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11번가의 모기업인 SK스퀘어가 싱가포르 e커머스 업체 큐텐과 공동 경영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11번가와 큐텐을 합병한 뒤 SK스퀘어가 존속 법인인 큐텐의 주요주주로 올라서는 방식이다.

SK스퀘어는 아마존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고, 큐텐은 일본·인도 등 아시아에 여러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협상 결과에 따라 국내 e커머스 지형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11번가 인수전 국면 전환

'11번가 + 큐텐' 공동경영 카드 던진 SK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G마켓의 창업자이자 큐텐의 최대주주인 구영배 사장과 SK스퀘어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하형일 11번가 대표가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핵심 의제는 공동 경영이다. SK 측은 11번가와 큐텐을 합병하고 큐텐을 공동 경영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큐텐은 자사 주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지난해 9월과 올해 5월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권을 획득한 바 있다. 이후 티몬, 위메프의 주주들은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기업공개(IPO)가 쉽지 않은 처지에 놓인 티몬, 위메프의 투자자에게 탈출구를 찾아주고 큐텐은 외형을 키우는 거래였다.

큐텐은 SK스퀘어 측에도 이런 방식을 제안하며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증시 조정 등의 여파로 11번가의 IPO가 난항에 빠진 만큼 탈출구를 제공할 테니 경영에선 빠지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SK스퀘어가 역으로 큐텐에 전략적 제휴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다. IB업계 관계자는 “SK스퀘어가 큐텐 지분을 받고 추후 상장까지 성공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IMM인베스트먼트가 큐텐에 5000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은 것도 큐텐의 잠재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쿠팡·네이버 맞설 연합군 되나

'11번가 + 큐텐' 공동경영 카드 던진 SK
관련 업계에선 대체로 현재 큐텐이 협상의 우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본다. SK스퀘어는 2018년 나일홀딩스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이에 따라 11번가의 지분 18.1%(작년 말)를 보유하게 된 나일홀딩스는 SK 측과 올해 9월 말까지 11번가를 IPO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 조정 등의 여파로 11번가 IPO는 무산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투자자에게 지연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SK스퀘어로선 대안을 찾는 게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큐텐 쪽에서도 11번가는 놓치기 아까운 매물이다. 11번가를 품을 경우 큐텐은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유의미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올라설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티몬과 위메프의 거래금액은 각각 3조8000억원과 2조4000억원이다. ‘큐텐 군단’의 또 다른 구성원인 인터파크커머스의 거래액(7000억원)까지 합치면 7조원에 못 미친다.

쿠팡과 네이버쇼핑이 지난해 각각 36조8000억원과 35조원의 거래액을 창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큐텐 군단의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11번가와 힘을 합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11번가의 지난해 거래액은 10조5000억원으로 시장 점유율은 7%였다. 11번가를 합칠 경우 큐텐 군단의 거래액은 G마켓(15조2000억원)을 넘어서 단숨에 3위로 올라선다.

큐텐이 11번가를 품으면 SK그룹이라는 후원군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SK도 통신(SK텔레콤), 모빌리티(티맵)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e커머스와의 연계가 필수다. SK와 아마존이 전략적 제휴 관계라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으로 거론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