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인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이 지난 5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성형 AI 기술을 담은 스마트폰용 반도체 '엑시노스 2400'을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박용인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이 지난 5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성형 AI 기술을 담은 스마트폰용 반도체 '엑시노스 2400'을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PC·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인텔과 AMD.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의 강자 엔비디아. 스마트폰용 통신칩 시장을 이끄는 퀄컴, 미디어텍, 삼성전자. 2~3년 전만해도 반도체기업들 각자의 영역이 확실했다. 주력 제품이 다른 엔비디아와 퀄컴이 경쟁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경쟁사 텃밭까지 노리는 반도체기업들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엔비디아와 인텔이 경쟁하고, 퀄컴과 AMD가 맞붙는다. 반도체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퀄컴이 최근 PC용 CPU인 '스냅드래곤 X'를 출시하고 노트북용 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엔비디아 역시 2025년을 목표로 PC용 CPU를 선보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PC용 CPU 시장의 강자 인텔과 AMD는 긴장 상태다.

이런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개인용 기기에 들어가는 'AI 반도체'다. 지금처럼 대규모 클라우드가 아닌 엣지(일상에서 쓰는 기기)에서 AI가 실행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가 성큼 다가온 영향이 크다. 삼성, 애플, 퀄컴, 인텔, 엔비디아, AMD 구분 없이 한목소리로 "온디바이스 AI 시대를 지원하는 반도체의 강자가 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AI 기술 경쟁에서 밀리면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내 손 안의 AI 시대 온다

"우리의 목표는 온디비아스 인공지능(AI)이다."

삼성전자에서 시스템반도체 개발사업을 맡고 있는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이 지난 26일 열린 한 강연에서 던진 메시지다. 온디바이스 AI는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등 사용자들이 직접 쓰는 '기기' 단에서 구현되는 AI다.

현재 챗GPT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오픈 AI에 접속해야 하고, 이 데이터는 모조리 오픈 AI가 활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버에 남는다.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LG 엑사원' 생성형 AI가 그린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세트 디자인. LG 제공
'LG 엑사원' 생성형 AI가 그린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세트 디자인. LG 제공
온디바이스 AI가 활성화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AI를 서비스하는 서버와의 연결은 최소화되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자체에서 대부분의 AI 연산이 실행된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의 '비행기모드'에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화된'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사용자의 고유 음성 패턴, 표현, 반응, 환경, 건강 등의 데이터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AI가 제공할 수 있다. 기기에서 바로 서비스되기 때문에 클라우드를 통한 AI보다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초기 단계'의 온디바이스 AI 서비스가 기기 단에서 시행되고 있다. 웹페이지 요약 및 번역, 사진 보정 등을 해주는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디자이너가 노트북을 열고 디자인 콘셉트를 입력하면, 최종 디자인을 완성해주는 등의 AI 서비스도 가능하다. 박 사장은 "삼성전자의 꿈이자 목표는 생성형 AI를 언제든지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미래의 AI는 온전한 자율성을 지닌 '프로액티브 AI'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퀄컴 모두 "온디바이스 AI 기술 우리가 최고"

많은 스마트폰, 노트북 제작사들이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지원하는 반도체 기업들도 온디바이스 AI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칩 개발을 위해 뛰고 있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인텔 등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들이 명운을 걸고 있다.

이미 경쟁이 시작됐다. 퀄컴은 최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스냅드래곤 서밋 2023'에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 8세대 3' 제품을 공개했다. 가장 강조한 성능이 '온디바이스 AI' 지원이다. 스마트폰의 AI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반도체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퀄컴의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티아노 아몬은 "퀄컴은 수년간 단말기에서 쓸 수 있는 AI를 개발해왔다"며 "전 세계에 출시되는 스마트폰에서 생성형 AI의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 로이터 연합뉴스
삼성전자도 이달 초 스마트폰용 AP '엑시노스(Exynos) 2400'을 선보이며 AI 기능을 강조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공개 행사 때 삼성전자가 강조한 것 역시 AI 기능이다. 엑시노스 2400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문자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생성형 AI 기술을 선보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 역시 현재 개발 중인 최신 맥북용 프로세서 ‘M3’에도 다양한 생성형 AI 지원 기능을 탑재할 전망이다. 엔비디아가 노트북용 CPU를 개발 중인 것도 'AI' 기술력을 극대화해 온디바이스 AI 관련 사업영역을 확장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