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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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퇴임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타계했다. 향년 68세.

중국 관영 매체인 CCTV는 "상하에서 휴식 중이던 리커창 동지가 26일 갑작스러운 심장병이 발생했고, 구조에 전력을 다했지만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27일 밝혔다.

리커창은 올해 3월 열린 ‘양회’(兩會·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2인자인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 7개월 만에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리커창은 1955년 7월생으로, 안휘성 출신이다. 베이징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정치인이다. 그는 1976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고, 공산당의 3대 파벌로 불리는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서 주로 활동했다. 1920년대 설립된 공청단은 청년 간부를 양성하는 조직으로, 후진타오 전 주석의 세력으로 분류된다.

공청단 출신인 리커창은 한 때 혁명 원로자제인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 국가 주석의 최대 정치 라이벌로 꼽혔다. 시진핑은 혁명원로인 시중쉰 전 총리의 아들로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리커창은 '흙수저' 출신으로 총명한 두뇌와 빼어난 언변으로 최고 지도자급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리커창은 1993년에 38세 나이에 공청단의 최고위직인 중앙서기처 1서기(장관급)로 승진했고, 1999년 허난성 성장에 오르며 차기 주석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시진핑은 2007년 10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서열 6위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돼 서열 7위의 상무위원인 리커창을 간발의 차로 앞섰다.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최고지도자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으나, 2010년 시진핑이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면서 리커창과의 선두 경쟁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리커창은 2013년 시진핑이 국가 주석 자리에 오를 때 국무원 총리직을 맡았다. 10년간 총리로서 중국 경제 사령탑 역할을 해왔지만, 시진핑이 절대 권력을 쥐며 정치권에서 존재감이 줄었다. 리커창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의 경제가 충격을 받으면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며 '리커창 대망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작년 10월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상무위원 7명이 시진핑의 최측근인 시자쥔(習家軍)으로 채워지며 퇴진이 예고됐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