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대가의 연주를 듣는다'는 경외심에 지배된 무대...길 샤함&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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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 795회 정기연주회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협연
'따스한 칸타빌레' 특징 두드러져
지휘자 잉키넨, 색채와 음역 적절히 배치
고도로 응집된 앙상블…포인트 명료히 전달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협연
'따스한 칸타빌레' 특징 두드러져
지휘자 잉키넨, 색채와 음역 적절히 배치
고도로 응집된 앙상블…포인트 명료히 전달
지난 2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795회 정기연주회'의 첫 순서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로 유명한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독주를 맡은 길 샤함은 현역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단연 최고령급의 원로이다. 그가 수십 년에 걸친 활동 기간 내내 보여줬던 고유한 특징은 따스한 칸타빌레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그 점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히 2악장은 바버 특유의 낭만성을 뼛속까지 체득한 연주라 할 만했다. 앞의 두 악장과는 달리 작곡가가 처음부터 초고난도의 악구를 지뢰밭처럼 깔아놓은 3악장 역시, 길 샤함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깔끔한 연주로 훌륭하게 헤쳐 나갔다. KBS교향악단 역시 기민하고 빈틈없는 반주로 독주자를 충실하게 뒷받침했다.
길 샤함이 열화와 같은 박수에 응해 들려준 첫 앙코르는 스콧 휠러가 길 샤함에게 헌정한 ‘아이솔레이션 래그’였다. 제목을 ‘격리 래그타임’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곡은, 길 샤함이 설명했듯이 2020년부터 2년간 전 세계를 휩쓸었던 팬데믹 기간 동안 공연장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음악가들이 어떻게 버텨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쓴 곡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분히 시사적인 작품으로 들리겠지만, 곡 자체는 미국적인 낙천성이 돋보이는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였다. 이어 연주한 것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중 ‘가보트와 론도’였다. 지난해 내한 공연에서 연주한 앙코르와 같은 구성이었다. 진지한 연주자들이 바흐에서 보여주기 쉬운 딱딱한 엄격함에 매몰되지 않은 자유로움과 유연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KBS교향악단의 현악 주자들, 특히 바이올린 파트 연주자들이 앙코르 내내 단정한 자세로 길 샤함의 연주를 경청하고 있었던 것 역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진정한 대가의 연주를 듣는다는 경외심이 무대 안팎 모두를 지배하던 순간이었다.
피에타리 잉키넨이 KBS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된 뒤로 그의 지휘를 직접 접하면서 매번 느낀 바가 있다. 잉키넨은 음악에서 ‘큰 그림’을 잘 그리는 지휘자이다. 그림에 빗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그는 구도를 잘 잡을 뿐만 아니라 색채와 음영을 적절히 배치할 줄 안다. 그래서 전에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곡이라 하더라도 음악의 극적 흐름을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단한 장점이며, 생소하거나 통일성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작품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후반부 순서에서 연주한 윌리엄 월튼의 ‘교향곡 1번’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했다. 잉키넨은 전곡에 걸쳐 고도로 응집된 앙상블을 유지했으며, 곡의 극적 포인트를 잘 포착해 명쾌하게 전달했다. 2악장처럼 기민함이 좀 지나쳐 악의가 무해한 짓궂음 정도로 순화된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잉키넨은 1악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악상이 허용할 경우에는 최대한 시벨리우스적인 색채를 부여했는데, 지휘자의 국적을 감안하면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근래 들었던 공연 가운데 청중의 태도가 가장 정숙했던 것 역시 이날 공연을 오랫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돌이켜보게 될 요인 중 하나로 꼽아야 할 듯하다.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상임지휘자이던 시절부터 지켜본 바로는, 적어도 연주 수준이라는 점에서 보면 KBS교향악단은 피에타리 잉키넨 체제 아래서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지난해 6월에 있었던 ‘쿨레르보 교향곡’의 국내 초연과 더불어 그 생각에 방점을 찍는 공연 가운데 하나였다. KBS교향악단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연주를 계속 들려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국내 최고의 악단 중 하나로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황진규 음악평론가
독주를 맡은 길 샤함은 현역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단연 최고령급의 원로이다. 그가 수십 년에 걸친 활동 기간 내내 보여줬던 고유한 특징은 따스한 칸타빌레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그 점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히 2악장은 바버 특유의 낭만성을 뼛속까지 체득한 연주라 할 만했다. 앞의 두 악장과는 달리 작곡가가 처음부터 초고난도의 악구를 지뢰밭처럼 깔아놓은 3악장 역시, 길 샤함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깔끔한 연주로 훌륭하게 헤쳐 나갔다. KBS교향악단 역시 기민하고 빈틈없는 반주로 독주자를 충실하게 뒷받침했다.
길 샤함이 열화와 같은 박수에 응해 들려준 첫 앙코르는 스콧 휠러가 길 샤함에게 헌정한 ‘아이솔레이션 래그’였다. 제목을 ‘격리 래그타임’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곡은, 길 샤함이 설명했듯이 2020년부터 2년간 전 세계를 휩쓸었던 팬데믹 기간 동안 공연장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음악가들이 어떻게 버텨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쓴 곡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분히 시사적인 작품으로 들리겠지만, 곡 자체는 미국적인 낙천성이 돋보이는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였다. 이어 연주한 것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중 ‘가보트와 론도’였다. 지난해 내한 공연에서 연주한 앙코르와 같은 구성이었다. 진지한 연주자들이 바흐에서 보여주기 쉬운 딱딱한 엄격함에 매몰되지 않은 자유로움과 유연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KBS교향악단의 현악 주자들, 특히 바이올린 파트 연주자들이 앙코르 내내 단정한 자세로 길 샤함의 연주를 경청하고 있었던 것 역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진정한 대가의 연주를 듣는다는 경외심이 무대 안팎 모두를 지배하던 순간이었다.
피에타리 잉키넨이 KBS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된 뒤로 그의 지휘를 직접 접하면서 매번 느낀 바가 있다. 잉키넨은 음악에서 ‘큰 그림’을 잘 그리는 지휘자이다. 그림에 빗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그는 구도를 잘 잡을 뿐만 아니라 색채와 음영을 적절히 배치할 줄 안다. 그래서 전에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곡이라 하더라도 음악의 극적 흐름을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단한 장점이며, 생소하거나 통일성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작품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후반부 순서에서 연주한 윌리엄 월튼의 ‘교향곡 1번’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했다. 잉키넨은 전곡에 걸쳐 고도로 응집된 앙상블을 유지했으며, 곡의 극적 포인트를 잘 포착해 명쾌하게 전달했다. 2악장처럼 기민함이 좀 지나쳐 악의가 무해한 짓궂음 정도로 순화된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잉키넨은 1악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악상이 허용할 경우에는 최대한 시벨리우스적인 색채를 부여했는데, 지휘자의 국적을 감안하면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근래 들었던 공연 가운데 청중의 태도가 가장 정숙했던 것 역시 이날 공연을 오랫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돌이켜보게 될 요인 중 하나로 꼽아야 할 듯하다.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상임지휘자이던 시절부터 지켜본 바로는, 적어도 연주 수준이라는 점에서 보면 KBS교향악단은 피에타리 잉키넨 체제 아래서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지난해 6월에 있었던 ‘쿨레르보 교향곡’의 국내 초연과 더불어 그 생각에 방점을 찍는 공연 가운데 하나였다. KBS교향악단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연주를 계속 들려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국내 최고의 악단 중 하나로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황진규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