 짓밟히기 때문이다.
첫째,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정답으로서, “국가는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게 살해, 강간, 약탈, 학대, 모멸, 차별 등을 당하지 않기 위해 건설한 인공물(人工物)이며 그 핵심은 군대(army)다”가 바로 그것이다. 삼성그룹이 웬만한 작은 국가보다 큰 자본력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가 못 되는 이유는 군대가 없어서다. 파룬궁이 어지간한 국가보다 사람 머릿수가 많지만 국가적 힘이 없는 것 또한 그래서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라는 첫 줄로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히틀러의 제3제국 독일인들에게만 당했던 게 아니다. 2000년간 전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인간곤충’ 대우를 받았다. 그러던 그들이 이스라엘, 즉 국가를 세우자 ‘일방적 재앙’에서 벗어났고 나약한 민족성이 강한 국민성으로 거듭났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국가를 세우려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4000만 명에 달하는 쿠르드족이 매번 열강들에게 ‘피의 농락’을 당하는 생지옥 속에서도 국가 건설의 희망 고문을 견디고 있는 까닭 역시 그 때문이다. 한데 요즘 한국인들은 길거리 개인 안전 미비에는 분노하면서, 국가 존재의 ‘최소이유’인 국방과 안보에는 망각과 조롱을 일삼는다.
둘째, “아날로그의 공격에 무너지는 디지털 시스템”이다. 하마스는 패러글라이더, 오토바이, 사륜구동자동차, 절삭기 같은 것들로 나타났고, 이스라엘군은 20시간 가까이 실종 상태로 붕괴됐다. 이스라엘인들은 폭탄이 아니라 대부분 대면 학살에 의해 사망했다. 하마스는 북한제 무기만 사용한 게 아니라 1980년대 아프리카의 반군들이 그랬듯 북한군이 스승이었다. 한국군과 한국 경찰 복장을 한 북한군들은 쟁반 위에 쏟아지는 개미떼처럼 서울 시내 주택가로 퍼져 스며들 것이다. 북한이 지난 남한 정권을 이용해 남한의 감시정찰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게 우연일까.
북핵만 문제가 아니다. 정규군으로서의 북한군은 무섭지 않지만, 비정규군처럼 행동하는 북한군은 무섭다. 원래 아날로그 자체가 디지털에 대한 비대칭 전력이고, 모더니티는 ‘무자비한 조잡함’ 앞에 속수무책이다. 문명은 야만을 이긴 게 아니다. 문명이 야만을 숨기고 유보시킨 것뿐이다. 야만은 언제든 튀어나와 문명을 유린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은 북한을 환경단체 대하듯 대했고 그 여파는 아직도 존속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협정을 맺은 나라들끼리는 평균적으로 2년 안에 전쟁이 일어났다. 기만과 반역의 ‘9·19 남북군사합의’는 즉각 폐기돼야 한다.
셋째, “내부 분열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극한 정치 분열과 나사 빠진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고무돼 이번 공격을 추진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손자병법은 망하는 군대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그것들 전부가 내부의 문제이지 외부의 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손자병법, 이 딱 6000자로 이뤄진 전쟁에 관한 성경은 적 앞의 내부 분열이 치르게 될 대가를 잘 설명해준다. 공화정치란 국내 문제 대립 속에서도 국방과 외교에서는 한마음이 되는 정치를 뜻한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는 시비가 무의미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원한지옥(怨恨地獄)’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세계 전체가 사실상 이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게 역사이고, 현실 세계다.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은 ‘반역’이라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고, 국민은 비극 앞에서 겸손해야 할 것이다. 조지 오웰은 말했다. 지식인은 절대 자신의 개소리를 반성하지 않고 계속 떠드는데, 단 하나 예외가 전쟁이 터졌을 때만 입을 다문다고. 멋 내며 투덜거리는 거야 뭐,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상한 질문은, 안보와 국방이 있는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아니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벌레처럼 짓밟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