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개 십자가, 그걸 못 넘은 노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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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마
천재 연출가 알렉스 오예
175분간 화려한 무대 압도
입체적 여성 캐릭터들 돋보여
여사제 노르마 역의 여지원
표현력에 비해 아쉬웠던 발성
천재 연출가 알렉스 오예
175분간 화려한 무대 압도
입체적 여성 캐릭터들 돋보여
여사제 노르마 역의 여지원
표현력에 비해 아쉬웠던 발성

무대를 빼곡히 메운 3500여 개의 십자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섬세한 조명…. 그로테스크한 무대로 서울을 찾은 영국 로열오페라 버전의 ‘노르마’가 지난 26일 베일을 벗었다.
이 작품은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됐다. ‘천재 연출가’로 불리는 알렉스 오예가 연출을 맡아 이탈리아 작곡가 벨리니(1801~1835)의 오페라 노르마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사회지도자인 여사제 노르마의 금지된 사랑과 배신, 숭고한 희생이 스토리의 핵심이다.
175분간 현대적인 연출과 입체적인 캐릭터로 관객을 압도했다. “현시대와 호흡하는 오페라”라는 연출가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무대였다. 스토리 곳곳에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살리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예컨대 무대 및 의상은 여러 시대와 국가를 섞어 연출했다.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장면은 정통 가톨릭교를 연상하게 했다. 노르마를 둘러싼 교도들은 하얀색 고깔모자 복장을 했는데 이는 미국 KKK단의 복색과 비슷했다. 사랑과 화합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사회적 압제와 폭력으로서의 종교를 표현하는 듯했다.

여지원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높은 곳에서 ‘정결한 여신’을 불렀다. 그는 여사제다운 성스러움과 사랑으로 불안에 떠는 인간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성량과 음색의 선명함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다. 표현력은 빼어났지만 아쉬운 발성으로 압도적인 힘은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번 공연은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로 공감을 자아냈다. 노르마뿐 아니라 그의 연적인 아달지사 캐릭터도 세심하게 그려냈다. 아달지사는 일반적인 연적 캐릭터와 달리 노르마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연대하려는 인물로 표현됐다. 이들의 호흡은 노르마와 아달지사의 이중창에서 잘 드러났다. 두 음색의 상호 보완적인 어울림은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2막 후반부에서는 휘몰아치듯 노래하는 ‘전쟁의 합창’이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노르마를 단죄하려는 군중의 광기와 분노가 선명하게 표현돼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