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수요 둔화 전망에 따라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 서울 시내 주차장에서 한 차주가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수요 둔화 전망에 따라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 서울 시내 주차장에서 한 차주가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리가 계속 높거나 더 높아지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진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8일 시장 예상보다 낮은 실적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멕시코에 공장을 확실히 만들 것이지만 문제는 타이밍”이라며 관련 일정을 늦출 가능성을 내비쳤다. “사람들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읽고 있다면 새 차를 사는 것이 마음속 우선순위가 아니게 될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고금리, 인플레이션에 ‘중동 전쟁’이라는 악재까지 만났다. 수요 위축이 현실화하면서 ‘생존 우선’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각종 투자 계획을 연기하거나 철회하고 비용부터 줄이려는 모습이다. 전기차 시장이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일단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이다.

신규 투자 줄줄이 백지화

29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들은 이달 들어 줄줄이 신규 투자 계획을 재조정했다. 미국자동차노조(UAW) 파업까지 겹친 미국 자동차 ‘빅3’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가 가장 먼저 나섰다. 급격한 인건비 인상까지 예고되면서다.

GM은 전기차 수요 감소로 미시간주 공장의 전기 픽업트럭 생산을 1년 연기하기로 했다. 혼다와 진행하던 저가 전기차 공동개발 프로젝트도 폐기했다.

포드는 이달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생산하는 미시간주 공장을 3교대 근무에서 2교대 체제로 바꿨다. 이어 계획된 전기차 투자액 가운데 120억달러(약 16조2600억원)를 축소하기로 했다. SK온과 켄터키주에 짓기로 한 두 번째 배터리 공장 가동도 늦출 계획이다. 포드는 “전기차는 모두가 예상한 것보다 느린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수요 약화에 따라 계획한 용량을 배치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까지 투자를 미룰 것”이라고 했다.

스텔란티스는 다음달로 예정된 ‘LA 오토쇼’에 이어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 참가마저 철회했다. “UAW 파업 비용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업체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은 2026년 차세대 전기차 ‘트리니티’를 생산하기 위해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신규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이달 들어 백지화했다. 이 회사는 100억유로 규모의 비용 절감 계획도 세우고 있다. 양산 모델 라인업 축소, 생산 효율 개선 등을 포함할 전망이다.

현대차 “계속 달린다”

‘전기차 지각생’으로 불리던 세계 1위 도요타는 표정 관리 중이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최근 ‘재팬 모빌리티쇼’에서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고 있다”며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단 하나의 해답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그동안 전기차만이 아니라 하이브리드 등에도 계속 투자해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이게 옳았다’는 뜻이다. 도요타는 그러면서도 이번 쇼에서 전기 콘셉트 모델 FT-3e, FT-Se 등을 선보이며 미래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대차도 당장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는 최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급하게 전기차 생산을 줄일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지금 잠깐 허들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전기차는 우상향 곡선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 역시 계획대로 내년 하반기 생산 일정을 맞출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국가의 환경 규제 강화 및 친환경 인프라 투자 증가 등에 따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은 분명하다”며 “전기차 가격을 낮추고 충전 인프라를 갖추려는 노력을 지속한 업체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김일규 기자 binthere@hankyung.com