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좀 천천히 늙어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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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 동국대 총장
![[한경에세이] 좀 천천히 늙어 갔으면](https://img.hankyung.com/photo/202310/07.34447616.1.jpg)
직장은 세월 기우는 소리와 거리가 멀다. 중년이 돼도 우리는 격무 중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씨름하는 시간이 줄지 않는다. 생명의 물기가 조금씩 말라가는 건 왜 모를까. 자연을 멍하니 바라보는 ‘산멍’ ‘바다멍’ ‘불멍’이 그립다. 이번 주말엔 좀 자유로웠으면…. 중년 남자를 가을 속으로 방생해 보자. 때론 애상(哀傷)의 센티멘털리즘도 인생을 사랑하는 양식이다. 책갈피에 끼워둔 오랜 단풍잎을 꺼내 본다. 듣는 이 없는 가을 노래를 고조곤히 불러보리라.
마지막이란 말이 주는 쓸쓸함이여, 세상에 쓸쓸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으랴. “연년세세화상사(年年世世花相似) 세세년년인부동(世世年年人不同), 해마다 해마다 꽃은 피어 그 모습 비슷도 하건만, 해마다 해마다 사람의 모습은 같지 않구나.” 당나라 시인 유희이는 늙음을 이렇게 애달파했는데, 가을의 끝자락에 오니 봄꽃 지는 애절함만큼이나 가을 잎 지는 쓸쓸함이 깊어만 간다. 내 인생의 남은 유효기간이여, 바라건대 좀 천천히 늙어 갔으면.
가을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슬픔에 젖지 않았으면. 백수(白壽)가 내일모레인 어머니 앞에서 내가 먼저 아프지 않았으면. 난치병과 싸우는 친구에게도 봄꽃 같은 소식이 찾아왔으면. 아아, 설레는 가슴으로 이따금 도란거릴 수 있으면. 바라건대 바라건대 좀 천천히 늙어 갔으면.
많이 기다려야 할 테지. 이런 기다림은 지나친 욕심인가. 그래도 내 중년의 가을은 서편 하늘 노을만큼이나 괜찮게 이슥하구나. 지는 노을의 찬란한 옷자락을 붙잡을 수 있으면. 바라고 또 바라건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래도록 사랑해줄 수 있으면. 오직 그런 이유로 천천히 늙어 갔으면. 조금만 더 천천히 늙어 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